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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리포트

北女 손잡고 ‘휘파람’ 불렀던 MB 남북 ‘칼바람’ 녹일 수 있나

원칙에 발목 잡혀 꽉 막힌 남북 계속 기싸움…北 이산가족 상봉 대가로 관광재개 요구할 듯

  •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北女 손잡고 ‘휘파람’ 불렀던 MB 남북 ‘칼바람’ 녹일 수 있나

北女 손잡고 ‘휘파람’ 불렀던 MB 남북 ‘칼바람’ 녹일 수 있나

① 2006년 6월 26일 이명박 대통령이 북한 여성의 손을 붙잡고 ‘사랑 노래’를 부르고 있다. ②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숙청된 것으로 알려진 주동찬 전 민족경제협력위원회 부위원장이 건배를 제안하고 있다. ③ 이명박 대통령은 노래방 기계 반주에 맞춰 북한가요 ‘휘파람’을 불렀다.

이명박(MB) 대통령이 여성 도우미 손을 잡고 노래방 기계 반주에 맞춰 사랑 노래를 부른다. 연심을 느낀 남자가 여자가 사는 집 앞에서 휘파람을 분다는 노랫말.

“어젯밤에도 불었네~ 휘파람~ 휘파람~.”

MB가 부른 휘파람은 보천보전자악단 소속 전혜영이 부른 북한 대중가요. 도우미가 흰색 드레스를 입고 MB를 돕는다.

주동찬 북한 민족경제협력위원회 부위원장은 낮술 탓인지 얼굴이 붉다. 원세훈 서울시 행정부시장이 술잔을 든다. MB가 건배사를 한다. 정태근 정무부시장이 박수를 친다. 농담이 오간다, 건배가 이어진다. 강만수 서울시정개발원구원장, 남성욱 고려대 교수도 보인다.





위에 언급한 술자리 묘사는 MB가 북한 개성에 갔을 때 누군가 찍은 비공개 사진 여덟 장을 바탕 삼은 것이다. 북측이 촬영했는지, 남측 수행원이 찍었는지는 명확지 않다. jpg파일에 남은 디지털 기록은 2006년 6월 26일 찍은 사진이라고 밝힌다. MB는 서울시장 퇴임을 나흘 앞둔 이날 개성에 갔다. 주동찬의 안내로 개성공단을 둘러보면서 MB가 말한다.

“개성은 한반도 평화와 번영에 초석이 되는 곳이다. 개성공단은 남북한이 경협뿐 아니라, 신뢰를 쌓는 중요한 구실을 한다.”

북한 관료들은 술자리 대화를 비롯한 MB의 언행을 상부에 보고했다. 통일전선부는 방북한 한국 정치인의 일거수일투족을 정리해 파일로 남긴다. 한 대북소식통은 MB에 대한 북한의 기대가 적잖았다고 전한다.

서울시장 퇴임 나흘 전 개성 방문

北女 손잡고 ‘휘파람’ 불렀던 MB 남북 ‘칼바람’ 녹일 수 있나

북한은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의 개성 방문을 열렬히 환영했다. 강만수 산은금융지주 회장(가운뎃줄 오른쪽에서 여섯 번째), 정태근 의원(앞줄 오른쪽에서 네 번째) 등이 MB를 수행했다.

“MB가 북한에 가기 직전 서울시가 평양 종양연구소에 의료기기를 지원했다. 평양 안학궁터 발굴 사업에도 돈을 댔다. 윤이상음악회 기금도 지원했다. 대북사업이 ‘손학규 경기도’처럼 활발하진 않았으나 서울시도 북한과 끈을 맺은 것이다. 대선 직후 북한은 MB가 실용주의로 대북정책을 짤 것으로 봤다. 보수정권이 들어서더라도 남북경협이 확대되리라 전망한 것이다. 북한이 2007년 10월 남북 정상회담에 나선 것도 차기 정권과의 경협을 겨냥한 측면이 컸다.”

