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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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둥실~ 내 마음 실어 띄워볼까

  • < 허시명 / 여행작가 > storyf@yahoo.co.kr

    입력2004-10-19 13:5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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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둥실~ 내 마음 실어 띄워볼까
    볼을 에는 매운 바람도 반갑던 시절이 있었다. 전깃줄 없는 평지를 골라 연을 날리던 어린 시절. 아스라히 떠 있는 연이 날아가버리지는 않을까 두려우면서도, 하늘 끝에 다다르고 싶어 얼레에 감긴 실을 한없이 풀어댔다. 연실에 작은 종이쪽지를 꿰어 편지랍시고 띄워 올리기도 했다. 그 편지가 팽그르르 돌면서 연을 향해 올라가면 몸도 따라 하늘 높이 솟아오르는 듯했다. 연줄에 사깃가루를 묻혀 연싸움을 할라치면 오금이 저렸다. 그러다가 어느 한순간 연실이 툭 끊겨 맥없이 추락하면 비상이다. 그 연을 찾아 줄달음질치는데, 발견된 연은 높다란 나뭇가지나 전깃줄에 걸려 있기 일쑤였다. 아쉽게 놓아보낸 그 연들이 아직도 추억 속에서 펄럭이고 있다.

    연날리기는 우리뿐만 아니라 외국에서도 오랜 전통을 지니고 있다. 전장에서 전술로 쓰이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사기’ 열전 김유신편에 최초로 연이 등장한다. 선덕여왕의 뒤를 이어 진덕여왕이 즉위하자 비담과 염종이 여자는 나라를 제대로 다스릴 수 없다며 군사를 일으켰다. 이때 궁궐이 있는 월성으로 큰 별이 떨어지자 비담의 군사들은 여왕이 패망할 조짐이라며 사기가 충천했다. 그러자 여왕을 호위하고 있던 김유신은 허수아비를 연에 달아 바람에 띄워 올렸다. 마치 불덩이가 하늘로 날아올라가는 것 같았다. 이를 두고 김유신은 떨어진 별이 다시 하늘로 올라간 것이라고 소문을 냈다. 연을 이용한 심리전이었다. 이렇게 기세를 회복한 김유신의 병사들은 비담과 염종을 무난히 물리칠 수 있었다. 이 사실은 647년 진덕여왕 원년에 이미 연날리기가 보급되어 있었음을 보여준다. 다만 적군을 교란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아 연날리기가 널리 보급되지는 않았던 것으로 짐작된다.

    우리 연은 크게 방패연과 가오리연으로 나뉜다. 전통연의 주축은 방패연(원래 방패연은 중앙에 구멍이 없다. 하지만 통상적으로 구멍 뚫린 직사각형의 연을 방패연이라 부른다)인데, 세계적으로 구멍이 뚫린 연은 우리 연뿐이라고 한다. 특히 방패연은 자유자재로 움직이고 동작이 빨라 외국인들에게 ‘fighting kite’(싸움연)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런 연도 어른이 되고 보면 헐거워 보인다. 실을 따라 하늘로 오르던 몸도 무거워지고, 멀어진 연은 자꾸 작아져 아이들 장난감처럼 여겨진다. 더욱이 정월 대보름에는 연에 액운을 실어 날려 보내야 하기에 항상적인 놀이로 이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아쉬움과 갈증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을 텐데, 이런 사람들에게 딱 맞는 연이 있다. 스포츠연이다. 연 날리는 것 자체가 운동이고 스릴 넘치는 스포츠다.



    두둥실~ 내 마음 실어 띄워볼까
    스포츠연은 제2차 세계대전중 미 해군이 함상에서 포사격 훈련을 할 때 비행기 대용의 표적물로 사용하면서 발전하기 시작했다. 스포츠연의 빠르기는 평균 시속 50km인데, 시속 170km까지 기록한 적이 있다. 좌우로 회전하고 위아래로 솟구치는데 마치 제트비행기가 굉음을 내면서 저공 비행하는 느낌을 준다.

