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간동아 로고

  • Magazine dongA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사회

그들만의 교수님 임용 딱 걸렸어!

바이올리니스트 이승일 씨 경희대 상대 승소…“나이 많아서 기회 박탈은 차별” 판결 나와

  •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그들만의 교수님 임용 딱 걸렸어!

그들만의 교수님 임용 딱 걸렸어!
“판결이 나온 순간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포기하고 있었는데 결국 정의가 이겼습니다.”

미국 국적 바이올리니스트 이승일(57) 씨는 학교법인 경희학원을 상대로 전임교원 임용 무효 확인 소송을 내 승소했다. 4월 28일 서울북부지방법원 민사13부(재판장 박순관 부장판사)는 “고령자라는 이유만으로 원고가 2차 심사를 받을 기회 자체를 박탈한 것은 차별적 행위”라며 “2010년 경희대 음대 전임교원 임용은 무효”라고 판결했다.

힘든 싸움이었다. 주변 사람들은 “교수와 학생의 운명을 쥐고 흔드는 막강한 학교와 일개 개인이 싸워 이길 수 없다”며 이씨를 만류했다. 소송을 그만두라는 ‘은근한 압박’ 전화가 걸려오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이씨는 1973년 19세에 한국인 최초로 파가니니 국제콩쿠르에 입상한 유명 바이올리니스트다. 그는 13세 때 미국에 정착한 뒤 뉴욕 줄리어드 음대, 메네스 음대에서 석사 과정을 마쳤다. 세계적인 거장 로린 마젤의 지휘 아래 동양인 최초로 미국 피츠버그 심포니 오케스트라 악장으로 활동하기도 했고,‘미션 임파서블’‘아바타’등 영화음악 제작에도 참여했다. 화려한 경력을 가진 이씨가 경희대 전임교수 자리를 희망한 것은 고국에서 학생을 지도하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미국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았고 학생도 많이 가르쳤습니다. 한국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저의 이력이 좋은 도움이 되겠다고 생각해 지원했어요.”



갑자기 1차 심사 결과 배제

2009년 경희대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경희대는 2009학년도부터 단과대학별로 교원 신규 채용을 자체 진행하기로 했다. 음대로서는 처음 하는 교수 공개 채용인 것이다. 음대는 같은 해 6월 18일 기악과, 성악과, 작곡과 각 1명씩 3명의 전임교수를 채용한다는 공고를 냈다. 전임교원임용규정에 따라 1차 서류심사에 합격한 사람에게 개별통보하고, 2차 학과심사, 3차 면접심사를 진행하기로 했다. 이씨는 경희대 홈페이지에서 공고를 본 뒤 이력서와 연주 CD를 제출했다. 이씨의 CD를 듣고 실력에 감탄한 이종영 당시 음대 학장은 재단과 학생의 동의를 얻어 7월 이씨에게 “1년 정도 실력을 보자. 초빙교수로 오라”고 전화를 걸었다. 이씨는 전화를 받고 한국으로 떠날 준비를 했지만 다시 이 전학장으로부터 “초빙교수 채용이 잘 안 됐다”는 전화를 받았다. A교수가 반대했기 때문이다. 전임교수 공개 채용과 관련해선 단 한 통의 전화도 받지 못했다.

이 전 학장 등 경희대 교수와 다른 학교 음대 교수로 이루어진 심사위원단은 1위로 이씨를 뽑았다. 하지만 음대 학생회가 “CD 심사 비중이 커 자의적이고 주관적인 기준에 따라 교수를 채용할 우려가 있다”고 문제를 제기했으며, 다른 교수도 공정성을 확보하자고 요청했다. 음대는 음대 교수 채용 방식과 관련해 대학 자율운영지원센터에 채용 프로세스 컨설팅을 맡겼다. 이때 이 전 학장의 날인은 없었다. 이 전 학장은 “모든 교수가 동의했던 방식을 갑자기 바꾸고 대학 본부에 맡긴 것이 이해가 안 된다. 문제를 제기한 학생들이 특정 교수의 사주를 받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8월 말 음대 학장직은 이훈 전 학장이 맡게 됐으며, 교수 채용안은 당초 1차 심사 결과를 배제하고 기악과 전임교수가 지원자 중 3명씩 추천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이종영 전 학장은 1등으로 이씨를 추천했고 A교수는 2010년도에 채용된 B교수를 1등으로 추천했다. 당초 1차 심사에서 B교수는 10위권 밖이었다. 하지만 음대 인사소위원회는 이씨를 고령자란 이유로 2차 심사 대상에서 제외했다.