북한 대남라인은 MB정부가 들어선 후 칼바람을 맞았다. MB 옆자리에 앉아 술잔을 기울이던 주동찬도 칼날을 피하지 못했다. 처형설이 나도는 최승철 통일전선부 부부장과 함께 공식 석상에서 사라진 것. 죄목은 개인 비리지만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을 오판한 탓에 된서리를 맞았다는 게 정설이다.

도우미 손을 꼭 붙잡고 북한 노래를 부르거나 개성공단이 평화와 번영의 초석이라고 강조하는 ‘대통령 MB’를 기대한 것은 평양의 오판이었다. 2008년 이후 남북관계는 ‘길들이기 vs 길들이기’로 요약할 수 있다. 기대가 분노로 바뀐 김정일 집단은 막가파식 도발로 응전에 나섰다.

MB정부 대북정책에 대한 전문가의 평가는 엇갈린다. 찬성론자는 “원칙을 앞세워 왜곡된 관계를 바로잡았다” “회담을 하고자 돈 퍼주는 관행을 끊었다”고 본다. 비판론자는 철학의 빈곤을 꼬집는다. 정책 없이 태도만 앞세운(no policy, only attitude) 원칙으로 남북관계를 악화시켰다는 것. “좌파 정부가 퍼주기로 핵무기 개발을 도왔다면 MB는 허송세월하면서 북한을 파키스탄 모델(핵보유국)로 나아가게 했다”는 회의론자의 견해도 있다.

MB는 집권 첫해 20대 국정전략 및 100대 국정과제를 내놓았다. 로드맵(load map)을 만드느라 세월을 허송한 노무현 정부의 전철을 밟지 않겠다면서 액션 플랜(action plan)을 내놓았다. 남북관계는 20대 국정전략 중 열일곱 번째 항목(한반도의 새로운 평화구조를 만들겠습니다)에 담았다. 국정과제 ‘전략 17’ 가운데 대북정책은 셋이다.

① 북핵 폐기를 지속적으로 추진하겠습니다.

② 비핵·개방·3000 구상(나들섬 구상 포함)을 추진하겠습니다.

③ 남북 간 인도적 문제를 해결하겠습니다.

①, ②, ③ 가운데 성과를 낸 것은 하나도 없다. 약속을 지키지 못했으므로 낙제점을 면키 어렵다. 미국과 공조해 북핵 폐기를 지속적으로 추진했으나 성취가 전무하다. 나들섬이 황해 어느 곳 섬인지 아는 시민을 찾아보기 힘들다. 언제부턴가 ‘비핵·개방·3000’은 언급조차 되지 않는다. MB는 독재정권 탓에 굶주리는 북한 주민의 인도적 문제도 해결하지 못했다. 올해 9월 북한이 수해를 입자 쌀, 옥수수가 아닌 초코파이를 주겠다고 나서 평양의 자존심만 긁었다.

MB정부 출범 초부터 대북정책에 관여한 당국자는 류우익 통일부 장관 취임(9월 19일) 직전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어른(MB)은 남북관계를 잘 관리하겠다는 바람을 임기 초부터 가졌다. 엇박자가 이어지면서 남북관계가 어긋났다. 의도하지 않은 엇박자 탓에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남북관계가 떠밀려 왔다.”

MB는 7월 11일 국회 단상에 서서 전향적 통일정책과 당국 간 전면 대화를 북한에 제안했다. 국회에서 대북 어젠다를 내놓기 직전 금강산에서 한국 관광객 피격 사건이 일어났다. MB는 연설문을 수정하지 않고 읽었다. 당일 석간신문부터 MB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국민이 총에 맞아 죽었는데 대화를 제안하는 게 말이 되느냐는 질타였다. MB는 여론의 뜻에 따라 갑을 관계를 바로잡겠다는 원칙론자로 되돌아왔다.

