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암서원의 이름이 유래된 필암(붓 바위).
“율곡 이이의 붓 아래 완벽한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石潭筆下無完人·石潭은 이율곡의 또 다른 호). 그렇게 인물을 평함에 인색하기 짝이 없던 이율곡조차도 하서 선생을 평하여 ‘淸水芙蓉 光風霽月(맑은 물에 뜬 연꽃이요, 화창한 봄바람에 비 온 뒤의 달)’이라고 할 정도였다. 호남 유학사에서 독보적 존재다.”
하서를 배향한 필암서원에 쓰여진 ‘필암’은 글자 그대로 ‘붓 바위’란 뜻이다. 필암, 필암서원 그리고 하서 김인후 선생은 풍수와 어떤 관련이 있을까?
풍수 용어 가운데 필봉(筆峰) 또는 문필봉(文筆峰)이란 것이 있다. 필봉이란 이름을 가진 땅은 전국에 여러 곳 있다. 산의 생김새가 마치 붓과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이 필봉의 지기를 받아 태어나는 사람은 훌륭한 학자가 된다고 한다. 실제로 반듯한 필봉이나 문필봉이 있는 마을에서 선생들이 많이 배출된다는 이야기는 지금도 심심찮게 들린다.
하서 김인후 선생을 배향한 필암서원.
그렇다고 모든 바위가 다 좋은 지기를 갖는다는 것은 아니다. 바위의 생김새가 지나치게 크거나 험하면 기운 또한 그와 같아 그곳에 사는 사람이 미치거나 죽음을 당할 수도 있다고 풍수가들은 풀이한다. 무덤이나 집터 근처에 지나치게 크거나 사나운 바위를 피하는 것도 이와 같은 까닭에서다.
바위 모양이 단정하거나 주변과 조화를 이루는 것을 풍수에서는 귀하게 여긴다. 이렇게 풍수에서는 자연의 형상과 사람됨의 관계를 유비적(類比的)으로 설명하는데, 이것은 단순한 비유가 아니라 인간과 자연이 하나라는 관점에서 보면 지극히 당연한 말이다.
필암서원이란 이름이 지어진 이유는 일대가 필암리이기 때문이다. 필암서원과 필암리란 이름을 가져다준 필암, 즉 붓처럼 생긴 바위는 어디에 있을까? 필암서원 근처에는 아무리 찾아봐도 없다.
일직선으로 굵게 뻗은 주산을 배경으로 한 하서 부모 묘.
위대한 유학자로서 하서는 천문, 지리, 의약, 복서(卜筮) 등에도 능통했다고 한다. 부모가 세상을 떠났을 때 장례 절차에 따라 집의 서쪽 원당산에 직접 터를 잡아 모셨다. 그의 무덤 역시 부모 무덤 아래 있는 것으로 보아 그의 풍수관을 엿볼 수 있다.
그가 잡은 무덤 터의 가장 큰 특징은 주산이 일자(一字) 모양으로 후덕하되, 주산에서 무덤으로 이어지는 산 능선은 기교를 부리지 않고 일직선으로 굵게 뻗어 내려온 점이다. 필암서원 누각 ‘확연루(廓然樓)’가 말해주듯 확연대공(廓然大公)한 대인의 후덕한 인품을 보여주는 터잡기다. 그의 생가 역시 이와 같은 모습이다. 마을 입구 붓 바위는 그렇게 후덕한 산을 배경으로 솟아난 날카로운 붓과 같다. 이들이 모두 하서를 있게 한 자연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