법원은 “대학이 스스로 관련 규정을 제정하고 그에 따라 임용 절차를 진행했다면 대학 스스로도 관련 규정에 구속된다. 1차 전공심사 자체를 배제하고 아무 객관적 기준이 없는 전임교수의 추천만으로 1차 전공심사를 대체한 것은 자의적 절차였다”고 규정했다. 재판부는 원래 기준이 더 공정하며, 객관적인 심사가 이루어졌다고 본 것. 또 고령을 이유로 이씨를 배제한 것은 ‘합리적인 이유 없이 연령을 이유로 하는 고용차별을 금지하는’ 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고용촉진에 관한 법률을 위반한 것으로 판단했다.

그들만의 교수님 임용 딱 걸렸어!

이승일 씨(왼쪽)는 경희대 음대 전임교수 임용의 ‘절차적 흠’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골프 접대 등 온갖 소문 나돌아

이종영 전 학장과 이씨는 당시 교수 채용을 두고 경희대 내부에서 일어났던 일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러다 국내 한 오케스트라에 취직해 한국에 온 이씨가 2010년 5월 이 전 학장을 아는 악기판매상을 통해 처음으로 이 전 학장을 만났다. 초빙교수 건으로 통화한 후 직접 만난 것은 처음. 이미 B교수가 채용된 뒤였다. 이씨는 “한국에서 교수를 하려면 인맥이 필요하단 이야기를 들었기에 채용이 안 된 줄 알았다”고 말했다. 이 전 학장도 “이씨가 워낙 바빠 한국에 올 여유가 없어 2차 심사에 안 온 줄 알았다”고 밝혔다. 만약 이씨가 한국에 오지 않았다면 채용 과정에서의 절차적 흠은 드러나지 않을 뻔했다.

법원 판결에 대해 경희대 음대 구성원의 반응은 제각각이다. 홍윤식 음대 총동창회장은 “학교가 절차를 바꾸고 나이를 이유로 이씨를 채용하지 않은 것에 대해선 그 이면을 봐야 한다”고 말했다. 홍 회장, 음대 학생회 소속 C학생 등은 2010년 7월 B교수 등의 임용 효력 정지 가처분신청을 냈다가 취하했다. 홍 회장은 “졸업한 학교를 창피하게 하고 싶지 않았지만 동창회 내부에서도 더는 교수 임용 비리를 두고 볼 수 없다는 이야기가 많았다. 총장에게 탄원서도 여러 번 썼다”고 말했다. C학생도 “가뜩이나 교수가 부족해 학생들이 힘든데 매번 실력도 없는 낙하산 교수만 임용했다”고 비판했다. 학교는 C학생이 교수 임용에 관여했다고 보고 90일 유기정학 처분을 내리기도 했다. 하지만 법원은 징계 무효 가처분신청에서 C학생 손을 들어주었다.

경희대 측은 “법원 판결과 관련해 검토 중”이라는 답변만 내놓았다. 이훈 전 학장은 “이미 학교에서 정년퇴임을 했다”며 언급을 꺼렸고

B교수도 “결정은 학교에서 알아서 할 일”이라고만 말했다.

법원이 전임교수 채용 과정의 절차 문제를 지적하고 난 뒤, 학교에선 임용 기준과 절차가 갑자기 바뀌었던 이유를 두고 확인되지 않은 온갖 소문이 나돈다. ‘한 교수 지원자가 제주도 골프장에서 현직 교수들에게 골프 접대를 했다’ ‘공채로 바뀌면 라인 관리가 힘들어 절차를 바꾸었다’ 등이 그것. 심지어 총장의 직계가족 이름까지 오르내린다. 소문 중에는 ‘이씨도 교수가 되려고 돈을 썼다’는 말까지 있다. 실명이 거론되는 교수는 모두 이를 부인하거나 “잘 모르는 일”이라고 답했다. 음대 총동창회 관계자는 “어떤 교수도 임용 비리와 관련해 깨끗하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라고 토로했다. 이씨는 “이번 일을 계기로 잘못된 점이 있다면 바로잡았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경희대 음대는 2011학년도 2학기 교수 초빙 공고를 낸 상태다.



주간동아 2011.05.23 788호 (p40~41)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다른호 더보기 목록 닫기
1240

제 1240호

2020.05.22

“정의연이 할머니들 대변한다 생각했던 내가 순진했다”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