2009년에도 엇박자가 이어졌다. 정부는 2009년 8~10월 금강산관광 재개를 비롯해 현정은(현대그룹 회장)-김정일 회담 때 합의한 내용 가운데 이산가족 상봉만 받았다. 북한 관료들은 MB가 알맹이만 빼먹고 뒤통수를 쳤다며 발끈했다. 2009년 10월 임태희 노동부 장관(현 대통령실장)은 싱가포르에서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을 만났다. 북한이 소수의 납북자 및 국군 포로를 한국에 송환하기로 결심하면서 정상회담 합의 직전까지 같으나 김태효 대통령대외전략비서관, 현인택 통일부 장관(현 대통령통일정책특보)을 비롯한 강경파가 어깃장을 놓았다.

2010년에도 불협화음은 화음으로 바뀌지 않았다. 청와대 관계자는 “2010년 초 대통령 외교안보자문단에 중립, 진보 인사를 포함시켜 정책 전환을 하려고 했으나 청와대 분위기를 감지하지 못한 북한이 막무가내로 도발에 나섰다”고 회고했다.

원칙 지키며 이산가족 상봉 어려워

김정일 집단은 2010년 3월 천안함 폭침과 11월 연평도 포격으로 남북관계를 벼랑으로 내몰았다. 남북이 올해 4월부터 비밀 접촉을 재개했는데도 북한은 예의에 어긋나는 짓을 했다. 김태효 비서관의 발언을 녹음했다면서 “우리가 돈 봉투를 처던지자 김태효 얼굴 벌게졌다”며 비공개 회담의 디테일을 공개해 MB 뒤통수를 쳤다.

‘노동신문’과 조선중앙통신 등 주요 매체를 통한 북한의 남한 당국자 비방은 대남정책 기조에 따라 강도와 빈도가 변했다. 특이하게도 MB를 비방하지 않을 때는 어김없이 남북 간 비밀접촉이 있었다. ‘이명박 역도’ 운운할 때는 강경 기조가 북한 지도부 내에 팽배했다는 것을, 반대의 경우 유화 기조로 전환했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다.

북한은 천안함 폭침을 일으키기 직전인 지난해 3월 12일 ‘노동신문’을 통해 MB의 3·1절 경축사 내용을 비난했다. 2009년 8월 이후 7개월 만에 다시 MB를 실명 비방했다는 점에서 모종의 대남 위협이 있을 것임을 예측케 했다. 이에 앞서 북한은 김대중 전 대통령 빈소에 조문단을 보내 연내 정상회담 개최를 요구하며 대화 공세에 나선 2009년 8월경부터 MB 비방 횟수와 강도를 줄였다. 북한의 대내외 라디오 방송을 기준으로 한 MB 실명 비난 횟수는 2009년 4월 207회, 4월 333회, 6월 454회로 정점을 찍은 뒤 7월 275건, 8월 264건으로 줄었다가 8월 25일 이후 중단됐다. 북한은 과거 같은 비방을 하더라도 ‘이명박 역도’에서 ‘그냥 역도’라고 실명을 빼는 등 현저한 변화를 나타냈다. 북한은 2009~2010년 대화 시도가 좌절하면서 강경파인 현인택 전 장관을 상대로 입에 담기 어려운 독설을 쏟아냈다.

류우익 장관은 ‘Mr. 유연성’으로 불린다. 북한은 ‘유연성 장관’을 상대로 한 독설을 자제하고 있다. MB 비방도 누그러뜨렸다. 남북이 대화 국면으로 돌아섰다는 징후다. 류 장관은 남북이 기 싸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이산가족 상봉 논의 및 금강산관광 재개를 선제안할 뜻을 내비쳤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 방북을 돕겠다”는 말도 했다. 이 여사가 김정일을 만나 대남 메시지를 가져올 소지도 없지 않은 것이다.

