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96

2007.07.31

탈북女가 무슬림男을 만났을 때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khhan21@hanmail.net

    입력2007-07-25 15:5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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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탈북女가 무슬림男을 만났을 때

    <b>바리데기</b> 황석영 지음/ 창비 펴냄/ 304쪽/ 1만원

    모처럼, 정말로 모처럼 우리 소설이 활기를 띠고 있다. 지난 몇 년간 한국 소설시장을 점령한 것은 미국발 팩션과 일본발 내면소설이었다. 지금 이 글을 쓰려고 어느 인터넷서점에 들어가보니 황석영의 ‘바리데기’, 김훈의 ‘남한산성’(학고재), 신경숙의 ‘리진’(문학동네), 김별아의 ‘논개’(문이당) 등 우리 소설이 베스트셀러 1위부터 4위까지 상위권을 모두 휩쓸고 있다.

    이중 ‘바리데기’를 제외하고는 모두 팩션으로 분류될 만한 책이다. 팩션(faction)이란 역사적인 팩트와 허구적 상상력인 픽션을 결합한 소설을 말한다. 2004년 댄 브라운의 ‘다빈치 코드’(대교베텔스만)가 폭발적 인기를 누린 이후 우리 문화시장에서도 ‘뿌리 깊은 나무’(이정명, 밀리언하우스) 같은 ‘한국형’ 팩션을 표방한 소설이 등장하기 시작하더니 이제 주류문학에서도 큰 흐름을 이루는 것이다.

    팩션은 사실 한국에서 성공이 보장된 분야일지도 모른다. 일제강점기를 거쳐 동족상잔, 장기독재 등으로 굴곡 많은 삶을 산 우리 민족은 유난히 역사추리를 좋아했다. 국내 추리소설이 망하다시피 한 다음에도 김진명의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해냄), 이인화의 ‘영원한 제국’(세계사), 복거일의 ‘비명을 찾아서’(문학과지성사) 같은 역사추리 소설은 자주 대박을 터뜨렸다.

    그러나 최근 팩션의 유행은 한국이라는 국지적 현상을 뛰어넘는 더 근원적인 이유가 있어 보인다. 무엇보다 팩션은 디지털 정보시대의 산물이다. 정보 과잉은 정보 부재와 다름없다. 그래서 대중은 허구적인 이야기보다 구체적인 사실, 즉 팩트를 신뢰하기 시작했다. 거창한 이론보다는 사람과 사물, 사건 등에 대한 믿을 만한 정보를 원한다. 또 팩션은 검색이라는 인간의 독서습관과 닮았고 게임과도 경쟁할 수 있을 만큼 지적 유희에 어울리는 장르다.

    하지만 팩션이 아무리 시대적 당위성을 갖는다 해도 한 방향으로 휩쓸려가는 것은 문제가 있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리얼리즘의 전통을 이으면서 한 단계 발전한 수준을 보여주는 ‘바리데기’를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북한 청진에서 지방 관료의 일곱 딸 중 막내로 태어난 바리는 아들을 간절히 바랐던 어머니에 의해 숲 속에 버려지지만, 풍산개 ‘흰둥이’ 덕분에 생명을 이어간다. 이후 북한의 경제사정이 급속히 나빠지자 가족은 뿔뿔이 흩어진다.

    가족을 찾아나섰으나 수없이 굶어 죽는 사람들을 목격한 바리는 중국으로 넘어가 옌지(延吉)의 발 마사지 업소에 취직해 안마를 배운다. 그곳에서 만난 중국인 샹 부부와 다롄에서 안마업소를 개업하지만 결국 빚 때문에 영국행 밀항선을 타게 된다. 밀항선에서 생지옥을 경험하고 런던에 도착했으나 샹은 성매매 업소에 팔려가고 바리는 잠시 식당일을 하다가 발 마사지 업소에 취직한다. 빈민가 연립에서 살게 된 바리는 그곳에서 만난 파키스탄인이자 무슬림인 알리와 결혼한다.

    생활이 다소 안정되는 듯했지만 미국에서 9·11테러가 터진 뒤 알리가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참여하기 위해 파키스탄으로 떠난 동생 우스만을 찾아나서면서 기약 없는 이별을 한다. 홀로 딸을 낳았지만 샹의 잘못으로 딸이 죽게 되면서 바리는 식음을 전폐하고 꿈속에서 생명수를 찾아나선다. 그러던 중 오랜 포로생활 끝에 돌아온 알리와 함께 새로운 희망을 품고 둘째 아이를 임신해 안정을 되찾을 즈음 런던 지하철 폭발사고가 터진다.

    탈북女가 무슬림男을 만났을 때

    안정된 결혼생활을 하던 두 주인공 바리와 알리는 9·11테러로 기약 없는 이별을 하게 된다.

    신자유주의가 도입된 이후 인간은 ‘세계적 존재’가 됐다. 미국에서 금리가 0.5%만 올라도 한국에서는 실직하는 노동자가 속출한다. 오로지 먹고살기 위해 세상을 떠돌아야 하는 새로운 ‘유목’ 사회에서는 기아와 전쟁이라는 참상이 끊이지 않는다.

    이런 지옥 같은 세상에서 인간은 어떻게 타인과 세계와 관계를 맺어야 하는가. 이것이 ‘바리데기’의 주제라 할 수 있다. 작가는 이를 이동과 조화로 간략하게 설명한다. 탈북한 바리와 9·11 이후 설 자리가 좁아진 무슬림 알리를 결합한 것에서 우리는 이미 작가의 의도를 꿰뚫어볼 수 있다. 작가는 알리 할아버지의 입을 빌려 스스로를 구원하는 생명수는 남을 위해 눈물을 흘릴 줄 아는 것이며, 어떤 지독한 일을 겪더라도 타인과 세상에 대한 희망을 버려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근대사회 이후 인간이 물건처럼 취급되면서 인간성은 상실되다시피 했다. 그런 인간소외가 물상화를 추구한다고 볼 수 있다. 성공우화를 즐기고 개나 고양이를 가족처럼 대하며, 팩션을 즐기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그러나 이것은 어떤 면에서는 현실도피와 다름없다.

    바리가 밀항선에서 참담한 생활이나 딸의 죽음과 같이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겪을 때 꿈과 현실을 구별할 수 없게 만드는, 일종의 마술적 리얼리즘의 형식을 도입한 것도 심각한 현실의 고통을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방북과 그로 인한 오랜 유랑, 귀국 뒤의 투옥, 다시 시작한 유럽 생활의 경험이 잘 녹아들어 황석영의 대표작이 될 것으로 보이는 이 소설은 21세기 세계시민이 당면한 ‘구체적 현실’에 빨대를 박고 그 해결점을 모색하고 있다는 점에서 과거 역사에서 시사점을 찾으려는 팩션과는 차원이 다르다.

    한기호 소장 약력

    탈북女가 무슬림男을 만났을 때
    ·서울편집디자인학원

    출판유통 및 출판마케팅 강의

    ·조선대 인문과학대학 겸임교수

    ·중앙대 신문방송대학원 초빙교수

    ·한겨레문화센터

    ‘출판마케팅 과정’ 책임강사

    ·(현)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소장

    ·2000년 출판평론 특별상,

    제41회 백상출판문화상 출판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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