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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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는 남성들

  • < 이한음/ 과학칼럼니스트 > ehanum@freechal.com

    입력2004-11-01 14: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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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라지는 남성들
    ‘사라지는 남성’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전 세계 각 분야에서 여성의 진출이 활발하다. 그러나 이 말은 과학적으로도 의미가 깊다. 지난 50년 사이 남성의 정자 수가 크게 줄었다는 연구 결과가 속속 발표되고 있다. 학자들은 환경오염, 스트레스, 음식에 함유된 에스트로겐(여성 호르몬의 일종) 유사화합물 등을 원인으로 들고 있다. 이러니 남성의 존재 이유 자체가 사라질 위험에 처해 있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생물학적으로 남녀를 구분하는 것은 성염색체다. 여성은 XX형이고 남성은 XY형이다. 최근의 진화연구에 따르면, 원래 X염색체와 Y염색체는 구분되지 않았다. X염색체만 2개 있다가 하나가 작아져 Y염색체로 진화했다는 것이다. 인간만 그런 것이 아니다. 초파리의 Y염색체는 지금도 작아지고 있다.

    사실 인간의 Y염색체는 별로 하는 일이 없다. X염색체에는 수백개의 유전자가 있는 반면, Y염색체에는 30여개밖에 없다. Y염색체는 여성과 남성을 구분하는 열쇠라고 여겨져 왔다. 하지만 지금 이런 가정은 흔들리고 있다. 생쥐를 연구한 결과 정자 생산의 초기 단계에 관여하는 유전자 중 절반이 X염색체에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즉 X와 Y염색체 모두 정자 생산에 관여한다.

    그렇다면 성을 결정하는 유전자는 무엇일까? 지금까지 밝혀진 것은 네 종류쯤 된다. 인간의 성 결정은 임신 7주째에 이런 유전자가 관여하여 이루어진다. 이 성 결정 과정은 유전적 결함, 감염, 약물, 호르몬 등의 영향을 받을 수 있다. 가령 Y염색체에 있어야 할 유전자가 X염색체에 있다면, 유전적으로는 여성이면서 외모와 행동은 남성인 사람이 태어날 수 있다. 또 성염색체가 없거나, 더 많거나, 유전자들이 분리되어 다른 염색체에 들어가는 경우도 있다. 즉 유전적으로 볼 때 남녀의 차이는 생각처럼 그렇게 큰 것이 아닐 수도 있다.

    정자 수·Y염색체 감소 … 여성만의 사회로 가나



    최근의 한 연구는 유성생식이 진화한 이유, 즉 원래 성별 구분이 없던 상태에서 암수가 갈라진 이유가 해로운 돌연변이는 줄이고, 유익한 돌연변이는 보존하고 퍼뜨리기 위함이라고 추정했다. 그렇다면 남성의 정자 수가 감소하고, Y염색체가 줄어들고, X와 Y염색체의 유전자들이 뒤섞이기도 한다는 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어쩌면 우리는 남녀의 구별이 채 완성되기 전에 환경오염 같은 대처하기 힘든 일들을 스스로 벌여놓았는지도 모른다. 자연 전체에서 여성화가 진행되고 있는 것이 추세라면, 남성 자체는 사라질 운명일까? 성별 구분은 이제 의미가 없어지는 것일까? 그렇다면 복제가 인류의 미래를 위한 대안이 될까? 남성 없는 여성만의 사회가 나타날까?

    남성은 이대로 사라져야 할까?

    어떤 학자들은 인간이 본래 일부일처형이 아니라 약한 일부다처형이었고, 남성끼리 정자 경쟁을 벌이면서 점점 더 많은 정자를 생산해내는 쪽으로 진화했다고 본다. 이렇게 정자 경쟁이 정자 수를 늘린 원인이라면, 앞으로 남성들은 더 열정적으로 정자 경쟁에 뛰어들어 줄어드는 정자 수를 다시 늘려야 할지도 모른다. 새로운 시대에 남성 앞에 던져진 과제다.



    과학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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