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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대박? 쪽박? 운명의 ‘30초 낚시질’

방송·영화 프로그램 예고편 드러내기와 감추기 … 호기심 자극할수록 입소문 효과 상승

  • 구가인 기자 comedy9@donga.com

대박? 쪽박? 운명의 ‘30초 낚시질’

대박? 쪽박? 운명의 ‘30초 낚시질’

예고편을 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개인 블로그나 트위터 등을 통해 공유하는 사람도 늘고 있다. 사진은 애플 아이튠즈의 영화 예고편 섹션.

윤도현이냐, 김연우냐. MBC ‘우리들의 일밤-나는 가수다’(이하 나가수)의 일명 ‘탈락자 스포일러’가 화제다. 5월 15일 방송에서는 시즌2 첫 탈락자를 가리기에 앞서 7명의 도전자가 네티즌이 추천한 곡을 부르며 중간평가를 받았다. 아직 탈락자가 누구인지 공개되지 않은 상황이지만, 다음 주 예고편이 나온 직후 인터넷에는 ‘윤도현 탈락’과 ‘김연우 탈락’이라는 두 가지 추측이 퍼졌다.

흥미로운 점은 각기 다른 주장을 펴는 네티즌이 탈락자 추리의 중요한 ‘단서’로 예고편을 내세웠다는 것이다. 윤도현 탈락을 확신하는 일부 네티즌은 탈락자 발표 후 가수들의 반응을 보여주는 예고편 장면에서 윤도현이 등장하지 않은 점을 지적했다. 한 네티즌은 “예고편에 윤도현만 나오지 않은 것은 말 그대로 윤도현이 탈락했다는 것”이라며 “김건모가 탈락하기 전 예고편에서도 김건모와 박정현의 포옹 장면이 나와 예상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나가수 탈락자’ 도대체 누구?

그러나 김연우 탈락을 주장하는 네티즌은 예고편에서 “임재범이 김연우 매니저인 고영욱을 안고 있다” “탈락자 발표 당시 일부 출연자의 시선이 김연우를 향하고 있다”며 반박했다.

추측의 진위를 떠나, 확실한 것은 논란이 커질수록 프로그램에 대한 관심도 커진다는 사실이다. 호기심을 자극하는 예고편은 대중의 스토리텔링 욕구를 자극한다. 이야깃거리가 많을수록 입소문 효과는 커진다. 실제로 나가수의 예고편을 만드는 조연출 전세계 PD는 “예고편이 기사나 인터넷상에서 화제가 되면 시청률에 좋은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그는 “탈락자를 드러내지 않으면서 기대감을 가질 수 있도록 신경 쓴다”면서 “미궁에 빠지도록 영상을 만들다 보면 내가 만들고도 나중에 누가 탈락자인지 모를 정도”라고 설명했다.



예고편은 그 길이와 방영 횟수를 보면 방송사가 주력하는 프로그램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는 척도이기도 하다. 나가수의 예고편은 1분 30초 남짓. 2분에 가까울 때도 있다. 보통 40초 정도인 여타 예능프로그램 예고편보다 2배 이상 긴 셈이다.

특히 높은 부가가치를 생산할 수 있는 드라마에서 예고편은 중요한 홍보 수단이다. 이 때문에 첫 1, 2회를 요약해 보여주던 과거와 달리, 최근에는 새 미니시리즈가 나오기 전 한 달 가까운 준비를 통해 예고편 영상을 따로 만드는 경우도 많다.

해외 수출을 염두에 두고 제작비를 많이 들인 작품은 예고편 전문 제작업체에 의뢰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해당 프로그램의 조연출이 만든다. 따라서 예고편은 연출자를 선발하는 시험대가 되기도 한다. 예고편을 “지략의 동원장”이라고 말하는 한 방송사 국장은 “(예고편이) 연출자 ‘입봉’의 절대적 기준은 아니지만 재능을 가늠하는 준거는 된다”고 설명했다.

