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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 | 이형석의 영화 읽기

5·18 학살 책임자 ‘그 사람’ 정조준

조근현 감독의 ‘26년’

  • 이형석 헤럴드경제 영화전문기자 suk@heraldm.com

5·18 학살 책임자 ‘그 사람’ 정조준

5·18 학살 책임자 ‘그 사람’ 정조준


자그마치 26년을 장전했다. ‘그 사람’의 벗어진 머리가 마침내 사정권에 잡혔다. 머릿속으로 얼마나 많이 상상한 장면이고, 얼마나 기다려온 순간인가. 필요한 것은 마지막 총탄 한 발. 그런데 눈에선 눈물이 흐르고, 손은 대책 없이 떨려 총구 초점이 자꾸 흔들린다. 그 사람의 목을 뒤에서 움켜쥐고 빨리 쏘라고 울부짖는 이는 또 다른 ‘광주의 자식’. 뒤엉킨 광주의 가해자와 피해자, 그들을 향해 총구를 정조준한 국가대표 사격선수 심미진(한혜진 분). 방아쇠는 당겨지고 총성이 울린다. 탕! 그리고 이내 스크린을 덮는 암흑과 정적. 현실에선 이루지 못한 단죄를 영화는 이뤘을까. 아니면 ‘불의’를 심판하지 못한 역사처럼 그들의 복수극도 또 한 번 오발탄으로 끝났을까.

최후 총성과 짧은 에필로그로 막을 내리는 ‘26년’은 ‘그 사람 단죄 프로젝트’를 표방한 영화다.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양민학살의 ‘책임자’를 단죄하려고 나선 ‘희생자’들의 복수와 응징을 담은 액션 스릴러다. 극중 양민학살 주범으로 지목된 ‘그 사람’은 누구일까.

“그 사람 역의 장광입니다. (제가 맡은 역이) 실존인물이기 때문에 흡사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었습니다. 자료화면을 보면서 연구했습니다.”

영화 ‘도가니’에서 자신이 운영하는 특수학교 장애학생들을 성폭행하는 학교 이사장이자 교장 역을 맡았고, ‘광해, 왕이 된 남자’에서 가짜 광해군을 보필하는 내관을 연기했던 그는 ‘26년’ 시사회가 끝나고 열린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밝혔다. 극중에서도, 기자회견에서도 그 사람의 이름은 끝내 불리지 않았다. 하지만 누가 봐도 그 사람은 전두환 전 대통령이다.



“젊은 친구들 나한테 감정이 안 좋은가 봐”

극중에서 그 사람은 대한민국 11대, 12대 대통령으로 등장한다. 퇴임 후엔 쿠데타와 정치 비자금 수수 등 죄목으로 검찰이 사형을 구형했고, 법원에서 추징금 2205억 원을 선고받는다. 스스로 전 재산이 ‘29만 원’이라고 밝힌 그 사람은 차기 정권의 특별사면으로 풀려난다. 그 사람 역을 맡은 배우 장광은 대머리에 금테 안경을 쓴 외모, 경상도 억양이 강한 말투 등 실존인물과 매우 흡사한 연기를 보여준다. “요즘 젊은 친구들이 나한테 감정이 안 좋은가 봐, 나한테 당해보지도 않고…”라고 한 실제 발언도 영화 대사로 인용된다. 2008년 4월 18대 총선 당시 투표 장면을 취재하던 기자들에게 전두환 전 대통령이 했던 말이다.

그 사람을 단죄하려고 나선 이들은 누구인가. 영화는 오프닝에서 1980년 5월 그날로 거슬러 올라간다. 갓난아기를 업은 아낙과 그 옆에서 아기 이름을 짓는 젊은 아비. 세 가족의 단란한 일상이 어디선가 날아온 총탄에 사정없이 찢긴다. 총탄이 젊은 어미의 머리를 관통한 뒤 남자는 울분을 술로 삭혔고, 죽은 어미 등에 매달려 하염없이 울기만 하던 딸아이는 그날 이후 평생 업을 떠안았다. 1980년생 여자 심미진은 26년 후 국가대표 사격선수가 된다.