    현재 스포츠연 동호인은 전국에 200명 가량 된다. 우리나라에 스포츠연이 도입된 것은 10년쯤 되는데, 한국스포츠카이트협회라는 동호회는 지난해 결성되었다. 이제 시작인 셈이다.

    스포츠연을 날리려면 반경 30m 이상의 평지가 필요하다. 전통연과 달리 실을 풀거나 감지 않는다. 줄은 평균 30m인데 연에 고정되어 있다. 연줄을 길게 펼쳐놓고 조종하는 손잡이를 잡아당기면 연이 바람을 타고 공중으로 떠오른다. 연은 통상 2줄 연과 4줄 연이 있는데, 2줄 연은 배우기가 쉽고 4줄 연은 숙련이 필요하다.

    스포츠연은 크게 묘기연(스턴트연)과 파워연 두 종류로 나뉜다.

    묘기연은 하늘에서 온갖 재주를 부리는 연이다. 360도 공중회전을 거푸 해대거나 좌우로 팔자를 그리며 춤을 추기도 하고, 땅으로 곤두박질치다가 땅과 수평을 이루면서 날아가는 재주 등을 부린다. 센 바람을 타면 시속 100km도 넘는데, 이때 바람 가르는 소리가 요란하다. 특히 4줄 연으로 기교를 부릴 때는 상하좌우로 손잡이를 조정해야 하는데, 마치 비행기 조정간이라도 잡고 있는 것처럼 짜릿함을 느낄 수 있다. 이쯤 되면 연은 아이들의 놀이가 아니라 어른들의 스포츠다.

    파워연은 힘이 많이 느껴지는 연이다. 전통연은 바람을 모서리로 흘려보내면서 날지만, 스포츠연은 바람을 안으로 모으면서 난다. 특히 파워연은 작은 낙하산이나 패러글라이딩처럼 생겨 바람을 한껏 품는다. 천의 재질도 낙하산과 같고 펼친 크기는 2~3m 된다. 바람을 많이 받을 때는 사람을 공중으로 둥둥 띄워 올리기까지 한다. 그래서 스포츠연 동호인들은 한 달에 한 번씩 바람 많은 바닷가로 원정을 간다. 그곳에서 몸을 기둥에 묶고 파워연을 펼쳐 몸이 3~4m 허공에 떠 있는 상태에서 연을 날린다.

    두둥실~ 내 마음 실어 띄워볼까
    한규완씨(49)는 20년 전 허리디스크 수술을 받은 것이 잘못되어 고생을 많이 했다. 한 번 허리를 삐끗하면 2~3개월 자리보전할 정도였다. 그런데 파워연을 하면서 허리가 “기가 막히게 좋아졌다”고 한다. 실제 파워연의 조종간을 잡아보니 바람에 실린 연의 힘 때문에 철봉에 매달린 것처럼 힘이 들었다. 그러나 연줄의 힘이 손끝에서 발끝까지 뻗어나가기 때문에 손아귀만으로 철봉에 매달릴 때와는 느낌이 확연히 달랐다.

    스포츠연은 한 대 가격이 10만~30만원 한다. 연 1개 값으로는 비싼 편이지만 언제든지 즐길 수 있는 레저기구로 생각하면 그렇지만도 않다. 스포츠연은 바람의 세기나 기술에 따라 다양한 유형을 선택할 수 있다. 그래서 스포츠연에 빠져든 사람들은 적어도 5개 이상의 연을 소유하게 된다.

    스포츠연은 과격하지 않고 안전하다. 바람이 전혀 없는 한여름 잠시를 제외하곤 언제든지 즐길 수 있는 놀이다. 그리고 자신의 체력에 맞춰 얼마든지 운동량을 조절할 수 있는 레포츠라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좀더 격렬하고 열정적으로 스포츠연을 날리고 싶은 이들은 바퀴 달린 보드나 수상스키, 스노보드를 결합시킬 수 있다. 이렇듯 다른 레포츠와 응용이 가능하고 온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 스포츠연은 기꺼이 빠져들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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