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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슈퍼 甲’보다 ‘참 어른’이 좋은 이유

임원과 리더의 품격은 자기 마음 다스려 빛을 내야 생겨나

  • 이종선 ㈜이미지디자인컨설팅 대표 janetnyu@naver.com

‘슈퍼 甲’보다 ‘참 어른’이 좋은 이유

7세가 된 조카 소민이와 사흘을 같이 지냈다. 조카가 집으로 돌아간 후 여기저기 늘어놓은 그림들과 색종이를 치우다 문득 떠올랐다. ‘내가 너무 잔소리꾼 고모 노릇을 한 건 아닌가?’ 맞는 것 같다. 식당에 데려갔을 때도 “식사를 가져다준 분에게 ‘감사합니다’ 해야지” 했고, 놀이터에 가자고 떼쓰면 “뭘 하고 싶을 때 소리를 지르거나 울면 안 돼. 부탁해야지” 했다. 소민이는 그때마다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나도 알아요! 유치원 선생님도 그렇게 가르쳐주셨어요”라고 말했다. 누구의 말처럼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유치원에서 다 배운다는 것이 맞는 듯하다.

그런데 지금 온통 지도층 인사가 저지른 사건으로 시끄럽다. 이 사건을 아이들이 알게 된다면 정말 어른 체면이 말이 아니다. 초등학생 때는 두 명이 한 책상을 쓰면서 가운데에 선을 긋고 그 선을 넘어오면 손목을 때리거나, 벌금을 내던 기억이 난다.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으면 안 되는 것. 그런데 오히려 어른이 돼서 더 자주, 더 많이 넘곤 한다.

품격(品格), 품위(品位) 등에 쓰는 ‘品’ 자에는 입 구(口) 자가 3개다. 그만큼 사람에겐 말이 중요하다는 의미다. 그러나 어디 말뿐이겠는가. 행동을 함부로 하는 사람도 많다. 문제는 그런 말과 행동이 자신뿐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긍정심리학 창시자인 마틴 셀리그먼 교수는 “말뿐 아니라 행동이 자신의 마음 상태를 좌우한다”고 말한다. 평소 직원들에게 거칠게 말하고 삭막한 눈빛을 보내면 마음도 시든다. 선한 본성을 기르면 그 선함이 자라고, 악한 본성을 기르면 악함이 자라난다고 했던 왕충(王充)의 주장도 기억해야 할 때다.

사람 마음을 사야

이런 사건들 때문인지 최근 기업에서 ‘임원의 품격’이나 ‘리더의 조건’을 주제로 강의를 요청해오는 경우가 많다. 그때마다 나는 갑이나 임원이기에 앞서 어른이 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자기 마음을 다스려 빛을 내는 ‘참 어른’이 되는 것이 승진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상사는 부하 직원에게 용건만 간단히 거칠게 말하고, 그 직원은 상사에게 받은 스트레스를 하청업체 사람에게 푸는 경우가 많아 아쉽다.



물론 그냥 ‘사람’에게 잘하는 어른도 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그런 분이다. 나와는 일면식밖에 없지만 내가 책을 보내자 유엔본부 그림이 그려진 카드에 자필로 격려 말씀을 빼곡히 적어 보내준 적이 있다. 그 카드를 보면서 그분의 응원에 힘입어 기운을 얻은 사람이 비단 나뿐일까 하고 생각하니 마음이 훈훈해졌다. 이처럼 소위 갑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을을 잘 혼내고 기죽이는 것이 아니라, 을이 일을 잘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우리 회사, 우리 조직을 위해 최선을 다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려면 마음을 사야 한다. 사람은 마음으로 움직이지 않는가.

나는 슈퍼 갑이라는 단어도 내키지 않는다. 의미야 알겠으나, 이미 갑을 과하게 인정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계약서 편의상 갑, 을을 구분해 표현하긴 해도 서로가 필요에 의해 만난 ‘사람과 사람’이라는 인식 전환을 해야 한다. 나는 가끔 ‘일하느라 사람을 만나는 게 아니라, 사람을 만나려고 일이 있는 건지도 몰라’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온갖 관계에서 마음을 다스리며 성장하는 일이 살아가는 내내 우리가 해야 할 일인지도 모른다. 게다가 우리는 갑이면서 을이고, 을이면서 갑이지 않은가. 돌아서면 내 가족 가운데 누군가가 상황과 단어만 다를 뿐 을의 임무를 하고 있을 텐데, 그 사실을 잊은 채 경거망동하는 사람을 보면 겁이 없다는 생각마저 든다.

