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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배의 Food in the City

그곳에 가면 맛과 추억이 언제든 반긴다

서울 남대문

  • 박정배 푸드칼럼니스트 whitesudal@naver.com

그곳에 가면 맛과 추억이 언제든 반긴다

그곳에 가면 맛과 추억이 언제든 반긴다

남대문 ‘은호식당’의 꼬리찜.

영원할 것 같은 식당들이 사라지거나 맛을 잃을 때마다 옛것이 소중해진다. 이탤리언, 일식, 퓨전식당에 새로운 외식 메뉴까지 거리를 점령하면서 전통 방식의 식당들이 변해간다. 다행히 수십 년 들락거린 서울 남대문통의 오래된 식당들은 아직까지 거의 변하지 않았다. 세월이 내려앉은 탁자, 두 사람이 겨우 비켜설 수 있는 좁은 통로, 2층에 자리 잡은 소박한 식당마다 추억이 가득하다.

소꼬리로 만든 꼬리찜과 골반 부위 뼈로 만든 방치찜으로 유명한 ‘은호식당’과 꼬리찜으로 명성을 떨치는 ‘진주집’은 남대문식 술집의 전형이다. 뼈에 겨우 붙은 얄팍한 살코기에 달달한 간장양념을 했지만 입에 쩍쩍 붙는다. 음식을 먹다 보면 술병이 금세 늘어난다. ‘진주집’은 심야식당을 기웃거리는 술꾼에게는 영원한 마지막 차수 집이다. 24시간 운영하는 이 집에서는 솥에 불이 꺼진 적이 없다. 꼬리찜을 안주 삼아 술을 마시고 해장국으로 속을 달래며 출근하는 주당도 가끔 있다.

주머니에 먼지가 풀풀 날릴 때면 주변에 많이 있는 닭집을 기웃거린다. 1962년 개업해 강원집으로 더 알려진 ‘진미집’의 닭곰탕은 육고기는 뭐든 고아 먹는 한국인의 탕문화를 유감없이 보여준다. 투박한 양은그릇에 담은 진하고 개운한 이율배반적인 닭육수와 살코기는 밥이든 술이든 궁합이 척척 맞는다. 닭고기로 배를 채우고 싶다면 통닭을 시키면 된다. 이 집 통닭은 닭을 통째로 삶은 백숙이다. 커다란 통닭은 달보드레하다.

좀 더 진한 맛을 원한다면 언덕 밑자락 족발 골목으로 가면 된다. 둥그런 살코기에 콜라겐이 풍성한 앞다리는 대(大)로 팔고, 살코기가 많은 뒷다리는 중(中)이나 소(小)로 판다.

시장 상인 입맛에 맞추려면 맛은 기본이고 푸짐한 양에 가격도 저렴해야 한다. 이 기준만으로 평가한다면 ‘한순자 할머니 칼국수’를 비롯한 칼국숫집들이 ‘갑(甲) 중 갑’이다. 칼국수를 시키면 미니 냉면과 보리비빔밥이 딸려 나온다. 수제칼국수와 두 가지를 합쳐 5000원이다. 설명이 필요 없다.



그곳에 가면 맛과 추억이 언제든 반긴다
남대문에서 명동으로 넘어가는 끝자락 허름한 골목에는 평안도식 순대 명가 ‘철산집’이 있다. 작은 소창에 하얀 두부와 검붉은 선지를 섞어 만든 ‘철산집’ 순대는 고소하면서도 진득하고 부드럽다. 머리고기, 간, 허파 등 부속이 다 좋고 그 부속을 끓여 만든 순댓국도 맛있다.

고기를 싫어하거나 생선회를 좋아하는 사람은 ‘막내횟집’을 들락거린다. 갓 잡은 한국식 활어회가 아니라 숙성한 선어회로 유명하다. 생선회는 사후경직 후 단백질 분해에 의해 감칠맛이 증가할 때가 가장 맛있다. ‘막내횟집’에서 내놓는 선어 광어회의 두툼한 질감과 깊은 감칠맛에 한번 빠지면 쉽게 빠져나오기 힘들다.

여름에는 역시 시원한 음식이 제격이다. 남대문시장 상인을 상대로 1960년대 중반 평안도 출신 주인이 시작한 ‘부원면옥’은 실향민과 상인을 넘어섰다. 요즘엔 일반인은 물론 냉면 마니아, 외국인 관광객 등 시원한 면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필수 코스가 됐다. 평안도식 빈대떡과 달달하고 매콤함 닭무침은 냉면이 나오기 전 먹는 이 집의 전채요리 겸 술안주다. 돼지고기 육수는 독특하고 거칠지만 순수하고 오래된 음식의 원형을 지니고 있다.

남대문시장에는 다양한 우리 음식이 한자리에 모여 오랫동안 사랑받고 있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우리는 이런 사실을 거의 잊고 지낸다.



주간동아 948호 (p74~74)

박정배 푸드칼럼니스트 whitesuda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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