그날 아비, 어미를 잃은 자식은 심미진 말고도 많다. 깡패 곽진배(진구 분)는 26년 전 널브러진 시신들 틈에서 죽은 아버지를 부여잡고 울던 어머니를 잊지 못한다. 5·18 당시 여고생 누나와 함께 손을 잡고 외출했다가 시위대에 휩쓸렸던 소년 권정혁(임슬옹 분)은 계엄군 총격에 누나를 잃고 26년 후 경찰이 됐다.

5·18 학살 책임자 ‘그 사람’ 정조준
2006년 5월을 앞둔 어느 날, 사설 경호업체 사장 김갑세(이경영 분)와 그의 아들 주안(배수빈 분)이 이들 앞에 나타난다. 앞에는 시위대, 뒤에는 탱크. 명분은 ‘폭도진압’이었으나 사실상 양민학살에 동원됐던 계엄군 가운데 김갑세가 있었다. 평생 죄책감 속에서 고통스럽게 살아온 그가 희생자들을 모아 그 사람을 단죄하기로 한 것이다.

영화 초반 10여 분간 주인공들의 과거를 보여주는 5·18 광주민주화운동 장면은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했다. ‘마당을 나온 암탉’을 제작한 오돌또기가 그린 애니메이션은 기록화면이나 실사의 극적 재현보다 오히려 정서적 파급력이 크다. 비극적인 정조가 깊이 밴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관객은 주인공들의 삶과 감정에 훨씬 쉽게 동화된다.

희생자들이 떠안은 고통

역사적 범죄자를 단죄해야 한다는 법적, 윤리적 정당성보다 평생 가누지 못할 충격과 상처를 떠안은 희생자들의 고통이 ‘26년’을 끌고 가는 강력한 동력이자 객석의 울림을 이끌어내는 힘이다. 배드민턴을 치러가려고 호위차량을 동원한 그 사람의 편의를 위해 시내 교통신호를 조작해야 하는 경찰 권정혁의 비애와 아이러니는 관객에게 그대로 전달된다. 영화는 천형처럼 분노와 복수심을 안고 살아야 하는 주인공들과 만행을 저지르고도 여전히 권력 후광을 누리며 호의호식하는 그 사람을 끊임없이 대조하면서 단죄를 위한 작전을 한 단계씩 실행해간다.

강풀의 동명 웹툰이 이미 풍성한 에피소드와 정서적 폭발력을 담고 있는 데다, 영화 역시 원작의 기본 얼개와 전반적인 감정 흐름을 좋은 호흡으로 쫓아간다. 장광, 이경영 등 중견 배우들의 호연도 인상적이지만, 5·18 광주민주화운동과는 시대적, 심리적으로 거리감이 있는 진구, 한혜진, 배수빈, 임슬옹 같은 젊은 배우들의 열정적 앙상블이 ‘뜻밖’이라고 할 만큼 돋보인다.

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작품으로는 ‘오! 꿈의 나라’ ‘꽃잎’ ‘화려한 휴가’ 같은 극영화와 다큐멘터리 ‘오월愛’가 있었다. ‘26년’은 이들 작품 가운데 가장 상업적 매무새를 가졌고, 장르(액션스릴러)에 충실하면서도 가장 직접적인 어법으로 역사적 사건을 ‘정조준’했다. 대통령선거를 앞둔 시점에 5공화국 정권이 자행한 끔찍한 폭력과 고문을 그린 ‘남영동 1985’에 이어, 당시 최고통수권자를 대상으로 한 복수극을 다룬 ‘26년’이 개봉했다. 극장가가 돌이켜본 ‘과거사’가 관객들로부터 어떤 반응과 평가를 이끌어낼지 궁금하다.



주간동아 2012.12.03 865호 (p64~65)

이형석 헤럴드경제 영화전문기자 suk@herald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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