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88

2013.05.20

“청와대 대변인이 만지면 영광으로 알아야지…”

벼락 출세 윤창중 자아도취 심리… ‘부인’과 ‘합리화’로 적극 방어

  • 손석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의학박사 psysohn@chollian.net

    입력2013-05-20 14: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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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와대 대변인이 만지면 영광으로 알아야지…”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은 거짓말을 했을까. 여러 정황상 그렇게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그가 기자회견에서 밝힌 내용과 귀국 직후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실 조사에서 진술한 내용이 많이 어긋난다는 점, 그가 비교적 구체적으로 말했던 술을 마신 시간과 장소에 대한 설명이 후속 취재에서 드러난 사실과 맞지 않는다는 점, 무엇보다 피해 인턴 직원의 진술과 많이 어긋난다는 점이 그가 거짓말을 했다는 의혹을 더 짙게 한다.

    진실은 수사 결과가 나와봐야 알겠지만 윤 전 대변인은 정신분석학 관점에서 많은 것을 보여준다. 물론 추정적 분석이지만 말이다.

    거짓말은 처벌 회피 수단

    윤 전 대변인에게 가장 먼저 작용한 정신적 방어기제는 ‘부인(denial)’이다. 그는 어쨌든 청와대 대변인 자리에 올랐기에 일견 성공한 사람이었다고 볼 수 있다. 임명 당시 일부 반대 여론에도 박근혜 대통령의 신임을 받아 그 자리에 올랐다. 그는 기자에서 칼럼니스트로 변신했고, 끝내 청와대 대변인 자리에까지 올랐다. 그는 아마 자신의 인생여정에서 최선을 다했을 테고, 꿈을 키워오면서 여러 노력과 절제도 했을 것이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속담처럼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대변인을 거쳐 청와대 대변인으로 우뚝 선 것이다.

    애초 젊은 시절 기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했기에 당연히 국회의원이나 청와대 혹은 정당 대변인, 언론홍보 계통 고위직을 꿈꿨을 것이다. 여하튼 그토록 달려왔던 그가 그날 단 한 번의 실수 또는 잘못된 행동으로 모든 것을 잃을 위기에 처했다. 그는 인정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것이 곧 부인이다. 이 방어기제는 거짓말과는 다르다. 거짓말은 스스로 분명히 인지한 상태에서 의식적으로 진실과 다르게 말해 책임을 경감하거나 처벌을 회피하려는 수단이다. 그러나 부인은 좀 더 무의식 차원에서 작동한다.



    ‘이럴 수가! 나에게 이러한 일이 생기다니! 이럴 수 없어. 사실이 아냐. 나에게 잠시 위기가 닥쳤을 뿐이야. 나는 여기서 끝나지 않아’라는 생각이 반복적으로 들었을 것이다. 마치 환자가 의사로부터 암 선고를 받았을 때 “그럴 리 없어요. 내가 암에 걸리다니! 그동안 건강검진도 여러 차례 받았고, 암에 걸릴 만한 식습관도 아니란 말이에요”라며 자신의 병을 부정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렇듯 부인이란 자기 의식세계에서 받아들이기 어려운 상황이나 진실을 무시 혹은 경시하는 마음가짐이다.

    그는 이어서 생각했을 것이다. ‘귀국하자마자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실의 조사를 받겠지만 여기에서 진술했던 내용을 뒤엎자. 지금 내가 말하는 것이 사실인 양 국민을 설득하고 해명해야 한다.’ 그리고 여러 법리적 검토를 거쳐 최대한 자신에게 유리하게, 그러면서도 거짓말처럼 보이지 않게 기자회견 내용을 치밀히 준비했을 것이다.

    그는 회견 내용에서는 ‘합리화(rational-ization)’라는 방어기제를 끌어들였다. 합리화란 보통 사람도 빈번히 사용하는 정신적 방어기제다. 이는 사회적으로 용납할 수 없는 충동이나 행동에 대해 그럴 듯한 설명이나 이유를 대는 것이다. 예컨대 충동적으로 술값 수십만 원을 내고 온 남편이 아내의 추궁과 질책이 두려운 나머지 “이번에 내가 최고급 일식집에서 그를 대접했으니 그가 나중에 몇 배로 보답해줄 거야”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반면에 거짓말은 “내가 계산하지 않았어” 혹은 “그 친구에게 사정이 있어서 일단 내 카드로 계산했고 나중에 그가 송금해주기로 했어” 등이다.