노무현 정권은 북한에 퍼주면서 이산가족 상봉을 국내용 ‘정치 서커스’로 활용했다는 비판을 들었다. MB는 회담을 구걸하거나 돈을 주고 회담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국민에게 약속했다. 그러나 원칙을 지키면서 이산가족 상봉을 성사시키기는 어렵다는 관측이 많다.

현대그룹 정보담당 부서는 최근 이산가족 상봉이 평양에서 이뤄질 공산이 크다고 현정은 회장에게 보고했다. 이렇게 되면 서울에서도 이산가족이 조우하는 게 관례다. 현대그룹 정보대로라면 으르렁거리던 남북이 다시금 대화 국면으로 되돌아온 것으로 보인다.

‘Mr. 유연성’ 류우익 장관에 쏠린 눈

北女 손잡고 ‘휘파람’ 불렀던 MB 남북 ‘칼바람’ 녹일 수 있나

2010년 2월 10일 이명박 대통령이 강화도 해병 청룡부대를 방문, 한강과 임진강이 합류하는 지점에 있는 초소에 오르고 있다.

북한은 2009년 5월 2차 핵실험에 나선 뒤 그해 8월 남북 정상회담 제의→2010년 3월 천안함 폭침→2010년 9월 적십자회담 제의→2010년 11월 연평도 포격→2011년 1월 신년 대화공세로 대화와 위협의 ‘갈 지(之)자’ 행보를 보였다. 한국 정부와 MB도 오십보백보다. 자존심밖에 안 남은 북한을 자극해 위기를 고조하면서도 대결→대화→대결의 오락가락 행보를 보였다.

남북은 지금도 기싸움을 하는 중이다. 리종혁 조선아시아태평화위원회 부위원장은 지난달 미국을 방문해 “남조선에서 이산가족 상봉을 제안하면 받아들일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북한은 이산가족 상봉과 금강산관광 재개를 교환하려 한다. 한국은 금강산관광과 관련해선 북한에 회담을 제의했다고 여긴다. 북한은 다르다. 한국이 제안한 것은 몰수 재산에 국한한 것이지 관광 재개와는 무관하다고 주장한다. 누가 먼저 굽히느냐에 상관없이 만나서 대화하면 될 일을 자존심 다툼으로 미룬다.

MB는 시간이 부족하다. 조바심이 날 듯도 하다. 2012년 3월 서울에서 열리는 핵 안보 정상회의는 지난해 G20 정상회의보다 더 큰 행사다. 이 회의가 끝나면 4월 총선이다. 총선이 끝나면 정국은 대선 국면에 돌입한다.

남북관계 개선에 회의적인 그룹은 Mr. 유연성의 ‘북한 달래기’ 행보를 비판한다. 노무현 정부의 그것을 닮아간다는 것. 반면 보수 세력에서도 “MB가 역사 인식이 일천한 데다 철학이 빈곤해 남북관계를 망쳤다”는 견해가 나온다.

레임덕이 가시화한 MB가 주도권을 쥐고 나아갈 분야는 남북관계, 정상회담밖에 없다는 지적이 정치권에서 나돈다. MB정부 대북정책 수립에 관여 한 한 인사는 이렇게 주장했다.

“무작정 퍼주기는 안 된다. 원칙을 버리는 건 비겁한 짓이다. 오락가락하는 걸 좋아하는 국민은 없다. 국민에게 약속한 원칙을 지키면서도 ①북핵 폐기 ②비핵·개방·3000 ③인도적 문제 해결에서 성과를 내는 게 최선이다.”

한나라당 홍준표 대표는 “꽉 막힌 남북관계를 뚫는 것은 정치인의 책무다” “남북관계 단절에 변화가 없으면 20, 30대에 다가서기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MB가 얼마 남지 않은 임기 동안 남북관계를 현명하게 관리할 수 있을까. ‘자유롭고 정의로운 통일 한국’ 초석을 놓는 데 족적을 남긴 대통령으로 기억될 수 있을까.



주간동아 2011.11.07 811호 (p42~45)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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