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94

2011.07.04

별을 따는 꿈은 멀고 현실은 혹독하고

막대한 자금 들여 키워낸 ‘일종의 상품’ 논란 수익분배 과정서 ‘노예계약’ 시비 잇따라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입력2011-07-04 10: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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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별을 따는 꿈은 멀고 현실은 혹독하고

    연습생 생활은 고달프면서 행복하다.

    10대 후반부터 20대 중반의 나이, 훤칠한 키와 수려한 외모, 그리고 흠잡을 데 없는 퍼포먼스 능력. 최근 아시아를 넘어 남미·유럽까지 확산 중인 케이팝 열풍의 중심에는 이런 특징으로 무장한 아이돌 그룹이 있다. 영국 BBC는 올해 4월 한국 대중음악이 해외에서 인기를 얻었다는 내용의 기사(South Korea’s K-pop craze lures fans and makes profits)를 실으며, 케이팝의 특징으로 ‘독특함(unique)’을 들었다.

    외국인에게 케이팝은 확실히 독특하다. 그리고 놀랍다. ‘소녀시대’의 아홉 멤버는 일사불란하게 춤추며 라이브를 소화한다. ‘샤이니’ 멤버는 손가락 끝까지 맞추는 군무를 소화하면서 흔들림 없는 가창력을 선보인다. 미국·유럽 아이돌 그룹이 결코 도달하지 못하는 이 경지 뒤에는 엄청난 경쟁과 혹독한 연습을 통해 스타 자리에 올라선 연예인과 막대한 자금을 투입해 이들을 키운 기획사가 있다.

    “예전에는 ‘지나가다 우연히’ 캐스팅 디렉터의 눈에 띄어 연예계에 데뷔하는 친구가 많았잖아요. 요즘엔 상상도 못할 얘기입니다. 대형 기획사 공개 오디션 때마다 지원자가 수천 명씩 몰려들거든요.”

    엄청난 경쟁과 혹독한 연습은 기본

    1990년대 중반부터 대형 연예기획사의 매니저로 일하다 최근 독립한 제작자 A씨는 “요새는 연예인 되는 걸 ‘연예고시 본다’고 한다”고 말했다. 그의 말은 과장이 아니다. 케이블 채널 Mnet이 주최하는 가수 오디션 프로그램 ‘슈퍼스타K 3’ 지원자는 6월 21일 현재 187만 9000여 명. 지난해 ‘슈퍼스타K 2’ 때의 134만 명을 훌쩍 넘겼다.



    연예계 데뷔를 원하는 이들의 오디션 정보 공유를 위한 온라인 카페 ‘별을 꿈꾸는 아이들’은 회원 수가 7만7000여 명에 달한다. 이 가운데 상당수는 기획사 오디션을 통과하려고 보컬 학원, 댄스 학원 등에서 사교육을 받는다. 이들의 1차 목표는 SM엔터테인먼트(이하 SM), JYP엔터테인먼트(이하 JYP), YG엔터테인먼트(이하 YG) 등 대형 기획사의 연습생이 되는 것.

    그러나 이것은 실력이 있다 해도 쉽지 않은 일이다. JYP는 가수 임정희조차 공개 오디션에서 두 번 떨어졌다고 밝혔다. YG의 여성 아이돌 그룹 ‘2NE1’ 멤버 씨엘은 오디션 기회를 잡지 못하자 YG 사무실 앞에서 양현석 대표를 만날 때까지 며칠간 기다리다 직접 데모테이프를 전달한 끝에 연습생으로 선발됐다.

    대형 기획사의 연습생이 되면 이때부터 예비 연예인 생활을 한다. 기획사는 연습생에게 개인별로 보컬·댄스·연기·외국어 교습을 한다. 이후 자체 평가를 통해 우수한 이만 가수로 데뷔시킨다. 이 기회를 잡으려고 1차 오디션을 통과한 이는 또 한번 무한경쟁에 돌입한다.

    “다들 얼마나 열심히 하는지 몰라요. 학교 가서 오전 수업만 받고 조퇴한 뒤 밤늦게까지 연습실에서 사는 애가 정말 많아요. 요즘은 기획사에서 학교로 공문을 보내주면 ‘현장학습’으로 조퇴 허가를 받을 수 있거든요. 연습생으로 뽑혔다고 하면 선생님도 ‘쟤는 공부 안 할 애’ 라고 여기는 거 같아요.”

    한 기획사의 연습생으로 지내다 중도 포기하고 보컬 강사로 일하는 B씨의 얘기다. 기획사는 이들을 ‘공정하게’ 선발하려고 연습생으로 등록하는 동시에 출결 카드를 지급한다. 연습실 출퇴근 시간을 기록하는 이 카드는 연습생의 땀과 열정을 평가하는 자료가 된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평가에서 좋은 점수를 받는 것도 중요하다. SM은 주기적으로 연습생 발표회를 열고 실력을 점검한다. YG도 2주에 한 번씩 외국어 시험을 치르는 등 꼼꼼한 평가 시스템을 운영한다. 이 과정에서 발탁된 이는 2~3년 만에 데뷔 기회를 잡지만, 눈에 띄지 못하는 이는 고되고 기약 없는 연습생 생활을 이어가야 한다. 소녀시대 멤버의 평균 연습기간은 5년이지만 수영, 제시카, 효연은 7년을 연습생으로 지냈다.

