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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불길에 투기는 필수

아가서 8장에 독점욕 강한 사랑 설명 … 연적은 사랑 북돋우는 구실 ‘연인에겐 고마운 존재’

  • 조성기/소설가

사랑의 불길에 투기는 필수

사랑의 불길에 투기는 필수
’중독’이니 ‘중독된 사랑’이니 하는 제목의 영화들도 있지만, 에로티시즘적인 사랑에는 반드시 중독현상이나 편집증적인 증상이 있게 마련이다. 그러한 병적인 집착을 잘 그려낸 최근의 영화 작품으로는 카엘 하네케 감독의 ‘피아니스트’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이 영화는 칸영화제 최초로 그랑프리와 남녀 주연상을 함께 석권한 작품으로 유명하다.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피아니스트인 에리카(이자벨 위페르) 앞에 금발의 건장한 청년 클레메(브누와 마지엘)가 나타난다. 하지만 마흔 살인 그녀에게 클레메는 아직 풋내 나는 공대 학생일 뿐이다.

그런데 클레메의 환상적인 슈베르트 연주를 듣고 나서 그녀는 흔들리기 시작한다. 선생과 제자 사이에 불온한 사랑이 싹트고, 이 사랑은 처음부터 정상궤도를 이탈한다. 음표 하나 틀리는 걸 용납하지 않는 엄격한 피아니스트지만 그녀는 레슨이 끝나면 홀로 섹스숍에 들러 포르노를 보고 자동차 극장에서 연인들의 애무를 훔쳐보며 성적 흥분을 느껴왔던 것. 이런 변태적인 에로티시즘은 제자 클레메와의 관계에서 강도를 더하게 된다. 다른 여학생에게 친밀하게 말을 거는 클레메를 보고 질투를 느낀 에리카는 화장실로 달려가고, 그녀의 반응을 몰래 훔쳐보던 클레메가 뒤쫓아간다. 두 사람은 화장실에서 격렬하게 키스하며 서로의 사랑을 확인한다.

에로티시즘은 원래 금기에 대한 ‘위반 쾌락’

이제 연인이 되었다고 생각한 클레메에게 에리카가 여러 가지 변태적인 지시를 내린다. 클레메는 그녀의 지시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혼란에 빠진다. 클레메는 그녀에게 호소하기도 하고 그녀를 경멸하기도 한다. 그러다 결국 그녀의 지시를 따르게 된다. 정상적인 남녀관계에서는 성적 흥분을 느끼지 못하는 에리카의 변태적 기질에 클레메는 반발하면서도 끌려 들어가고 만 셈이다. 에로티시즘은 원래 금기를 위반함으로써 얻는 쾌락이다. 금기가 없는 남녀의 정상적인 남녀 관계나 결혼 관계에서는 위반에 따른 쾌락이 있을 수 없고, 그 결과 당연히 에로티시즘도 존재하지 않는다. 피아니시트 에리카의 몸부림은 에로티시즘을 유지하기 위한 고육지책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면 성매매나 매춘에는 에로티시즘이 존재하나. 개인적으로는 성을 돈으로 산 것이기 때문에 에로티시즘적인 쾌락이 있을 리 없다. 그러나 사회적으로는 매춘에 대한 금기를 위반하는 것이므로 에로티시즘이 존재할 수 있다. 그러나 금기의 강도가 워낙 약하여 위반 쾌락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는 게 좋을 것이다. 반면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하는 원조교제의 경우는 사회적 금기가 워낙 강하여 위반 쾌락이 그만큼 커진다. 그래서 아무리 처벌을 강화해도 원조교제는 요원의 불길처럼 퍼져나가는 것이다. 그 다음, 불륜의 경우는 어떠한가.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금기에 대해 위반을 자행하는 것이므로 두 경우 다 에로티시즘이 존재한다. 우리 형법에는 간통죄라는 항목이 있어 위반 쾌락을 증가시키는 데 크게 공헌하고 있다.



부부 스와핑의 경우는 두 부부가 합의 하에 벌이는 것이므로 개인적으로는 에로티시즘이 존재할 리 없다. 그런 경우 스와핑이라고 하는 것은 금기를 위반할 만한 담력이 없는 부부들이 좀더 자극적인 성적 쾌감을 얻기 위해 고안해낸 궁여지책일 뿐이다. 그리고 형법에도 별다른 처벌 규정이 없는 만큼 사회적인 금기도 약한 편이라 사회적으로 볼 때도 위반 쾌락이 별로 없는 셈이다. 다만 일반윤리나 도덕을 파격적으로 위반하는 데 따른 변태적인 쾌락은 있을 수 있다. 대개 남녀의 사랑은 에로티시즘의 성격 때문에 서로에 대한 독점욕이 강하다. 서로를 죽여서라도 빼앗기지 않으려는 무서운 집착이 생겨난다.

