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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성폭행 혐의 ‘칸의 몰락’ 날개가 없다

독방에 수감 IMF 前 총재 사건 일파만파…프랑스 대선 출마 물거품에 음모론도 확산

  • 뉴욕=신치영 특파원 higgledy@donga.com 파리=백연주 통신원 byj513@naver.com

성폭행 혐의 ‘칸의 몰락’ 날개가 없다

성폭행 혐의 ‘칸의 몰락’ 날개가 없다

미국 맨해튼 형사법원 법정에 출석한 스트로스칸 IMF 전 총재.

5월 14일(현지시간) 오후 미국 뉴욕 타임스스퀘어 인근 소피텔 호텔 28층, 하룻밤 숙박비가 3000달러인 스위트룸 2806호. 도미니크 스트로스칸(62) 국제통화기금(IMF) 전 총재가 묵던 이 방을 청소하러 들어갔던 호텔 여종업원이 옷매무새가 흐트러진 채 울먹이며 뛰쳐나왔다.

“어떤 남자가 나를 성폭행하려 했다.”

국제 금융계의 ‘소방수’이자 프랑스의 유력한 차기 대권주자인 스트로스칸 전 총재를 강간미수 등의 혐의로 체포한 충격적인 사건의 시작은 이랬다.

뉴욕경찰과 미국 언론에 따르면, 이 여종업원은 이날 오후 1시경 방이 빈 줄 알고 2806호에 청소하러 들어갔다. 잠시 후 스트로스칸 전 총재가 샤워를 마친 듯 화장실에서 벌거벗은 채 나왔다. 당황한 여종업원이 방을 나오려는 순간 스트로스칸 전 총재가 갑자기 덮쳤다. 스위트룸에는 침실, 거실, 회의실이 별도로 있다. 스트로스칸 전 총재는 거실과 화장실 사이 복도에서 여종업원을 넘어뜨렸다. 여종업원이 뿌리치고 도망가려 하자 스위트룸 안쪽 침실로 끌고 가 침대에 넘어뜨렸다. 그러고는 화장실로 끌고 들어가 속옷을 벗기려 했으며 오럴 섹스를 강요하기도 했다. 여종업원은 성폭행을 피한 채 간신히 도망 나왔다.

여종업원은 동료 직원들에게 이 사실을 털어놓았고 동료들이 경찰에 신고했다. 뉴욕경찰이 곧바로 호텔에 출동했다. 하지만 방은 이미 비어 있었다. 뉴욕경찰 폴 브라운 대변인은 “스트로스칸 전 총재가 서둘러 현장을 떠난 듯했다”며 “그러다 보니 휴대전화 등 소지품을 방에 남겨놓았다”고 말했다.



하룻밤 새 거물에서 ‘잡범’으로

뉴욕경찰이 그의 행적을 추적했다. JFK국제공항에서 프랑스 파리행 에어프랑스 비행기에 타려 한다는 사실을 파악했다. 뉴욕경찰은 곧바로 항만과 공항 관리를 맡은 뉴욕뉴저지항만관리청에 협조를 요청했다. 오후 4시 40분경 뉴욕뉴저지항만관리청 직원들이 문을 닫은 비행기에 올라타 1등석에 앉아 이륙을 기다리는 스트로스칸 전 총재를 체포했다. 이륙 10분 전이었다. 그는 저항하지 않고 체포에 순순히 응했다. 이때부터 국제금융계 거물이 ‘잡범’으로 추락했다.

스트로스칸 전 총재는 뉴욕경찰에 인계돼 이스트할렘 경찰서에서 성범죄특수수사대의 밤샘 조사를 받았다. 다음 날인 15일 경찰은 성폭행을 당할 뻔했다고 주장하는 호텔 여종업원을 불러 용의자 확인 절차를 밟았다. 32세 흑인 여성인 그는 인상착의가 비슷한 여러 남성 가운데 스트로스칸 전 총재를 정확히 지목했다. 그리고 조사를 마친 뒤 담요를 뒤집어쓰고 얼굴을 가린 채 경찰차인 밴을 타고 떠났다. 아프리카 기니 이민자 출신인 이 여성은 15세짜리 딸과 함께 뉴욕 브롱스에 거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미국 검찰과 경찰은 스트로스칸 전 총재의 혐의를 입증할 증거 보강 차원에서 DNA 흔적 수집에 나섰다. 이들은 스트로스칸 전 총재가 범행을 저지를 때 생겼을 수 있는 상처나 손톱 밑에서 고소인의 DNA 흔적을 찾으려고 법원으로부터 수색영장을 발부받았다.

스트로스칸 전 총재는 이날 대부분을 이스트할렘 경찰서에서 보낸 뒤 밤 11시쯤 다른 곳으로 옮겨졌다. 이때 뉴욕경찰은 뒷짐 진 채 수갑이 채워진 스트로스칸 전 총재의 모습을 경찰서 앞에 진을 친 전 세계 언론사 사진기자에게 공개했다. 검정 재킷과 바지에 회색 셔츠를 입은 수척한 모습의 그는 굳은 표정으로 언론의 사진 촬영에 응했다.

