주간동아 586

2007.05.22

“투수로 살아남을 수 있다면 저 잠수함 할래요”

  • 김성원 중앙일보 JES 기자 rough1975@jesnews.co.kr

    입력2007-05-16 17:5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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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투수로 살아남을 수 있다면 저 잠수함 할래요”
    “자, 결정들 했으면 이제 손 들어. 투수 지원할 사람?”

    1990년대 후반의 일이다. 김상배 당시 휘문중 감독이 야구부원들에게 1, 2, 3지망순으로 원하는 포지션을 써내라고 했다. 그런데 투수를 하고 싶다고 밝힌 학생이 8명이나 됐다.

    유능한 주니어 선수들이 투수로 몰리는 현상은 최근 더욱 심해졌지만 그때도 ‘폼나는’ 투수를 하려는 청소년이 많았던 모양이다. 당시 투수를 원하던 선수 중 한 명은 상황을 지켜보다 꾀를 냈다.

    ‘죄다 오른손 정통파네. 여기서 어떻게 버텨. 안 되겠다. 이렇게 된 거 특화작전을 쓸 수밖에….’

    투수를 지원한 우규민(사진)은 팔 각도를 내린 사이드암스로, 즉 잠수함 투수를 마케팅 포인트로 잡았다. 전부터 정통파 스타일보다 사이드암스로가 편했는데 그걸 특화하면 투수로 발탁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사이드암스로 투수는 틈새시장이다. 메이저리그에서도 마찬가지다. 고등학교 때나 대학 때 팔꿈치나 어깨를 다치거나, 메이저리그로 가고 싶은데 드래프트 상위권에 들 자신이 없을 때 사이드암스로로 바꾸는 선수도 있다.  

    올 시즌에는 SK 정대현, 현대 박준수 등 서브마린 마무리 투수가 각광받고 있다. 우규민의 선택은 옳았다. 그는 ‘잠수함 킬러’로 불리는 왼손 타자에게도 주눅들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오른손잡이 서브마린 투수는 공이 빠져나오는 딜리버리 각도 탓에 공을 오래 볼 수 있는 왼손 타자에게 약하다.

    양상문 LG 투수코치는 “좌타자들이 몸 쪽으로 큰 각도를 만들며 들어오는 공을 때려내기는 쉽지 않다. 마운드에서의 대담함에도 높은 점수를 줘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면서 그의 배짱과 승부 근성을 칭찬했다.

    우규민도 “오른손 타자를 상대할 때는 몸에 맞는 공을 던질까 겁난다. 왼손 타자가 더 편하다”라고 밝혔다.

    우규민의 풀타임 마무리 전업은 올해가 처음이다. 올 시즌 그가 어떤 성공기를 쓰느냐에 따라 LG의 성적이 결정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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