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78

2011.03.14

사랑이 왔다, 운명아 길 비켜라

조지 놀피 감독의 ‘컨트롤러’

  • 박혜림 기자 yiyi@donga.com / journalog.net/inourtime

    입력2011-03-14 14:03: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사랑이 왔다, 운명아 길 비켜라
    보기도 전에 기대감으로 마음이 들뜨게 되는 영화가 있다. 배우, 감독 등 제작에 참여한 이들의 면면이 화려한 영화가 그렇다. ‘SF 스릴러’를 표방하는 조지 놀피 감독의 ‘컨트롤러’도 이런 경우에 속한다. 할리우드 대표 배우 맷 데이먼이 주인공이라서만은 아니다. 조지 놀피는 ‘오션스 트웰브’ ‘본 얼티메이텀’ 등의 시나리오를 쓰며 할리우드에서 실력을 인정받은 각본가다. 이번 영화는 그가 각본·연출을 모두 맡은 첫 작품. ‘컨트롤러’의 원작은 미국을 대표하는 SF 소설가 필립 K. 딕의 소설 ‘조정팀’이다. 영화 ‘블레이드 러너’ ‘마이너리티 리포트’ 등의 원작 역시 그의 소설이다. 이 모든 사전 정보를 훑다 보면 또 하나의 걸출한 SF 스릴러 영화의 탄생을 기대하게 된다.

    데이비드(맷 데이먼 분)는 최연소로 하원에 당선된 전도유망한 정치인이다. 어느 날 그는 우연히 현대무용수 앨리스(에밀리 블런트 분)를 만나고 몇 분 만에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낯선 남자들이 나타나 두 사람의 사랑을 가로막는다. 이들은 바로 ‘조정국’ 요원. ‘조정국’은 세상을 자신들이 계획한 ‘미래 설계도’에 따라 움직이도록 인간을 조정하는 단체다. 이들은 데이비드에게 “당신은 대통령이 되도록 미래가 설계됐지만, 앨리스를 만나면 그 계획이 무산된다”고 경고한다. 하지만 데이비드는 이를 무시하고 앨리스를 만나려고 한다. 그는 조정국이 정한 계획이 아닌 자신의 자유의지에 따라 살고자 한다.

    주인공이 고난을 극복하는 이야기는 그 과정이 힘겨울수록 빛나는 법. 조지 놀피는 ‘본 얼티메이텀’에서 능수능란하게 제이슨 본을 고난 속으로 밀어넣었다. 대체 그 솜씨는 어디로 간 걸까. 데이비드와 조정국 요원의 쫓고 쫓기는 추격전은 어쩐지 만만하고 수월해 보인다. 요원들은 어제 산 듯한 중절모와 슈트를 걸치고 손에는 노트 한 권을 든 채 답답할 만큼 굼뜨게 그를 쫓는다. 그 모습이 우스꽝스럽기까지 하다. 좀 과장하면 관객이 자신도 모르게 데이비드가 아닌 요원들을 향해 ‘좀 더 빨리 달려’를 외치게 된 달까.

    해리(앤서니 매키 분)는 조정국의 요원이지만 결국 데이비드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민다. 그의 이런 태도 변화 역시 설득력이 부족하다. 적군이 아군으로 변할 때는 계기가 있게 마련. 하지만 해리는 극 초반부터 “인간이 자유의지대로 살아가는 것을 막는 일이 옳은가”에 대해 고뇌하다 스스로 마음을 바꾼다.

    SF 장르가 주는 매력 중 하나는 현실과 판이하게 다른, 상상 이상의 세계를 만날 수 있다는 점이다. ‘컨트롤러’에도 그런 설정은 있다. 조정국 요원의 모자를 쓰면 뉴욕 고층 빌딩 곳곳에 숨겨진 비밀의 문을 통과할 수 있다. 하지만 영화 ‘매트릭스’나 ‘인셉션’이 보여준 공간에 대한 상상과 비교하면 이 상상은 단순하고 심심하다.



    사랑이 왔다, 운명아 길 비켜라
    맷 데이먼은 맨해튼 시내의 고층 빌딩 사이를 정신없이 오간다. 그의 여정이 지루하지 않게 느껴지는 데는 뉴욕의 화려한 풍경이 한몫했다. 물론 사건을 빠르게 전개시키는 조지 놀피의 재능이 가장 큰 요인이지만.

    데이비드와 앨리스는 현대판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운명을 거스르고 사랑을 택한다. 영화를 보고 나면 ‘자유의지는 위대하다’보다 ‘사랑의 힘은 위대하다’는 메시지가 머릿속을 맴돈다. 수많은 액션 스릴러와 SF 영화를 봐온 관객에게는 싱거운 영화가 될지도 모르겠다. 이 영화는 ‘SF 스릴러’라기보다 ‘SF 멜로’에 가깝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