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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연세의원이라고? 참내 알고 보니 타 대학이네

일부 병·의원 학교 이름 도용 심각…양심껏 진료 풍토 만들기 시급

  • 김유림 기자 rim@donga.com

연세의원이라고? 참내 알고 보니 타 대학이네

연세의원이라고? 참내 알고 보니 타 대학이네
서울 한 주택가의 ‘연세○○의원’. 간판에는 연세대 교표(校標)를 새긴 정장(正章)까지 붙어 있다. 상식적인 사람이라면 이 간판을 보고 ‘이 병원 의사가 연세대 출신’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이 병원 원장은 연세대가 아닌 서울 J대 의대 출신이다. 해당 병원 원장은 “연세대 출신 의사가 운영하던 이 병원을 인수했는데 간판과 병원 이름을 안 바꿨을 뿐”이라며 “속이려는 의도는 없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이 사실을 안 주변 상인은 혀를 차며 한마디했다.

‘서울대’ 동문도 이름 쓰려면 100만 원

“꺼림칙한 게 있으면 자기가 먼저 바꿨어야지. 사실 연세대 의대가 손에 꼽히는 명문이잖아요. 부당하게 반사이익을 노려 거짓말했다고 볼 수밖에 없죠. 아주 부도덕한 사람이네요.”

‘서울○○안과’ ‘연세○○치과’ ‘경희○○한의원’…. 명문대 이름을 딴 개업 병·의원을 흔히 볼 수 있다. 간판이나 의사가 입는 가운에 학교 정장이나 상징물을 넣기도 한다. 그럼 환자나 지역민은 병·의원 원장이 해당 학교 출신일 것이라 생각하게 마련. 하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주간동아’가 일부 병·의원을 확인 취재해보니, 해당 대학 출신도 아니면서 ‘무단으로’ 학교 이름만 도용한 사례도 적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 모 대학 산학협력단 관계자는 “매년 10건 내외로 관련 제보를 받아 시정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서울대 산학협력단은 한 안과를 상표권 침해 혐의로 적발했다. S안과 원장은 지방 H대 의대 출신이지만 병원 이름에 ‘서울’이라고 적었을뿐더러, 간판에 서울대 정장을 무단 도용했다. 서울대 측이 1차 내용증명을 보내자 해당 안과는 서울대 출신 의사를 공동원장으로 등록했다. 서울대가 동문이 원장인 병원에는 상표권 사용을 허용한다는 점을 노린 것.



무단으로 상표권을 도용하는 사례가 많아지자 대학도 학교 이름, 정장을 중요한 자산으로 보고 상표권 관리에 적극 나서겠다고 밝혔다. 서울대는 7월부터 대학 정장이나 상징물을 사용하는 병·의원에서 사용료를 걷는다. 따라서 서울대 정장이나 상징물을 사용하는 개원 병·의원은 전년 매출에 따라 100만 원에서 1000만 원까지 서울대에 사용료를 내야 한다.

서울대 측은 “학교 상표를 보호해 대학 명성을 유지할 것”이라면서 “상표권 사용료는 장학금이나 발전기금에 보태 학교 발전과 후배 양성을 위해 쓸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사용료를 내야 하는 개업의 중 반발하는 경우도 있다. 서울대 의대 출신 개업의의 말이다.

“학교 이름을 걸고 병원을 운영하는 일을 학교 권위를 이용해 이익만 얻으려는 행위로만 봐선 곤란해요. 모교 이름을 걸고 믿을 만한 진료를 하겠다는 다짐이죠. 학교 역시 홍보 효과가 있을 텐데 오히려 사용료를 내라니, 섭섭합니다. 병원 이름 변경도 심각하게 고려중이에요.”

연세대도 2008년부터 학교와 관련한 모든 상표권 등록을 갱신했다. 동문이 병원 이름에 ‘연세’를 쓰는 것을 막진 않지만, 연세대 대학병원 명칭인 ‘세브란스’를 쓰는 것은 엄격히 막는다. 아직 상표권 사용료 징수 방안은 마련하지 않았지만, 논의 중이다. 고려대 역시 지난해 9월부터 상표침해신고센터를 운영하면서 고려대 정장이나 상징물을 무단으로 사용한다는 제보를 받으면 조치를 취하고 있다. 경희대 역시 ‘경희’ 명칭을 사용하는 한의원에 대해 졸업생 여부를 확인한다.

의사 실력보다 간판 따지는 사회

문제는 동문이 아니면서 다른 대학 이름이나 정장을 사용하는 병원을 처벌할 규정이 모호하다는 점이다. 의료법 시행규칙 제40조에 따르면 △의료기관 종류 명칭과 혼동할 우려가 있거나 △특정 진료과목 또는 질병명과 비슷한 단어는 의료기관의 명칭으로 사용할 수 없다. 이 시행규칙에 따라 ‘척추병원’ ‘여성전문병원’ 등은 의료기관 명칭으로 사용할 수 없다. 보건복지부 의료기관정책과는 “문제의 ‘연세○○의원’은 이 시행규칙을 위배한 것이 아니므로 의료법상 처벌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상표권을 가진 학교 측에서 해당 병원을 고소하거나 가처분신청을 내면 얘기는 달라진다. 조헌수 변호사는 “특허법은 친고죄이기 때문에 특허권자가 고소하면 처벌할 수 있다”고 말했다. 연세대 측은 “사태를 파악한 후 조치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한 의료계 원로는 ”이는 의료선택권을 가진 환자를 기만하는 것”이라며 ”단순히 당사자간의 상표권 문제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며 격노했다.

한편 해외 대학은 어떨까. 2006년 3월 미국 명문 하버드대는 국내 ‘하버드○○치과’를 대상으로 가처분신청을 냈다. 2004년 하버드대가 ‘하버드’ 상표권을 출원해 보유했기 때문이다. 비록 원장이 하버드 치과대학을 졸업한 하버드대 출신이지만 하버드대는 상표권 이용을 허락하지 않았다. 조 변호사는 “한국 의대는 동문이 상표권을 사용하는 데 너그럽지만 외국은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왜 의사들은 출신 대학도 아니면서 다른 학교의 정장이나 상징물을 내세우는 것일까. 지방 의대 출신인 한 개업의의 자조 섞인 대답을 들어보자.

“사람들이 의사의 출신 대학이 아닌 실력을 보고 병원을 선택한다면 누가 양심에 찔리는 일을 하겠습니까. 성심껏 진료하고 양심적으로 처방해봤자 지방 의대 출신 의사는 지역에서마저 무시당하는걸요. 저 역시 다른 지역으로 가서 서울 유명 대학 출신인 양 행세하고 싶은 충동이 생기곤 합니다.”



주간동아 2011.07.04 794호 (p44~45)

김유림 기자 r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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