    이러다 보니 빨리 연습생 생활을 마치고 데뷔하려는 이는 연습에 전념할 목적으로 아예 학교를 그만둔다. 현재 활동 중인 인기 아이돌 그룹 멤버 가운데 ‘빅뱅’의 승리와 태양, ‘JYJ’의 영웅재중, ‘원더걸스’의 소희 등이 고등학교를 중퇴했다. 2NE1 멤버 공민지는 중학교 졸업 후 아예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않았다.

    별을 따는 꿈은 멀고 현실은 혹독하고

    서울 강남구 대치동 섬유센터에서 열린 JYP 연습생 공개 오디션.

    아이돌 멤버가 고되고 혹독한 연습생 시절을 통과하는 동안, 기획사는 ‘미완의 대기’가 ‘한류 스타’로 성장하도록 온갖 지원을 한다. 교육기간에 드는 레슨비와 식비, 운영비, 합숙훈련비 등을 전액 투자한다. 심지어 외모도 ‘만들어준다’. 최근까지 대형 기획사에서 인기 걸 그룹의 매니저를 맡았던 C씨는 “큰 회사의 경우 성형수술비를 전액 회사가 부담한다. 본인이 원해서 하는 것은 예외지만, 기획사가 권할 때는 100% 비용을 지급하는 게 관례”라고 말했다.

    팀 콘셉트를 정하고 그에 맞게 작사가, 작곡가, 안무가, 스타일리스트, 매니저를 조합해 팀을 짜는 것, 그리고 멤버 개개인의 개성을 잡아주는 것도 기획사 몫이다. C씨는 “아이돌 그룹은 기획사가 아이디어에 따라 창조하는 일종의 상품”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시스템이 ‘신(新)한류’를 일군 일등공신이라는 건 누구도 부인하지 못한다. BBC는 6월 중순 케이팝을 다룬 후속 보도 ‘케이팝의 이면(The dark side of South Korean pop music)’을 통해 “케이팝은 돈이 많이 드는 산업이다. 수준 있는 그룹을 만들려고 (멤버에게) 수년간 노래와 춤 수업을 제공하고 생활비를 부담해야 하며 매니저 팀, 안무가, 코디네이터 등도 고용해야 한다”고 소개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데뷔 후 연예인의 자유와 수입을 상당 기간 기획사에 유보하도록 하는, 이른바 ‘노예계약’이 맺어진다는 점이다.

    JYJ 멤버 시아준수는 초등학생 때 SM 연습생으로 선발돼 트레이닝 받다가 중학생 때인 2000년 전속계약을 맺었다. 계약기간은 데뷔 후 10년으로 정하고, 그 사이 계약을 해지하려면 투자액의 3배와 예상 이익금의 2배를 지불하기로 했다. 시아준수와 SM 사이의 소송을 대리하는 법무법인 세종의 임상혁 변호사는 “나중에 계약 내용을 변경해 계약기간을 ‘데뷔 후 13년’으로 늘렸다. 사실상 남자 아이돌 가수가 활동하는 전 기간을 계약기간으로 잡은 것”이라고 밝혔다. 2004년 SM의 ‘동방신기’로 데뷔했던 시아준수는 2009년 다른 멤버 믹키유천, 영웅재중과 함께 기획사를 상대로 ‘전속계약 효력 부존재 확인 소송’을 내고 현재 본안소송 중이다.

    “젠장, 그 많던 게 다 경비로 빠졌다”

    별을 따는 꿈은 멀고 현실은 혹독하고

    JYJ.

    동방신기는 ‘계약기간 중 SM의 판단으로 결정하는 일을 성실하게 해야 한다’는 조항도 문제가 됐다. 스케줄 거부권이 없는 이들은 하루 사이에 한국과 일본을 왕복하는 등 무리한 일정에 시달려야 했다. ‘SM 불공정 계약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모임’ 정해임 대표는 “팬들이 조사한 결과, 동방신기 멤버는 68개월간 스케줄을 소화하느라 지구 여섯 바퀴 반을 돌았다. 휴식 기간은 1년에 2주일도 안 됐다”고 주장했다.

    이 과정에서 수익 배분에 대한 불만도 쌓였다. 동방신기 전속계약서에 따르면, 각각의 멤버는 연예활동으로 발생하는 모든 수입 가운데 운영비를 제외한 12%를 받는다. 이때 운영비는 ‘교통비 및 숙박비, 식대, 메이크업 및 코디네이터 비용, 무용단 및 필요 무대인원 비용 등 실제 연예활동 시의 일반적인 필요 비용과 매니저 및 로드매니저의 월급, 숙소에서의 모든 생활비와 연예활동을 위한 트레이닝비’ 등이다. 수익에서 이 모든 비용을 제외한 금액의 40%를 기획사가 가져가고, 멤버는 나머지를 5분의 1씩 나눠 가진 것이다.

