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89

2017.05.24

김작가의 음담악담(音談樂談)

‘팝의 만신전’ 자유이용권 가진 평론가의 삶

로버트 힐번의 책 ‘전설들의 이야기는 어떻게 노래가 되었나’

  • 대중음악평론가 noisepop@daum.net

    입력2017-05-22 17: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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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관에서 우연히 발견한 ‘전설들의 이야기는 어떻게 노래가 되었나’(‘전설들’·  돋을새김) 저자는 로버트 힐번. 낯익은 이름인데 기억이 나지 않았다. 저자 소개를 보고서야 아차 싶었다. 해외 아티스트를 소개하는 글에서 종종 인용되던 저널리스트였다. 1970년부터 2005년까지 35년간 ‘LA타임스’ 소속 비평가로 활동한 그를 U2 멤버 보노는 서문에서 이렇게 말한다.

    ‘글쟁이로서 그의 글은 절제된 감각과 검박함을 지니고 있어, 무미건조하고 전문적인 논조의 그레일 마커스나 진부한 미사여구를 늘어놓는 레스터 뱅스와 같은 유명한 해설자나 평론가들의 반대편에 그를 위치하도록 해왔다.’

    이 소개를 읽으며 나는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보통 평론가는 뮤지션의 적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러니 음악평론가의 책에 당대를 대표하는 음악가가 저런 상찬을 했다는 게 믿기지 않았던 것이다. 보노가 일개 저널리스트에게 아부할 위치도 아니고 말이다.

    ‘전설들’이 여느 음악책과 다른 점은 저자 자신의 이야기 속에 인터뷰와 음악사, 아티스트론이 녹아 있다는 것이다. 책은 존 레넌이 총격으로 사망한 1980년 12월로부터 몇 주 전, 힐번이 레넌을 마지막으로 만난 일화로 시작한다. 인터뷰이와 인터뷰어 관계가 아닌, 친구로서 만났을 때다. 레넌은 도나 서머의 새 앨범을 힐번에게 들려주며 “마치 엘비스처럼 부르고 있어”라고 흥분한다. 또 그가 ‘엄마’라 부르던 오노 요코 몰래 숨겨둔 초콜릿을 힐번과 나눠 먹는다. 이 만남에서 있었던 지극히 사적인 일을 몇 년 후 힐번은 보노에게 들려준다. 팝의 레전드와 일화를, 새로운 레전드가 될 준비를 하던 또 다른 음악가에게 전승한 것이다.

    이 일은 그가 그저 권위 있는 매체 소속의 평론가라 가능했던 게 아니다. 단순히 음악지식이 해박하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도 아니다. 평생 지켜온 음악에 대한 애정과 관점, 이로 인해 쌓인 풍부한 지식을 바탕 삼아 음악가 자신도 몰랐던 스스로의 내면을 짚어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를 파괴할수록 사람들은 내 음악을 더 좋아해요. 그래요, 저도 자신을 소중히 여길 줄 알아요. (중략) 그럼 뭐해요. 내 안에 있는 빌어먹을 무언가 때문에 이렇게 살 수밖에 없는데.”(재니스 조플린)

    “음악을 만들지 않는다는 건 내 인생 전체를 통틀어서 가장 힘든 일이었어. 음악에 대한 애정이 있다거나 내가 아주 창의적이라 곡을 안 쓰고는 못 견디기 때문이어서가 아니라 내 이름이 잡지의 가십란에 실리지 않는 걸 견딜 수가 없었던 거야.”(존 레넌)

    당대 아티스트들로부터 이런 속마음을 끌어낸 힐번이지만 마이클 잭슨, 엘비스 프레슬리 같은 은둔자의 속마음에 들어가는 데는 실패했다. 노벨문학상 수상을 둘러싼 일화에서 알 수 있듯, 일생을 고정관념과 대중의 욕망으로부터 도피해온 밥 딜런과는 1970년대부터 만나왔지만 한 번도 그의 사생활이나 노래 창작 배경에 대해 듣지 못한다. 음악산업의 주도권이 음반에서 음원으로 넘어간 2000년대 중반이 돼서야 딜런은 비로소 힐번에게 자신의 음악적 근원과 영감의 생성에 대해 털어놓는다. 그의 일생과 음악계의 변화라는 씨줄에 딜런이 마음을 여는 과정이 날실로 엮인다. 이런 이야기를 쓸 수 있는 비평가가 얼마나 될까.

    ‘전설들’을 읽는 내내 나는 힐번이 부러웠다. 팝의 만신전(萬神殿)에 자유롭게 들락거릴 수 있는 티켓을 소유해서. 그리고 다짐했다. 그와 20~30세 터울의 세대를 겨냥하는 음악에 대해 이야기하면서도 불굴의 에너지를 가진 음악가를 발굴하려는, 한 번도 잃지 않은 초심을 배우겠다고 말이다. 그 초심이 있었기에 그는 일생 동안 자신의 티켓을 잃지 않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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