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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교익의 미식생활

기념품 스테인리스 공기 외국인 시선 왜곡할라

한국인의 밥그릇

  • 황교익 blog.naver.com/foodi2

기념품 스테인리스 공기 외국인 시선 왜곡할라

기념품 스테인리스 공기 외국인 시선 왜곡할라

서울 인사동 관광상품 가게에서 파는 스테인리스 스틸 밥그릇. 한국을 상징하는 태극기와 한반도 지도에 KOREA, 대한민국, 삼천리금수강산까지 써놓았다.

2010년 한식 세계화 관련 전시회장에서 희한한 일이 있었다. 한국인의 주식인 밥이 세계 여러 나라의 그릇에 담겨도 다 어울린다며, 서양의 유명 브랜드 식기에 담아 전시했다. 그 그릇이 서양의 어떤 음식을 담는 데 쓰이는지 알지 못한다. 그들의 식탁에 밥이 오르지 않으니, 적어도 밥그릇은 아닐 것이다. 내가 희한하다고 한 이유는 우리 밥그릇조차 챙기지 못하면서 그런 전시를 했기 때문이다.

외국 관광객이 가장 많이 찾는 서울 인사동에선 한국인의 밥그릇이 관광상품으로 팔린다. 스테인리스 스틸로 만든 밥그릇이 대부분이다. 한국인이 ‘공기’라고 부르는 그릇이다. 옛날 여성 밥그릇인 합과 비슷하게 생겼지만, 합의 단아한 멋과는 한참 거리가 멀다.

스테인리스 스틸 밥그릇은 한국 식당에서 가장 많이 사용한다. 이 그릇이 관광상품이 된 이유는 외국인의 눈에 한국을 상징하는 그 무엇으로 보였기 때문일 것이다. 도대체 어떻게 보였을까. 디자인이 멋있을까, 아니면 한국 전통미가 물씬 풍긴다고 여기는 것일까. 내 눈이 그다지 높은 편은 아니지만, 스테인리스 스틸 밥그릇은 저급한 한국 음식문화의 상징처럼 보인다. 외국 관광객은 그릇을 사면서 “한국인은 스테인리스 스틸 그릇에 밥을 담아 먹는 별난 민족”이라며 낄낄거렸을 것이다. “한국 가정에서 스테인리스 스틸 밥그릇을 쓰지 않는다”고 변명해도 소용없다. “한국의 거의 모든 식당에서 봤는데 무슨 소리!”라고 할 테니 말이다.

한국 상차림의 중심에는 밥이 있고, 밥은 밥그릇에 담긴다. 우리 조상은 남성은 운두가 높은 발, 여성은 운두가 낮은 합을 썼다. 1960년대 초만 해도 도자기, 유기 밥그릇을 쓰면서 나름 문화적 계통을 유지했다. 하지만 1960년대 중반 우리 밥상에 ‘공기’라는 별종의 그릇이 등장했다. 한자로 공기(空器)라고 쓰는데, 번역하면 ‘빈 그릇’이다. 정부에서 밥그릇을 작게 해 밥을 덜 먹자는 운동을 벌이면서부터 그렇게 국적 불명의 공기가 퍼져 나갔다. 지금 가정집에서는 도자기 공기를 흔히 쓰고, 식당에서는 스테인리스 스틸 공기를 쓴다.

가정용 공기는 디자인이 다양한 편이다. 이 디자인이 어디에서 왔는지 도자기 회사에 전화해봤지만, 정확히 아는 사람은 없었다. 그들의 말을 듣고 대충 짐작할 수 있는 것은 도자기 회사가 1970년대 혼수식기세트를 출시하며 서양 그릇에서 본을 많이 따왔고, 그 그릇 가운데 일부가 공기로 쓰였으리라는 정도다. 요즘은 변형이 워낙 많아 도자기 회사도 그 모양의 유래를 알 수 없다고 한다. 서양에는 밥이 없으니 스튜 그릇이 우리 밥그릇의 원형이 아닐까 싶다. 그렇게 수십 년을 지내다 보니 한국인은 밥그릇도 잃게 된 것이다.



음식도 문화이니, 한국음식을 세계화하면 한국문화도 알릴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외국 유명 요리사를 데려다 한국음식을 먹이고, 외국에서 한국음식 전시회를 하는 등 여러 행사를 연다. 특급 호텔에 한식당 하나가 리모델링 후 다시 문을 열었다며 들썩이고, 호텔마다 한식 세계화를 위한 이벤트도 벌인다. 다 좋은 일이다. 그러나 딱 하나 아쉬운 것이 있다. 음식은 일상 문화라는 점을 한식 세계화 주도자들은 모른다는 것이다. 한국에 오는 외국 관광객 가운데 특급 호텔 레스토랑이나 유명 한정식 집에서 밥을 먹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대부분 관광객은 대중식당에서 보통의 한국인과 똑같은 음식을 먹고 싶어 하고, 또 거기서 먹는다. 따라서 대중식당의 음식이 곧 한국음식 세계화의 통로인 것이다. 그런데 부끄럽게도 대중식당에서는 대부분 스테인리스 스틸 공기에 밥을 담아낸다.



주간동아 2011.05.09 786호 (p70~70)

황교익 blog.naver.com/foodi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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