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27

2012.03.05

데이터보다 구체적 정보가 아름답다

  • 한기호 출판마케팅연구소장 khhan21@hanmail.net

    입력2012-03-05 10: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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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이터보다 구체적 정보가 아름답다
    정치 컨설턴트 박성민의 ‘정치의 몰락’(민음사)을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사람들은 소 한 마리와 그것을 키우는 할아버지가 주인공인 영화 ‘워낭소리’를 보고 울지만, 구제역으로 소 300마리를 살처분했다는 뉴스를 보고는 불쌍하다고만 생각한다. 3000마리를 살처분했다는 뉴스를 들으면 ‘꼭 다 묻어야 하나, 그냥 먹을 수는 없나’라고 생각하고, 3만 마리를 살처분했다는 뉴스에는 “이렇게 다 묻어도 괜찮나”라며 슬슬 나라 걱정을 한다. 그러나 30만 마리를 묻었다는 뉴스에는 시큰둥하고, 급기야 300만 마리를 묻었다는 뉴스는 아예 보지도 않는다. 박성민은 그 이유를 ‘추상’과 ‘구체’로 설명한다. 다시 말해 구제역으로 죽은 소 300만 마리는 ‘추상’으로, ‘워낭소리’의 소는 ‘구체’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여기서 구체는 달리 말하면 팩트(fact)다. 필자는 지난 호에서 “팩트의 가장 큰 장점은 ‘나’와 ‘너’의 개인차를 명확하게 일깨워준다는 것이다. 개인차를 정확하게 아는 자만이 ‘우리’라는 공동체의 밑그림을 확실하게 그릴 수 있다”고 말했다. 개인차가 왜 중요할까. 오늘날 디지털 첨단기술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정보를 세분화한다. 그리고 어느 영역에서나 1등만 살아남는 ‘승자독식사회’ 체제가 갈수록 견고해지고 있다. 따라서 개인은 남들이 도저히 따라올 수 없는 확실한 자기 세계를 구축해야만 안정되고 빛나는 삶을 꾸려갈 수 있다. 골목대장이라도 될 수 있을 정도의 개인기를 확실히 갖춰야만 한다.

    이런 시대에 개인에게 필요한 ‘교양’은 완전히 따로 존재한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 시대의 교양은 정보나 지식이 지닌 가치의 원근감을 정확히 볼 수 있는 안목이다. 달리 말하면 교양은 배우고 알아서 저장하고 보관하는 지식이 아니라, 그 지식이 전체의 어느 부분에 위치하는지를 제대로 파악하는 능력이다. 그런 능력을 가진 사람은 자신이 즉각 동원할 수 있는 정보를 모아 필요한 어떤 것을 곧바로 만들어내는 지식, 즉 브리콜라주(bricolage)적인 지식을 갖춘 사람이기도 하다. 따라서 교양의 힘은 ‘몰입’ 혹은 전문(專門)을 상대화하고 거리화하는 힘, 바로 역량이다.

    홀로 존재하는 정보는 데이터에 불과해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러나 정보와 정보를 비교하면 차이가 드러난다. 기호학에서는 이 차이를 변별이라고 하는데 이 차이가 의미를 만든다. ‘정보는 아름답다’(데이비드 맥캔들리스, 생각과느낌)는 정보와 정보를 비교해 차이가 발생하는 모습을 무수히 보여준다. 따라서 이 책을 통해 직접적인 사실과 건조한 통계의 무의미한 나열이 아닌, 정보와 정보 사이의 관계와 맥락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이 책의 첫 파트인 ‘억만 달러’는 증여, 지출, 전쟁, 축적, 빚, 손실, 수입 등에 필요한 막대한 비용을 각각 다른 색의 간단한 사각형 크기로 비교해 보여줘 개별 정보의 의미를 쉽게 유추할 수 있다. 2003년에 예상한 이라크전쟁 비용이 600억 달러였으나 실제로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들어간 총비용은 3조 달러였으며, 애플의 시장가치와 아프리카의 부채가 각 2270억 달러고 미국 국방예산이 7200억 달러에 불과하다는 사실 등을 여타의 비용과 함께 보다가 다음 페이지로 가면 2008년 금융위기 극복 비용이 얼마나 어마어마한지를 한눈에 깨닫게 된다.



    데이터보다 구체적 정보가 아름답다
    이처럼 ‘정보는 아름답다’는 문자 언어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과학, 사상, 문화 상식 등 12가지 분야를 다룬 독창적인 팝아트 작품 90여 편을 담았다. 비슷한 형식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모든 작품의 개성이 강하다. 임팩트가 강한 사진처럼 정보의 실체와 맥락을 한눈에 보여주는 작품을 바라보면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저절로 튀어나온다. 이렇게 해서 기억하게 된 사실은 쉽게 잊히지 않는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다. 서점에 가서 직접 한번 넘겨보시라.

    1958년 출생.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학교도서관저널’ ‘기획회의’ 등 발행. 저서 ‘출판마케팅 입문’ ‘열정시대’ ‘20대, 컨셉력에 목숨 걸어라’ ‘베스트셀러 30년’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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