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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30년 토지사용료 ‘날벼락’

홍제동 인왕시장 18개 점포에 청구… “길거리 나앉을 판” 상인들 눈물

  • 김경화 객원기자 ymmd33@gmail.com

30년 토지사용료 ‘날벼락’

30년 토지사용료 ‘날벼락’

서울 홍제동 인왕시장의 18개 점포 주인들은 난데없이 30년 넘게 장사한 상가건물에서 내몰릴 처지에 놓였다.

“3년간 다리 뻗고 잠을 잔 기억이 없어요.”

서울 홍제동 인왕시장 근처에서 작은 국밥집을 하는 이복규(76) 씨. 국솥을 저으면서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쉰다. 2010년 8월 이씨에게 서류 한 통이 날아들었다. 느닷없이 땅 주인이 나타나 지난 30년간의 토지사용료로 1억 원 가까운 돈을 내지 않으면 점포를 경매에 넘기겠다고 한 것. 이씨는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처지라 그만한 돈을 낼 여력이 없을뿐더러, 40년 넘게 꼬박꼬박 나라에 재산세를 내며 살아온 내 건물에서 아무 소리도 못 하고 길거리로 쫓겨난다는 게 말이 되느냐며 반문한다.

이러한 사정은 같은 상가건물의 채소가게, 건강원, 생닭집, 고추상회, 감자탕집 등 18개 점포 주인도 마찬가지. 다만 13㎡(4평)에서 26㎡(8평) 남짓한 넓이에 따라 청구된 금액이 점포당 5000만 원에서 1억 원 내외로 조금씩 다를 뿐이다. 상인들은 이런 날벼락을 맞은 것에 대해 “우리가 무식하고 바보 같아서 40년 전부터 시작된 일”이라며 한탄한다. 도대체 그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현재 유진상가와 인왕시장이 자리 잡은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 일대는 1970년대 초 시장이 형성되기 전 많은 노점상이 하루하루를 연명해가던 삶의 터전이었다. 이씨 부부도 그중 하나. 평화시장에서 옷을 떼어 길거리에서 팔다 인왕시장 옆 새로 들어선 상가건물 한 칸을 어렵게 분양받아 지금의 해장국집을 열었다. 일수를 찍으며 팍팍하게 살아야 했지만 자기 명의의 가게가 있다는 기쁨에 힘든 줄 모르고 일해온 것. 같은 상가건물에서 장사하는 나머지 18개 점포 주인도 노점에서 시작해 내 가게를 갖게 된 영세 상인들이다.

토지 주인 따로, 건물 주인 따로?



30년 토지사용료 ‘날벼락’

16㎡ 남짓한 가게에서 생업을 꾸려가고 있는 인왕시장 점포 모습들(위). 주민의 의견을 모은 탄원서.

하지만 이들이 철석같이 자기 소유라고 생각했던 건물에 땅 주인이 따로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그로부터 8~9년 후 일이다. 당시 인왕시장 대표였던 고(故) 김경오 씨가 이들을 상대로 자기 땅에 불법거주하며 얻은 부당이익을 반환하라는 청구소송을 하면서다. 김씨는 1978년 상업은행으로부터 이 상가의 토지를 경매받아 82년 토지에 대한 권리를 행사한 것이다.

이듬해인 1983년 재판부는 김씨 손을 들어줘 점포 주인들에게 토지를 반환하는 한편, 그간의 토지사용료를 지급하고 건물 철거 시까지 김씨에게 토지임대료를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이에 따라 점포 주인들은 당시 각자 500만~600만 원에 이르는 토지사용료를 지불했고, 향후 토지 사용과 관련해 또 다른 분쟁을 막으려고 김씨에게 토지임대료를 내려 했으나 그럴 수 없었다고 한다.

“토지임대료를 지불하려고 인왕시장 관리사무실을 찾아가도 문이 닫혔거나, 김경오 사장이 우리를 만나주지 않았어. 돈을 내려 해도 낼 방법이 있어야지.”

노점에서 양은그릇 등을 팔다 35년 전 이곳 점포를 분양받아 생닭집을 운영하는 김상래(77) 씨의 말이다.

“저도 그런 얘기를 아버지한테 여러 번 들었어요. 임대료를 내려 해도 어떻게 내야 하는지 알려주지 않았고, 받는 사람도 없었다고요. 그러다 언제 또 엄청난 임대료를 내라고 할지 불안해 상인들끼리 하루에 2000원씩 걷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20년을 걷다가 아무 일도 생기지 않자 걷은 돈을 다시 각자 나눠가졌대요.”