    드디어 해외에서 대박을 만들어 상상치도 못한 실적을 올렸단 소리에 가벼운 걸음으로 급여 날 회사로 들어갔어. 그때 받은 정산서엔 실적이 마이너스 4000만 원이. 내가 본 것이 잘못 본 거라 생각하고 다시 확인을 해보니 모든 것이 경비다. 젠장, 그 많던 게 다 경비로 빠졌다.

    JYJ 세 멤버가 발표한 ‘이름 없는 노래 part 1’의 가사다. 최근 케이팝이 세계적으로 눈길을 끌면서 서구 언론이 한국 연예산업의 이러한 ‘뒷면’을 보도하기 시작했다. 긴 전속계약에 묶인 가수가 하루 종일 일하면서 돈도 제대로 받지 못한다는 것이 골자다. 전문가들은 아이돌 그룹의 해외 진출이 이런 풍토에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전망한다. 대우증권 김창권 연구원은 “관건은 아이돌 그룹의 인기를 수익화하는 데 있다”고 말했다.

    한국은 가수가 돈 벌 수 없는 구조

    “우리나라 음악시장은 가수가 돈을 벌 수 없는 구조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인 PWC는 세계 음악시장에서 국내 음악시장의 비중이 1.6%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일본은 우리보다 17배 정도 크다. 음반 가격도 한국에서 싱글 CD 1장이 9000원, 정규 CD 1장이 1만5000원이라면, 일본은 싱글이 1000엔, 정규가 2500~3000엔으로 약 2배 정도 된다. 온라인 음원 가격은 최대 10배까지 차이 난다. 그런데 국내 기획사는 막대한 자금을 투자해 아이돌 그룹을 키워왔다. 우리나라에서만 활동하면 수익 자체가 나지 않는 구조였던 셈이다. 지금은 해외 진출 초기이기 때문에 수익 배분에 잡음이 일지만, 장기적으로 일본·유럽·남미 등에서 아이돌 그룹의 인기를 수익으로 연결한다면 한국식 아이돌 산업은 지속적으로 성장할 것이다.”

    ‘케이팝’ 열풍 지속하려면…

    콘텐츠 생산자가 대접받는 시스템 구축해야


    케이팝이 세계시장에서 통하는 콘텐츠로 자리매김한 데는 일본의 전례를 벤치마킹한 패스트 폴로어(Fast follower) 전략이 한몫했다. SM의 아이돌 선발 과정과 육성 마케팅은 일본 연예 산업 시스템에서 영향받은 것이다. ‘소녀시대’가 일본의 ‘망가’(만화)를 현실에 구현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주한 캐나다상공회의소 시몽 뷔로 회장은 “한류 인기는 일류(日流)를 그리워하는 복고 분위기 덕분”이라고 해석했다. 엔터테인먼트 업계 한 관계자도 이렇게 말했다.

    “유럽의 커버 댄스(가수의 춤을 따라 하는 것) 열풍 원조는 일본 아이돌과 애니메이션 캐릭터다. 일본 아이돌은 1990년대 제이팝 전성기를 구가하며 케이팝 확산의 밑거름 구실을 했다.”

    일류는 유럽의 10대 하위문화에서만 통하는 구조적 한계 탓에 몰락했다. 한류가 일류의 실패를 극복하려면 마니아 시장이 아닌 주류에서 통하는 콘텐츠를 생산해내야 한다. 물론 한국의 연예 비즈니스 환경을 고려하면 쉽지 않은 일이다.

    연예기획사 DR뮤직 윤등룡 대표는 “문화상품이란 첨단기술 수출과 마찬가지로 정치적으로 민감하기 때문에 신중하고도 세밀한 관리가 필수다. 중국을 비롯한 상당수 국가에서 언제든 외국 대중문화를 규제할 수 있는데, 그에 대한 우리의 대응은 언제나 뒷북”이라고 한탄했다.

    해외 언론이 자주 지적하는 노예계약 논란에 대해 연예기획사들은 “한국만큼 기획사와 케이팝 스타의 수익 분배가 잘 되는 나라가 없다”고 반발한다. 과거 한국의 노동집약적 산업에서도 흔히 일어난 자본가-노동자 논쟁과 흡사하지만 뚜렷한 결론을 내리긴 쉽지 않다. 어쨌거나 케이팝 기획자들은 “연습생 제도 없이는 케이팝의 미래도 없다”고 여긴다.

    연예기획사 관계자들은 언론이 케이팝 열풍을 호들갑스럽게 보도하면서 정부가 주최한 토론회에 불려 다니는 게 일상이 됐다고 하소연한다.

    전문가들은 케이팝이 제이팝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1500여 개나 되는 군소 프로덕션에 대한 산발적 지원보다 시장 구조 자체에 손을 대야 한다고 주장한다. 작곡가이자 ‘2AM’의 제작자 방시혁은 “음원시장을 장악한 통신사가 음원 산업의 수익구조 분배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콘텐츠 생산자가 대접을 받지 못하는 시장에선 창작 의욕을 고취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정호재 기자 demi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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