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91

2011.06.13

기업은 지금 ‘2등의 반란’

따라가기·특화·혁신으로 선두 밀어내… 그들만의 비법 ‘1등 기업’서 벤치마킹도

  • 손영일 기자 scud2007@donga.com

    입력2011-06-13 09:5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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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업은 지금 ‘2등의 반란’

    변화의 흐름을 놓친 노키아는 휴대전화 시장에서 점유율이 사실상 반토막 났다.

    삼성전자, LG전자라는 세계적인 휴대전화 제조업체를 가진 한국이지만, 세계 휴대전화 시장에서 부동의 1등은 핀란드의 자랑 노키아였다. 노키아는 한때 세계 시장 점유율이 40%에 육박하면서 2등과의 격차를 20%포인트 이상 벌렸다. 삼성전자가 모토로라, 소니에릭슨을 차례차례 넘어서며 2등까지 치고 올라갔지만 단시간에 노키아를 넘어서기란 쉽지 않아 보였다. 그러나 2007년 애플의 아이폰이 출현하면서 휴대전화 시장은 크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시장의 대세는 빠르게 스마트폰으로 기울었지만, 1등 기업 노키아는 변화를 거부했다. “우리 것이 곧 시장의 표준”이라는 믿음으로 과거의 제품과 전략을 그대로 밀고 나갔던 것이다.

    과거에 안주 노키아의 몰락

    변화의 흐름을 놓친 노키아는 점차 휴대전화 시장의 주도권을 잃었다. 스마트폰 시장에서 노키아는 간신히 1등을 유지하지만, 세계 시장 점유율은 3년 만에 반토막이 났다(2008년 40%→2011년 1분기 24.3%). 반면 같은 기간 애플은 9.1%에서 18.7%로 2배 가까이 성장했다. 국내 휴대전화 업계 관계자는 “현재 같은 추세라면 노키아가 1등에서 내려오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지적했다.

    시장에는 분명한 1등 기업이 있다. 하지만 영원한 1등은 없다. 비단 휴대전화 업계만 그런 것은 아니다. 지난 10년간 주요 산업에서 많은 2등 기업이 지속적으로 약진하면서 1등 기업을 위협하고 있다. 일부 산업에선 2등 기업이 기존의 1등 기업을 제치고 새롭게 1등으로 올라섰다. 예를 들어, 소비재 분야(2005년 기점)에선 유니레버에서 P·G로, 전자·정보통신 분야(2008년 기점)에선 IBM에서 삼성전자로, 철강(2003년 기점)에선 신일본제철에서 아르셀로미탈로, 화학(2002년 기점)에선 듀폰에서 다우케미컬로 1등 기업이 바뀌었다.

    기업 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1등 기업에서 탈락하는 속도도 빨라지는 추세다. 미국 경제전문지 ‘포춘’이 선정하는 글로벌 500에서 연간 탈락하는 기업은 1990년 초 20여 개에서 지금은 40여 개로 증가했다. 탈락 속도가 2배 이상 빨라진 셈이다. 2001년 포춘 글로벌 500의 상위 100대 기업 중 52개 기업만이 2010년 조사에도 100대 기업으로 남았다. 불과 10년 사이에 절반가량이 왕좌에서 내려온 것이다. 그만큼 선두 수성이 어렵다는 방증이다.



    1등 기업의 몰락 이유로 여러 사항이 거론된다. 선두 수성을 위해 끊임없이 기술 개발 투자에 나섰지만 이것이 도리어 기업 발목을 잡는 경우가 허다하다. 신기술 개발을 위해 수많은 비용을 쏟아부었음에도 성공을 거두는 것은 ‘백에 하나’다. 이런 불확실성에서 헤매는 동안 기존 시장에 대한 지배력을 후발 기업에 내준다. 또한 노키아의 사례에서 보듯 기존에 성공한 사업 틀에서 벗어나지 못해 혁신을 실행하기 쉽지 않다.

    그러자 2등 기업에서 배우려는 1등 기업이 늘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원 조원영 수석연구원은 “선두 기업은 2등 기업의 도전을 과소평가하고 안이하게 대응하면 선두 수성에 실패할 수 있다는 교훈을, 하위 기업은 2등 기업을 벤치마킹해 상위 기업으로 도약할 수 있는 전략을 배울 수 있다”고 말했다.