2년 전 돌아가신 선친의 뒤를 이어 약재상을 운영하는 이호준(51) 씨의 말이다. 1983년 이후 상인들이 토지 문제에 대해 얼마나 불안을 느끼며 살아왔는지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2010년 상인들의 걱정이 현실로 나타났다. 30년 가까이 땅에 대해 아무런 권리행사를 하지 않던 땅 주인(김상범 진성피엠아이 공동대표이사, 고 김경오 씨 아들)이 점포 주인들에게 1983년 판결에 따라 돈을 내지 않으면 건물을 경매에 넘기겠다고 한 것이다. 상인들은 당장 상가건물이 경매에 넘어가는 것을 막으려고 과거 10년치 손해배상금(약 1억4000만 원)을 법원에 공탁을 걸어 변제했다. 돈을 달라는 청구권은 10년 소멸시효가 적용되기 때문에 청구 시점에서 과거 10년치밖에 청구할 수 없다.

그런데 땅 주인은 올해 초 1983년 판결에 의한 지가가 너무 낮다며 현재 공시지가에 맞춰 상승분을 추가 산정해 받겠다고 다시 소송을 제기했다. 그 결과 5월 1심 판결에서 점포당 5000만 원에서 1억 원 내외, 총 20억여 원을 지급하라는 결정이 내려졌다. 1심 판결 전 땅 주인은 건물에 대한 권리를 양도하면 청구금액을 탕감해주겠다고 했고, 이 과정에서 5개 점포가 건물에 대한 권리를 포기했다. 남은 14개 점포주는 7월 말 항소를 제기한 상태다.

5000만~1억 원 손해배상 청구에 항소

법률적 해석에 의해 일방적으로 땅 주인의 권리를 인정한 판결에서 자기 소유의 건물 등기를 가지고 40년 넘게 장사해온 사람들의 권리는 보장받을 수 없는 걸까. 이들 영세상인들의 변호를 맡고 있는 최연호 변호사는 “1983년 기존 판결 때문에 다른 주장이 받아들여지기 힘든 상황이다. 당시 상인들이 대법원에 상고하지 않아서 그때의 판결 효력이 지속된다”고 설명했다.

상인들 역시 두고두고 가슴을 치며 안타까워한다. 40년 전 물정 모르고 건물 등기만 난 점포를 분양받았고, 법률지식이 없는 데다 먹고살기도 바빠 대법원에 상고를 하지 못한 것이 오늘의 화를 자초했다는 것이다. 이호준 씨는 이제 그 사슬을 끊고 싶다고 말한다.

“선친이 살아계실 때 이곳 땅 문제로 힘들어하는 것을 자주 봤고, 돌아가시기 전에도 ‘내가 해결하고 가야 하는데’라며 안타까워했어요. 선친 유업이라 생각하고, 또 제 아이들에게 이 문제를 물려주지 않기 위해서라도 최선을 다할 겁니다. 이곳은 우리 부모 세대가, 또 그 아들딸과 가족이 40년 넘게 생계를 이어온 터전이에요. 점포 이상의 의미죠. 그만큼 여기서 앞으로도 오래도록 장사하며 함께 살아가길 바랄 뿐입니다.”

상인들은 사법부에 다음과 같이 호소했다.

“우리가 토지사용료를 안 내겠다는 게 아니잖아요. 오히려 우리는 돈을 내겠다고 했지만, 30년 가까이 아무런 대꾸도 없었던 거죠. 그런데 갑자기 건물도, 땅도 다 내놓고 나가라고 하면 우리는 어떻게 살라는 건가요. 40년 넘게 우리는 하코방(무허가 건물)이 아니라 꼬박꼬박 건물세 내며 장사를 해왔어요. 그러니 건물에 대한 부분도 인정해주고 같이 잘 살 수 있는 길을 찾아야죠. 우리에게 토지를 팔거나, 합당한 가격으로 임대를 해주면 좋겠어요. 손해배상금액도 재개발 얘기가 나오면서 최근 공시지가가 치솟아 액수가 높아진 것이니, 실제 여건과 주변 임대료 등을 고려해 적정선에서 조정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기자는 대를 이어 재판을 건 땅 주인의 생각을 듣고자 여러 차례 연락을 취했지만 답변이 없었다. 과연 사법부는 누구 손을 들어줄 것인가. 30년 세월을 지나 자식 세대에서 다시 벌어지는 두 번째 재판에 시장 상인들의 관심이 온통 쏠려 있다.



주간동아 908호 (p40~41)

김경화 객원기자 ymmd3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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