16일 스트로스칸 전 총재는 더 비참한 경험을 감수해야 했다. 이날 오후 흐트러진 머리에 수염도 깎지 않은 초췌한 모습의 스트로스칸 전 총재가 수갑을 찬 채 맨해튼 다운타운에 위치한 맨해튼 형사법원 법정에 들어섰다. 전날 뉴욕경찰이 경찰차에 태우며 언론 포토라인 앞에 세울 때 입었던 차림새 그대로였다. 그는 다른 피고인과 마찬가지로 홍채 인식기로 본인 확인 절차를 거친 뒤 법정에 들어섰다. 그리고 뉴욕 빈민가 뒷골목의 불량배 등 잡범과 뒤섞여 피고석에 앉아 자신의 차례를 기다렸다. 그러자 법원의 허락을 받은 사진기자들과 TV 카메라맨들이 법정에 들어와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며 잔뜩 움츠러든 그의 모습을 찍었다.

스트로스칸 전 총재가 차례가 돼 변호사와 함께 판사 앞에 서자 검찰이 혐의 사실을 읽어내려갔다. 검찰 측 문서에 따르면 스트로스칸이 저지른 6개 범죄는 △‘형사적으로 처벌되는 1급 성행위’ 2건 △1급 성폭행 미수 1건 △1급 및 3급 성희롱 각 1건 △2급 불법 구금 1건 △강제 접촉 1건이다.

1급 성행위 혐의만으로 25년형 가능

검찰이 제시한 문서에는 “동의 없이 정보 제공자(피해자)의 가슴을 잡고 정보 제공자의 스타킹을 내리려 시도했다” “강제로 정보 제공자의 음부를 잡았다”는 피해자 측의 상세한 진술이 적혀 있었다. 또 “강제로 자신의 성기를 정보 제공자의 입에 두 차례 접촉시켰으며, 실질적인 물리력을 동원해 이러한 행동을 했다”는 내용과 함께 피해자가 밖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호텔 방문을 잠갔다는 진술까지 소개됐다. 외신들은 그중 가장 심각한 1급 성행위 혐의만으로도 스트로스칸 전 총재가 25년형을 살 수 있다고 전했다.

검찰은 “조사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스트로스칸 전 총재가 프랑스로 도주할 우려가 있으므로 보석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변호를 맡은 벤자민 브래프먼 변호사는 “전과가 없고 도주 우려도 없다”며 “보석을 허용하면 파리로 돌아가지 않고 맨해튼에 사는 딸과 함께 머물 것이며 부인 안느 생클레르 여사가 오늘 오후 보석금으로 낼 100만 달러를 갖고 뉴욕에 도착했다”고 말했다. 멜리사 잭슨 판사는 변호사에게 “당신의 의뢰인이 JFK공항에서 비행기에 앉은 채 붙잡혔다. 이는 도주 우려가 있다는 뜻 아니냐”며 보석 신청을 기각했다.

이날 스트로스칸 전 총재는 변호인을 통해 자신에게 적용된 성폭행 미수 등의 혐의를 모두 부인했지만 소용없었다. 심리는 26분 만에 끝났다. 그는 악명 높은 뉴욕 라이커스 아일랜드 구치소 독방에 수감됐다. 1932년 문을 연 이 구치소는 라과디아 공항 근처 이스트 강에 위치한 168헥타르(약 1.68㎢) 규모의 섬에 있다. 장기 구금자를 위한 교도소가 별도로 없는 뉴욕 시가 재판에 계류 중이거나 형이 확정된 수감자를 함께 구금하는 곳이다. 하루 수감 인원이 평균 1만1000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스트로스칸 전 총재의 다음 심리는 5월 20일 열린다. 정식 재판 절차가 개시되면 그는 1, 2년이 걸리는 법정 다툼을 벌여야 한다. 또 이번 사건은 IMF 지도부 공백 사태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존 립스키 IMF 수석부총재가 8월 말 임기가 만료되면 물러나겠다는 의사를 밝혔기 때문이다.

프랑스 국민도 미국에서 들려온 이 소식에 경악했다. 이번 사건으로 3년 전 섹스 스캔들까지 다시 수면 위로 떠올렸다. 2008년 스트로스칸 전 총재는 IMF 아프리카지부를 담당하던 여성 경제학자 피로스카 나기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다는 루머에 시달렸다. 당시 ‘실수’로 결론이 나 스트로스칸 전 총재의 정치 인생은 큰 타격을 입지 않았다. 또 그의 부인 안느 생클레르가 개인 블로그에 “당시 사건은 하룻밤의 실수였다. 우리는 처음 만난 그날처럼 서로 사랑한다”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당시 프랑스인들은 정치인의 아내로 남편의 외도까지 보듬어준 생클레르의 용기에 박수를 보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은 그리 간단치 않다. 피해자가 강력한 처벌을 원하며 그를 고소한 데다 수갑을 찬 채 미국 수사기관을 빠져나오는 처참한 모습이 프랑스 전역에 공개됐기 때문이다. 대선 출마마저 불투명해졌다.