어느 결혼식장에서 있었던 일이다. 결혼식 후 티타임 자리에서 대기업 협력업체 유 사장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김 사장님이 나에게 뭔가 기분 나쁜 일이 있는 것 같아요. 아까 식장에서 나한테 눈길만 주고 가시던데 혹시 무슨 문제가 있는지 아세요?” 결혼식장에서 만난 갑을 걱정했던 것이다. 마침 며칠 후 그 김 사장을 만나게 돼 그날 상황을 묻자 그는 뜻밖의 대답을 했다. 유 사장의 고등학생 아들이 옆에 있어 그랬다는 것이다. “유 사장은 평소 지나치게 정중한 언행으로 나를 대해요. 식장에서도 유 사장님보다 젊은 나에게 지나치게 정중한 모습을 보일 게 분명하잖아요. 그런 모습을 유 사장님 아들이 보는 걸 원치 않았을 뿐이에요.” 그 말을 듣는 순간 그의 큰 체격과 대비되는 섬세한 배려가 느껴졌다. 와인 시음 방법이나 테이블 매너와는 비교할 수 없는 사람에 대한 진정한 마음 자세였다.

서울대 소비트렌드센터에서 발표한 2013년 주요 키워드는 힐링과 디톡스다. 에너지가 소진돼 지치자 원상태를 복구해야 한다는 욕구가 강해진 것이다. 그래서인지 비상식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을 보노라면 ‘겉만 멀쩡하지 스트레스가 잔뜩 차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마녀사냥 식으로 그런 사람을 비판하는 누리꾼의 감정 상태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스트레스 관리 조절해야

‘슈퍼 甲’보다 ‘참 어른’이 좋은 이유
사람은 자신을 힐링하고 디톡스해야 행복해질 수 있다. 행복한 상태에 이르면 똑같은 자극이 와도 훨씬 포용력 넓게 받아들일 수 있다. 행복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자기 표현력을 기를 필요가 있다. 자기 표현력은 상대를 존중하면서 자기 의견, 생각, 감정 상태를 이성적으로 전달하는 일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은 이것을 참 못한다. 그래도 “행복해지는 것은 학습이 필요하다”는 달라이 라마의 말을 염두에 두고 노력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가족이나 조직 내에서는 못하다가 지갑을 든 갑이 되면 필요 이상으로 예민하고 거칠어진다. 그뿐 아니라 말하고 싶은 것이 있어도 소극적으로 행동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공격적으로 표현하곤 한다. 그런데도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늘 당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이 모든 단계에서 스트레스가 심해질 수밖에 없다. 이런 상태에서는 같은 자극에도 부정적인 판단을 하고, 날카로워진다.

그러므로 평소 자기 표현력을 길러 주체적이고 자발적으로 지내는 것이 좋다. 능력은 우수하나 이기적인 후배를 생각하며 친구에게 “요즘 젊은 것들은 얼마나 네가지(?)가 없는지 몰라”라고 밤새 말해봐야 그 후배는 변하지 않는다. 그 후배에게 직접 말해야 한다. “유능한 후배와 함께 일하니 참 든든하네. 그런데 팀워크에 좀 더 신경써주면 좋을 것 같아”라고. 시간차를 두고 여러 번 말해야 한다. 참지도 말고, 참다 참다 폭발하지도 말고 이성적으로 말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스트레스를 평소 잘 관리해야 진짜 어른이 된다.

호텔에서 열린 어느 최고경영자(CEO) 모임이 매끄럽게 진행되지 않자, 어떤 리더가 지배인을 불러 조목조목 따진 적이 있다. 어찌 보면 그 리더의 말이 맞았다. 그러나 그를 닮고 싶다는 마음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비슷한 상황에서 “이번에는 참 아쉽군. 다음에는 잘 좀 부탁합니다”라고 말하는 어른을 더 본받고 싶다. 물론 나 또한 그런 어른이 드물다며 아쉬워하기보다 내게 주어진 숙제를 더 잘해야 할 것이다. 후배들이 나를 보면서 진짜 어른이 되려고 노력할 수 있게 평소 마음을 잘 다스리는 일, 그게 나에게 주어진 행복한 숙제다.



주간동아 2013.05.20 888호 (p38~39)

이종선 ㈜이미지디자인컨설팅 대표 janetnyu@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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