사랑의 불길에 투기는 필수
아가서의 사랑도 마찬가지다. 특히 8:6-7에 그러한 성격의 사랑을 잘 묘사하고 있다. 에로티시즘에 관한 정의가 이미 이 구절에 내려져 있는 셈이다. 조르주 바타이유도 자신의 책 ‘에로티시즘’에서 아가서의 이 구절을 좀더 어렵게 풀이해놓았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너는 나를 인같이 마음에 품고 도장같이 팔에 두라. 사랑은 죽음같이 강하나니 투기는 음부같이 잔혹하며 불같이 일어나니 그 기세가 여호와의 불과 같으니라 이 사랑은 많은 물이 꺼치지 못하겠고 홍수라도 엄몰하지 못하나니 사람이 그 온 가산을 다 주고 사랑과 바꾸려 할지라도 오히려 멸시를 당하리라

인(印)과 도장은 같은 말이다. 자고로 도장은 자기 자신을 증명하고 계약을 체결하는 등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데 소중한 물건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도장을 목걸이처럼 차고 다니기도 하였다. 목자들은 기르고 있는 양과 소들이 자신의 것임을 표시하기 위해 쇠로 만든 도장을 불에 달구어 양과 소들의 귀나 몸통에 찍어두기도 하였다. 이때 도장은 소유관계를 분명하게 하는 매개물이 되는 셈이다. ‘너는 나를 인같이 마음에 품고 도장같이 팔에 두라’는 구절은 서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 서로를 깊이 소유하는 관계를 의미한다. 그러할 때 사랑은 죽음같이 강하게 된다. 죽음은 가장 최종적인 폭력이다. 죽음보다 더 강한 폭력은 이 세상에 없는 법이다. 사랑은 그런 죽음 같은 무시무시한 폭력이다. 사랑은 죽음이라는 폭력까지도 이기는 폭력이다. 사랑은 죽음조차도 떼어놓을 수 없다.

사랑은 항상 투기를 연료로 하여 타오르는 불길이다. 연적(戀敵)은 그 불길을 더욱 타오르게 할 뿐 결코 거두어갈 수는 없다. 그런 점에서 연적은 사랑하는 두 사람에게는 참으로 고마운 존재다. 투기는 음부같이 잔혹하다고 하였다. 투기는 연적을 죽여서라도 사랑하는 대상을 차지하려는 욕망이므로 살인적이라 할 만하다. 또한 투기는 사랑하는 대상을 죽여서라도 연적이 그 대상을 차지하지 못하게 하는 파괴적인 집착이요, 편집증이다.

사랑의 불길에 투기는 필수
온 바닷물로도, 홍수로도 사랑의 불길 끌 수 없어 투기가 한 번 일어나면 기세가 여호와의 불과 같다. 세상의 불은 물로 끌 수 있지만 여호와의 불은 어떤 것으로도 막을 수도 없고 끌 수도 없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하여 나온 광야에서 여호와의 불이 죄인들을 심판할 때 얼마나 맹렬한 기세로 치달렸던가. 그와 같이 세상의 어떤 것도 투기의 불길을 끌 수 없다. 바다만큼 많은 물도 끌 수 없고 아무리 큰 홍수가 엄습해와도 그 불길을 잡을 수 없다. 투기를 연료로 하여 타오르는 사랑의 불길도 마찬가지다.

오래 전에 가수 김상국씨가 부른 ‘불나비 사랑’이라는 노래가사에도 ‘무엇으로 끄나요 사랑의 불길’이라는 구절이 있다. 이 사랑을 돈으로 흥정하여 사려고 하는 자가 있다면 그 사람은 모든 사람들의 비웃음을 받아 마땅하다. 부자가 전 재산을 다 털어서 사려고 해도 살 수 없는 것이 사랑이다. 이 사랑으로 인하여 한 인간이 무한히 행복을 느끼기도 하고 처참하게 파멸되기도 한다. 사랑으로 인하여 느끼는 행복의 대가가 파멸인지도 모른다. 그것은 남녀 간의 사랑, 즉 에로티시즘의 이기적인 속성에서 비롯되는 당연한 결과다. 그러나 사랑에 빠진 자들은 파멸보다 행복에 대한 기대를 가지게 마련이다. 아가서의 마지막 구절처럼. ‘나의 사랑하는 자야 너는 빨리 달리라 향기로운 산들에서 노루와도 같고 어린 사슴과도 같아라.’



주간동아 444호 (p64~65)

조성기/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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