게다가 스트로스칸 전 총재가 언론에 오르내린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5월 3일 프랑스 ‘파리지앵(Parisiens)’ 신문은 스트로스칸 전 총재가 대선 준비를 위해 파리에 적당한 사무실을 물색한다는 내용의 기사를 게재했다. 4월 28일 파리 시내에서 한 파파라치가 찍은 사진은 환하게 웃는 스트로스칸 전 총재 부부의 모습을 담았다. 문제는 사진 중앙에 등장한 포르쉐 한 대였다. 스트로스칸 전 총재 소유로 추정되는 포르쉐 파나메라는 최소 8만 유로(1억 원)에 달하는 고급차였기 때문이다.

집권여당 대중운동연합(UMP)은 지지율 조사에서 사르코지 대통령을 2배 이상 따돌리던 그의 실책을 놓치지 않았다. UMP 브리스 오르트푸 의원은 “사회당의 성장 배경이 의심된다”며 스트로스칸 전 총재를 흔들었고, 우파 당원들은 각종 인터넷 홈페이지와 블로그에 문제의 사진을 올리며 ‘포커페이스 스트로스칸’을 비난했다. 그자비에 베르트랑 노동부 장관도 한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스트로스칸 전 총재가 포르쉐를 타든 페라리를 타든 관심 없다. 하지만 사회당의 기본 이념이 무엇인지 알고 싶다”며 공격했다.

사회당도 당황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사회당 올리비에 뒤소 의원은 “20여 명의 파파라치가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하는 것을 알았을 텐데 포르쉐를 타고 파리에 나타난 것은 현명하지 못했다”며 안타까워했다. 같은 사회당 의원으로 대선 출마 의사를 보였던 프랑소아 올랑드의 측근 브로누 르 후 의원은 “이런 일이 생길까 봐 프랑소아 올랑드는 오토바이나 자전거를 타고 다닌다”며 스트로스칸 전 총재의 자질을 의심했다. 여당의 압박에 일침을 가하는 의원도 있었다. 피에르 모스코비치는 “사회당 의원에게 좋은 이미지를 쌓으라고 당부하고 싶다. 하지만 프랑스 국민은 여당의 튀니지 호화여행 같은 사건을 잊지 않았다”고 여당을 공격했다.

평소에도 여성 스캔들로 입방아

포르쉐 사건 파장이 채 가라앉기도 전에 또 다른 사건이 터졌다. ‘프랑스 스와(France soir)’ 신문은 5월 13일 스트로스칸 전 총재가 명품 브랜드 조르주 드 파리(Georges de Paris)에서 한 벌에 3만5000달러나 하는 최고급 정장을 구입했다는 기사를 실었다. 조르주 드 파리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양복을 제작하는 유명 업체다. 그는 그날 바로 ‘개인에 대한 거짓 정보유출’로 프랑스 스와 신문사를 고소했다. 스트로스칸 전 총재 측은 “허위 사실을 지어냈다”고 밝혔다.

하지만 프랑스 스와 측도 “2010년 직접 미국 워싱턴에서 해당 디자이너를 만난 뒤 기사를 작성했다. 디자이너도 ‘그가 매장의 고객임이 분명하다. 7000달러에서 3만 달러에 달하는 양복을 서너 벌 구입했다. 치수를 재려고 그의 사무실로 찾아간 적도 있다’고 말했다”고 맞섰다. 언론이 스트로스칸 전 총재 헐뜯기를 계속하자 사회당 측은 ‘사르코지의 두려움이 초래한 비밀스러운 음모’ ‘의도적인 스트로스칸 죽이기’라고 주장했다.

이번 사건에 대해서도 갖가지 ‘음모론’을 제기하는 상황이다. 사건 발생 장소가 프랑스 자본이 소유한 소피텔 호텔이라는 점에서 누군가 의도적으로 스트로스칸 전 총재를 호텔로 유인했고, 함정을 파놓았다는 설이 대표적이다. 스트로스칸 전 총재가 평소 여성 스캔들이 많다는 점에서 누군가 그의 미국 일정을 알고 덫을 놓았을 개연성이 크다는 것이다. 또 프랑스 국내 정치 문제가 아니라 IMF에 타격을 입히려는 국제적인 음모일 수도 있다는 주장도 제기한다.

어찌 됐든 스트로스칸 전 총재의 강간 미수 사건까지 벌어지면서 프랑스 대선 경쟁 구도에 변화가 예상된다. 일단 여당은 강력한 경쟁자를 손쓰지 않고 쓰러뜨린 셈이어서 표정 관리를 한다. 사회당에서도 미소 짓는 사람이 있다. 사회당 대선 후보 경쟁에서 크게 뒤처졌던 프랑수아 올랑드, 마르틴 오브리 등도 스트로스칸의 추락으로 새로운 기회를 엿볼 수 있게 됐다. 포르쉐 사건 이후에도 “대선에 문제될 것 없다”고 답했던 75%가량의 프랑스 국민이 이번에도 같은 반응을 보일까.



주간동아 2011.05.23 788호 (p54~56)

뉴욕=신치영 특파원 higgledy@donga.com 파리=백연주 통신원 byj51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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