방송 프로그램 예고편의 길이는 30초에서 1분 사이다. 하지만 예고편을 만들기 위해서는 녹화한 원본 재료를 모두 검토해야 하기 때문에 제작에 하루가 꼬박 걸리기도 한다. 시청자가 관심을 갖는 내용을 드러내면서도 핵심 내용은 감춰야 한다. 예고편을 만들어본 많은 PD들은 “예고편은 프로그램을 압축하는 게 아니라 새로운 스토리를 창조하는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SBS 드라마 ‘조강지처 클럽’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 등에서 조연출을 맡았던 박신우 PD는 “텔레비전 광고처럼 짧은 시간에 이목을 끌어야 하는 만큼 한 가지 포인트를 부각하고 최대한 강조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주인공의 생사처럼 시청자의 관심이 모이는 특정 사건에 방점을 두고 만든다”면서 “결말을 공개하면 본방이 시시해지기 때문에 본의 아니게 낚시질을 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본편 내용을 능가해서는 곤란

‘낚시질’이 중요한 것은 영화도 마찬가지다. 특히 개봉 첫 주에 흥행이 판가름 나는 영화에서는 개봉 초반 관객을 모으는 데 예고편의 구실이 크다. 인터넷 영화 예매 사이트 맥스무비가 지난달 관객 2만 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영화 선택 기준 1위가 ‘광고와 예고편’(48.7%)이었다. ‘트랜스포머’ ‘캐리비안의 해적’ ‘쿵푸팬더’ 등 비주얼이 강한 할리우드 대작은 개봉 4, 5개월 전부터 전략적으로 티저(본 광고에 앞서 궁금증을 유발하는 광고)를 공개한다. 다음 달 30일 개봉을 앞둔 ‘트랜스포머3’는 4월 29일 애플 아이튠즈에 메인 예고편을 공개한 후 하루 만에 600만 건 이상의 다운로드를 기록했다.

특히 소셜네트워킹서비스(SNS)를 통해 예고편을 공유하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그 중요성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CJ E·M 미디어마케팅팀 최민수 과장은 “기존의 일방적인 매체 홍보와 달리 양방향으로 소통하는 것, 즉 입소문이 중요해졌다”면서 “예고편은 페이스북, 트위터 등에 공유하기 편한 콘텐츠인 만큼 홍보에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고 효과도 높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영화 예고편은 예고편 전문 제작업체에서 만든다. 국내에서 예고편 전문 감독이 뿌리내리기 시작한 것은 2000년 중반부터. 현재 10여 개의 예고편 전문 제작사가 있다.

이런 제작사는 15초짜리 텔레비전 광고와 30초짜리 티저, 1분 30초 남짓한 본 예고편을 만든다. ‘관객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이 목표’인 것은 드라마 예고편과 비슷하지만 공을 더 많이 들인다. 영화 크랭크 업(촬영 종료) 직후부터 기획회의에 들어가 완성까지 평균 3개월 정도가 소요된다. 본 영화를 재료로 삼지만 때론 예고편을 위해 따로 촬영을 진행하기도 한다.

형식도 다양한 편이다. 스토리라인을 드러내는 예고편이 있는가 하면, 영상미를 강조하는 예고편도 있다. 강동원이나 황정민처럼 티켓파워가 있는 스타가 나오는 영화는 배우의 클로즈업 장면만으로도 호감을 준다. 그러나 액션영화라고 화려한 액션만, 드라마라고 대사 위주로만 구성하는 것은 아니다.

‘해운대’ ‘조선명탐정’ 등의 예고편을 제작한 리틀머큐리의 정광진 실장은 “‘해운대’의 경우 쓰나미 컴퓨터그래픽(CG) 장면이 많았지만, 드라마적 요소가 승산이 더 높을 것 같아 예고편은 쓰나미 장면을 내세우기보다 드라마와 코미디를 녹여내서 만들었다”며 “본 작품에 자신 있는 경우 예고편에서 장르 변화를 시도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물론 ‘재미없는 본편’은 예고편 전문가에게도 골칫거리다. 노출 장면처럼 자극적인 장면이나 영화 속 코믹 요소를 모두 끌어내 ‘실제 영화보다 재미있는 예고편’을 만들지만 “예고편이 전부다” “예고편에 속았다”는 비난을 받기도 한다. 이 때문에 ‘타짜’ ‘아저씨’ 등의 예고편을 제작한 하하하 프로덕션의 최승원 실장은 “예고편은 광고에 앞서 프리뷰의 성격이 강하다”고 강조한다. 그는 “관객 입소문이 빠른 요즘 같은 환경에서는 예고편만 화려한 영화는 오히려 반감을 산다”고 덧붙였다.

2000년 중반 영화산업 부흥기에는 수억 원대의 제작비를 들인 예고편도 있었지만, 최근에는 1억 원을 넘기지 않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결국 예고편만으로는 흥행을 보장할 수 없다는 것, 본편을 능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은 예고편의 ‘슬픈 숙명’이기도 하다.



주간동아 2011.05.23 788호 (p60~61)

구가인 기자 comedy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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