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98

2011.08.01

텍스트 홍수 요즘 독자는 요약 정리 원한다

  • 한기호 출판마케팅연구소장 khhan21@hanmail.net

    입력2011-08-01 11: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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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텍스트 홍수 요즘 독자는 요약 정리 원한다
    작가 신경숙은 첫 장편소설 ‘깊은 슬픔’ 초판에서 “나, 그를 만나 불행했다. 그러나 그 불행으로 그 시절을 견뎠다”고 썼다. 그러나 지금의 책에는 접속사 ‘그러나’가 ‘그리고’로 바뀌어 있다. 작가가 몇 달을 망설이다 바꾼 것이다. 이를 두고 한 작가는 “작가의 오문(誤文)은 빛나는 문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오독(誤讀)은 어떨까. 오늘날 누구나 엄청난 디지털 텍스트를 읽는다. 그리고 마음에 드는 글만 모아 자신의 블로그 등에 옮기고 코멘트를 달아놓는다. 그 코멘트는 여러 소셜미디어를 통해 즉각 유포된다. 이렇게 온갖 미디어가 쏟아내는 글을 읽고, 쓰고, 엮고, 형태를 갖추고, 나눠주고, 받고, 읽고, 다시 쓰는 행위를 계속한다. 따라서 디지털 텍스트는 날마다 비약적으로 증가한다. 그 텍스트에 우리는 또 일상적으로 접근한다. 디지털 공간에 쓴 글은 누구나 볼 수 있기에 우리는 그것을 새로운 ‘출판행위’로 여긴다. 일본의 한 학자는 이런 출판을 기존의 출판(퍼블리싱·publishing)과 구별해 ‘퍼블리킹(PUBLICing)’이라 부르자고 제안한 바 있다.

    이제는 텍스트를 구태여 기억할 필요가 없다. 텍스트 중에서 기억하고 싶은 것만 따로 모아 자신의 블로그 등에 일단 ‘외재화(外在化)’해 놓는다. 그렇게 모아놓은 텍스트를 활용해 새로운 지식을 생산할 때는 일단 검색수단을 활용해 필요한 정보부터 불러낸다. 하지만 웬만한 단어를 검색해도 텍스트 덩어리가 하도 커서 압사당할 정도다. 이럴 때 어느 정도 ‘시간’과 ‘여유’가 있는 사람이 꼭 필요한 정보의 핵심만 정확히 요약해준다면? 그래서 우리는 알파 블로거나 파워 트위터를 신뢰한다. 그러나 그들마저 의도된 ‘오독’을 일삼는다는 사실을 자주 확인할 수 있다. 그러니 이제는 디지털 텍스트만 믿으면서 사유를 통해 맥락을 이해하고 자기 생각을 일일이 정리할 수 없게 됐다.

    그래서 대중은 새로운 유형의 책을 필요로 한다. 하나는 ‘사전형 책’이다. 18세기 디드로가 인류가 생산한 모든 지식을 압축한 ‘백과전서’로 대중의 마음을 일거에 휘어잡았듯, 지금은 ‘위키피디아’ 같은 사전식 ‘출판’이 성행한다. 하지만 얼굴을 알 수 없는 정보 생산자의 의도를 의심하기 시작한 대중은 그것에 만족하지 못한다. 그래서 믿을 만한 권위자가 사전식으로 압축해 보여주는 ‘사전형 책’을 찾기 시작했다. 이런 책에서는 과거의 기계적 서술에서 벗어나 웹에서처럼 주관적 경험을 이야기로 담아낸다.

    다른 하나는 서평집이다. 필자는 최근 ‘교육’ ‘20대’ ‘중국’을 주제로 한 서평 시리즈를 책으로 펴냈다. ‘앎과삶’이라는 이 시리즈는 우리 사회의 핵심 쟁점(주제)에 가장 알맞은 책 30여 권에 대한 서평을 모아놓은 것이다. 가령 ‘중국’은 미국의 유일한 ‘빅브라더’로 떠오른 중국의 소프트파워 전략을 이해할 수 있는 책을 골라 담았다.



    텍스트 홍수 요즘 독자는 요약 정리 원한다
    때마침 부키가 ‘지난 10년, 놓쳐서는 안 될 아까운 책’을 내놓았다. 2000년대 첫 10년간 출간된 책 중 베스트셀러에 오르지는 못했지만 누구나 읽어봐야 할 숨은 명저 48권을 골라 해당 전문가들이 일일이 서평을 쓴 것이다. 책이 도착하자마자 서둘러 읽었다. 기계적 요약의 단순한 서술이 아닌, 자신의 주관적 감상을 충분히 제시하며 책의 유효성을 전문가의 안목으로 정리한 이 책을 읽으면서 내 생각이 옳았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1958년 출생.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학교도서관저널’ ‘기획회의’ 등 발행. 저서 ‘출판마케팅 입문’ ‘열정시대’ ‘20대, 컨셉력에 목숨 걸어라’ ‘베스트셀러 30년’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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