    2등 기업은 후발주자로서의 이점을 적극 활용한다. 시장에 최초로 진입하기보다 최적의 타이밍을 포착해 1등 기업이 경험한 시행착오를 줄이며 기술개발과 투자비용을 절감한다. 이른바 ‘폴로(follow, 따라가기) 전략’이다. 영국 런던경영대학원 콘스탄티노스 마르키데스 석좌교수는 “새로운 시장에서 개척자가 되기보다 재빠른 2등이 되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스마트폰 시대가 열렸을 때 삼성전자가 경쟁사인 노키아나 LG전자에 비해 비교적 시장에 빠르게 대응하고 반(反)애플 및 안드로이드 진영의 선두주자로 발돋움할 수 있었던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삼성그룹 관계자는 “발을 담그고 있다”는 말로 폴로 전략을 표현했다.

    “신기술이 반드시 성공한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전혀 대비하지 않다가 시장이 급변하는 일이 발생하면 한순간에 도태된다. 신기술에 올인하지 않더라도 시장 변화에 즉각 대응할 수 있도록 어느 정도 준비를 해나가야 폴로 전략도 성공한다.”

    1등 기업과의 무리한 가격경쟁을 지양하고 고부가가치 영역에 특화하는 것도 2등 기업의 특징적인 전략이다. 1996년 코카콜라는 펩시와의 점유율 격차를 10%포인트 이상 벌리며 ‘100년 콜라전쟁’의 승리를 선언했다. 2등 기업 펩시는 ‘리인벤팅 펩시(Re-Inventing Pepsi, 펩시 재창조)’라는 모토하에 대대적인 변신에 착수했다. 제품 포지셔닝을 ‘웰빙’에 두고 경쟁에서 밀린 탄산음료의 비중을 과감히 줄였다. 그 대신 주스나 스포츠음료로 제품군을 조정하면서 프리미엄 식품기업으로 탈바꿈했다. 삼성경제연구소 이승현 연구원은 “펩시가 콜라시장을 두고 소모적인 경쟁에서 벗어나 새로운 경쟁의 장을 창출한 것이 성공의 원동력”이라고 말했다.

    기업은 지금 ‘2등의 반란’

    (왼쪽) ‘지금은 2등이다’라는 카피로 세간에 화제가 된 대한생명 광고. (오른쪽) 애플과 삼성전자는 노키아의 아성을 무너뜨렸다. 사진은 삼성 갤럭시S 스마트폰.

    프리미엄 식품 회사로 거듭난 펩시

    기업은 지금 ‘2등의 반란’

    코카콜라와의 장기적이고 소모적인 경쟁 탈피가 펩시콜라 성공의 밑거름이 됐다.

    1등 기업은 ‘시장을 지켜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기존 사업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러나 2등 기업은 그런 부담감이 없기 때문에 발상의 전환으로 혁신을 창출하는 데 용이하다. 게임업계 선두기업인 소니가 고성능 게임 개발에 열중할 때, 2등 기업 닌텐도는 시장 확장성에 눈을 돌렸다. 비디오게임이 젊은 남성의 문화라는 고정관념을 깨고 ‘우리 제품의 고객은 다섯 살부터 아흔 살까지’라는 새로운 전략을 내세웠다. 그렇게 만든 ‘위(Wii)’는 게임 연령과 성별을 확장하며 출시 4년 만에 8000만 대 이상의 판매고를 기록했다.

    2003년 대한생명은 ‘지금은 2등이다’라는 광고로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한국에서 기업이 2등임을 입에 올리는 것은 자살행위나 다름없는 짓이다. 그럼에도 대한생명은 “2등은 시끄럽다” “2등이기 때문에 더 열심히 한다”는 발상의 전환으로 호평받았다. 대한생명 관계자는 “비록 지금은 2등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1등을 뛰어넘는) 차별화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당시 광고도 그런 발상의 전환을 잘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물론 모든 2등 기업의 반란이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압도적인 1등 기업의 위세에 밀려 혹은 3등 기업 등 후발 주자의 도전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 시장에서 도태된 사례가 수없이 많다. ‘미투(Me Too, 따라잡기)’ DNA로 과연 얼마만큼 혁신할 수 있겠느냐는 비관적인 시선도 적지 않다.

    하지만 “변화에 대응하지 않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언제나 동일한 패턴으로 대응하는 것이 문제”라는 조원영 수석연구원의 지적처럼, 1등을 따라잡기 위한 2등 기업의 독특한 전략과 혁신활동은 1등 기업은 물론 후발기업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지금 이 순간에도 아시아나항공이 대한항공을, 다음이 NHN을, 기아자동차가 현대자동차를 뛰어넘기 위해 부단히 칼을 갈고 있다. 과연 다음의 ‘역전의 명수’는 누가 될까. 2등 기업의 속내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거기에 1등이 되기 위한 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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