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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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 소설 ‘흑산’ 김훈 명성 이어가나

  • 한기호 출판마케팅연구소장 khhan21@hanmail.net

    입력2011-11-07 13:3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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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편 소설 ‘흑산’ 김훈 명성 이어가나
    올해 가장 많이 팔린 소설은 공지영의 ‘도가니’다. 2009년 6월에 출간된 이 소설은 영화 ‘도가니’ 돌풍에 힘입어 올해에만 43만 부 팔렸다. 2위는 41만 부가 팔린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다. 2008년 11월에 출간돼 전 세계 30여 개 나라와 출간계약을 맺은 이 소설은 미국 출판시장에서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또한 이미 번역판이 출간된 15개국에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국내에서도 200만 부 돌파를 눈앞에 둔 상태다. 공지영과 신경숙은 올해 신간소설을 내놓지 않았지만 여전히 한국 소설시장을 대표하는 작가 자리를 굳건히 지켰다.

    이들과 함께 소설을 펴내기만 하면 10만 부 이상 판매되는 작가로는 박완서, 황석영, 김훈을 들 수 있다. 문학성과 상업성이 가장 확실한 작품을 연이어 펴냈던 박완서가 올해 초 작고해 우리는 중요한 문학적 자산 하나를 잃었다. 작년에 ‘강남몽’을 펴내 그런대로 인기를 유지했던 황석영은 올해 ‘낯익은 세상’을 내놓았지만 예전의 인기를 이어가지 못했다.

    이 밖에 올해 화제를 끈 소설로는 최인호의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 정유정의 ‘7년의 밤’, 김애란의 ‘두근두근 내 인생’ 이 있다. 노익장을 과시하며 문학적 건재함을 보여준 최인호와 ‘충무로’가 가장 주목하는 작가로 올라선 정유정의 소설은 20만 부가량 팔렸다. 전작 ‘내 심장을 쏴라’가 이미 10만 부 이상 팔린 정유정은 박완서의 빈자리를 확실하게 채울 자격이 있음을 증명해 보였다. 문학적 찬반논쟁을 불러일으킨 ‘두근두근 내 인생’은 15만 부가 팔리면서 김애란이라는 젊은 작가의 가능성을 주목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우리 소설시장의 현재는 여기까지다.

    ‘공무도하’와 ‘내 젊은 날의 숲’을 연이어 내놓았지만 큰 재미를 보지 못했던 김훈이 최근 ‘흑산’을 펴냈다. 김훈의 대표작은 이순신이 사투를 벌인 궁극적 대상이 바로 자신이었음을 비장하게 그린 ‘칼의 노래’, 그리고 병자호란 당시 인조가 남한산성에서 고립돼 있을 때 주화파와 척화파의 치열한 다툼을 그린 ‘남한산성’이다. 이런 소설은 한국형 팩션이다. 그러니까 ‘흑산’은 이들의 계보를 잇는다고 볼 수 있다.

    ‘흑산’은 1801년 천주교 신자들이 목숨을 잃은 신유박해를 전후한 조선 사회의 혼란상을 그린 작품이다. 이 소설에는 특별한 주인공이 없다. 좌절한 엘리트로 유배 중에 ‘자산어보’라는 명저를 남긴 정약전은 그저 보조출연자에 불과할 뿐이며, 하급무관 박차돌을 중심으로 한 기층 민중이 실제 주인공이다.



    등장인물이 ‘죽어서 살 것인가, 살아서 죽을 것인가. 치욕을 감내할 것인가, 치욕을 감내하지 않고 죽음을 선택할 것인가’라는 운명적 선택을 해야 하는 것은 김훈 소설의 익숙한 문법이다. 스타일리스트인 그는 이런 문법을 문체의 힘으로 이끌어가면서 실제 삶에서 무수한 선택을 강요받는 사람들로부터 인기를 끌었다.

    ‘흑산’의 주인공들도 순교와 배교라는 극단적 선택에서 번민한다. 하지만 ‘흑산’에서는 이 익숙한 문법을 문체의 힘만으로 이끌어가지 않는다. 긴박감 넘치는 문장으로 묘사하는 사실적 서술이 갖는 장점은 여전하지만, 단순한 구도로 엮은 전작에 비해 다양한 인간 군상이 펼치는 소설적 구성력이 돋보인다. 가벼운 소설이 판치는 현실에서 모처럼 묵직한 주제를 제대로 그린 소설을 만났다.

    장편 소설 ‘흑산’ 김훈 명성 이어가나
    ‘흑산’이 밀리언셀러가 된 ‘칼의 노래’와 50만 부 이상 팔린 ‘남한산성’의 인기를 이어갈지 귀추가 주목된다. 이번에도 그에 버금가는 인기를 끈다면 그는 한국에서 최고 인기를 누리는 남성 작가 자리를 당당히 꿰차게 될 것이다.

    1958년 출생.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학교도서관저널’ ‘기획회의’ 등 발행. 저서 ‘출판마케팅 입문’ ‘열정시대’ ‘20대, 컨셉력에 목숨 걸어라’ ‘베스트셀러 30년’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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