    여하튼 그의 표현대로라면 가이드(인턴 직원)를 꾸중한 것이 미안해 술자리를 갖자 했고, 신체적 접촉은 “앞으로 잘해. 미국에서 열심히 살고 성공해”라고 말하면서 허리를 툭 한 차례 치는 정도였으며, 자기 방으로 가이드를 호출한 것이 아니라 가이드가 노크해서 문을 열었을 뿐이다. 그는 실제로 그렇게 믿고 싶었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그는 자신의 성적 접촉 의도를 딸만큼 어린 여성을 위로하려는 차원이었다고 합리화했으며, 신체적 접촉에 대해서는 성적 쾌감 혹은 정복감을 위한 행동이 아니라 역시 격려 차원이었다고 합리화했다. 그리고 자신이 먼저 가이드를 부른 게 아니라 그녀가 자진해 방에 왔다고 말함으로써 성적 욕구의 강렬한 지속을 그녀의 유혹 또는 업무상 불가피한 마주침으로 합리화했다.

    가까운 시일 내에 진실이 밝혀질 것으로 보인다. 기자들의 현지 취재로 본다면 현재로선 윤 전 대변인이 거짓말을 했을 개연성이 높다. 그럼에도 무의식 차원에서 ‘부인’과 ‘합리화’라는 방어기제를 동원했으리라 본다. 그래야 최소한 가족 앞에서는 떳떳하다고 생각했을 수 있으니까.

    일각에서는 그가 회상성 기억 조작(retros-pective falsification·자기 방어를 위해 본인에게 유리하게 무의식적으로 기억을 조작하는 것)을 했을 개연성을 제기한다. 그러나 이는 오래된 사건에 대해 행하는 것으로, 며칠 전 일을 그렇게 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성공에 취해 긴장의 끈 놓았을 것

    “청와대 대변인이 만지면 영광으로 알아야지…”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

    한편 그의 진술과 다르게 거의 새벽까지 이어진 술자리 정황은 그의 시간관념에 문제가 있음을 시사한다. 물론 술을 많이 마신 상태에서는 시간이 빨리 또는 천천히 흘러가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수 있다. 그렇다 해도 그의 충동억제 및 욕구조절 능력에 문제가 있는 것만은 확실하다. 평소 그의 주벽이 심하지 않았다는 주변 전언대로라면 그는 자신의 성공에 심취해 긴장의 끈을 놓았을 공산이 크다. 아무리 인턴 직원을 위로하려는 차원이라지만 국가의 중요한 외교 현장에서 수행 기자들도 아닌, 인턴 직원과 술을 마신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이다.

    보리스 옐친 러시아 전 대통령은 국제무대에서 술 때문에 여러 번 구설에 올랐고, 카다피 리비아 전 원수 역시 장기 집권하면서 말년에 여러 기행으로 입방아에 올랐다. 사회적 지위가 높거나 성공한 사람은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하고 말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자아도취 혹은 자기애(narcissism) 심리다. ‘내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데 어떤 언행을 하든 누가 뭐라 하겠는가’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비록 윤 전 대변인은 옐친이나 카다피만큼 대단한 권력자는 아니지만, 인턴 직원 앞에서는 자기 자신을 엄청난 권력자라고 느꼈을 공산이 크다. ‘대단한 내가 평범한 너를 만져주니 영광으로 여기라’는 자아도취 심리가 작동했을 수 있다.

    여하튼 대한민국 기성세대, 특히 성공한 중·장년층 남성은 제발 수컷 사자의 야성 본능을 버리고 이성적, 합리적, 상호 존중 및 양성평등의 태도를 갖춰야 할 것이다. 그리고 윤 전 대변인도 이번 잘못을 계기로 미국으로 돌아가 법의 심판을 달게 받고, 대한민국의 모범 어른으로 거듭나길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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