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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 넣은 감격인가 준비된 몸짓인가

축구 세리머니 점점 자극적… 정치·인종, 상대 팀 자극은 규제

  • 최용석 스포츠동아 기자 gtyong@donga.com

골 넣은 감격인가 준비된 몸짓인가

2011년 아시안컵에서 기성용의 골 세리머니가 이슈로 부각됐다. 기성용은 4강전 일본과의 경기에서 페널티킥으로 선제골을 넣은 뒤 TV 중계 카메라를 향해 원숭이 흉내를 냈다. 이는 유럽 등에서 동양인을 비하할 때 쓰는 경우가 많다. 일본 언론들과 팬들이 불쾌한 반응을 보인 것도 그 때문이다. 국내에서는 기성용을 옹호하는 글도 나왔지만 비난의 목소리가 더 많았다. 국제축구연맹(FIFA)은 골 세리머니를 펼칠 때 정치 색깔을 드러내거나 인종차별적인 행동을 하는 것을 강력히 규제한다. 그러나 FIFA와 아시아축구연맹(AFC)은 기성용의 세리머니에 대해 징계를 내리지 않았다. 대한축구협회(KFA)와 축구대표팀으로서는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골 세리머니는 축구와 함께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 골 세리머니는 말 그대로 골을 넣은 뒤 그 기쁨을 표현하는 것이다. 바르셀로나의 경우 골키퍼를 제외한 10명의 선수가 한데 모여 골 넣은 선수를 축하해주는 세리머니가 전통으로 자리 잡고 있다. 아프리카 대륙의 대표팀 선수들은 골을 넣은 뒤 종종 코너플래그에 모여 전통 춤을 춘다. 이는 골 넣은 기쁨을 몸으로 표현해 팀의 사기를 끌어올릴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기성용 원숭이 흉내에 비난 목소리

세리머니에 대한 준비는 개인이 하는 경우와 팀 전체가 하는 경우로 나뉜다. 선수들은 즉흥적으로 생각해내기도 하지만 간혹 경기 전에 구상하기도 한다. 단체로 하는 세리머니는 팀원들과 약속된 행동이다. 팀 전통에 따른 세리머니를 제외하고는 선수들이 경기 전 미팅을 하면서 어떤 세리머니를 할지 결정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1994년 미국월드컵에서 브라질 대표팀 베베토가 선보인 아기 어르기 세리머니는 큰 유행을 일으켰다. 이 밖에도 선수들이 서로의 다리를 잡고 그라운드를 기어가는 듯한 기차 세리머니 등이 팬들에게서 사랑을 받았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뛰는 나니처럼 골을 넣은 뒤 공중돌기를 하는 세리머니는 이미 오래전부터 많은 선수가 시도했을 정도로 크게 유행했다.



골 세리머니는 특히 2000년대 들어 자주 이슈화됐다. 선수들이 속옷에 글자를 적어 골을 넣은 뒤 유니폼 상의를 들어 올려 팬들에게 자신의 메신지를 전달하는 방법이 등장했다. 그러나 정치적인 이슈를 세리머니에 포함시키면서 FIFA는 정치 메시지 전달을 금지하는 등 규제를 하기 시작했다.

한국 축구에선 2002년 한일월드컵 이전까지 다양한 골 세리머니가 등장하진 않았다. 1994년 미국월드컵에서 골을 넣은 홍명보의 환호, 황선홍의 절제된 세리머니 등이 팬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1998년 프랑스월드컵 예선에서 골을 넣은 뒤 광고판에 올라갔다가 넘어진 최용수의 세리머니도 매우 흥미로웠지만 이런 장면이 자주 나타나진 않았다. 2002년 월드컵을 준비하며 많은 세리머니가 연출됐다. 이 중심에는 이천수가 있었다. 당시 대학생이던 이천수는 다양한 세리머니로 화제를 모았다. 국내에서 속옷 세리머니를 선보인 원조가 이천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02년 월드컵 미국전에서 안정환의 동점골 이후 선수들이 모여 쇼트트랙 세리머니를 연출해 외신들의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당시 이천수는 김동성의 금메달을 빼앗아간 오노 역할을 맡아 눈길을 끌었다. 포르투갈전에서는 박지성이 골을 넣은 뒤 동료들을 제치고 히딩크 감독의 가슴에 안기는 세리머니를 펼쳤다. 안정환은 이탈리아와의 16강전에서 골든골을 넣은 뒤 반지에 키스를 해 ‘반지의 제왕’이란 별칭까지 얻었다.

이후 대표팀 경기뿐 아니라 K리그 경기에서도 다양한 세리머니가 연출됐다. 특히 K리그 올스타전에서는 선수들이 미리 세리머니를 서너 가지 약속하고 나와 경기장을 찾은 팬들에게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기도 했다. 여자축구 WK리그의 고양대교 선수들은 골을 넣은 뒤 하프라인에 모여 관중석을 향해 단체 하트를 그려 보이는 세리머니를 하며 팬들의 눈길을 끌었다.

골 세리머니가 유행을 타면서 자극성 세리머니도 늘고 있다. FIFA와 각 프로리그의 규제로 줄어들고 있긴 하지만 허용된 범위에서 선수들은 세리머니를 통해 다양한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한다. 대표팀 주장 박지성은 2010년 남아공월드컵을 앞두고 일본 사이타마에서 열린 한일 친선경기에서 골을 넣은 뒤 일본 관중을 응시하며 무언의 시위를 펼쳤다. 그는 경기 시작 전 자신을 소개할 때 야유를 보냈던 일본 관중석을 한 바퀴 쭉 돌아보았다. 그는 무표정했지만 일본 팬들에게 무언가 메시지를 전달하는 듯했다. 아주 간단한 세리머니였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팬들과 공감하면서 즐거움 줘야

2011년 아시안컵 일본전에서 나온 기성용의 세리머니는 더 자극적이었다. 그가 원숭이 흉내를 낸 이유는 일본 응원단에 ‘욱일승천기’가 등장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욱일승천기는 메이지유신 이후 구 일본군의 군기로 제국주의의 상징물이다. 그 의미를 잘 아는 기성용이 일종의 항의 표시로 세리머니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프로리그에서는 상대를 자극하는 세리머니가 더 많이 등장한다. 전북의 심우현은 전 소속팀 서울과의 경기에서 골을 넣은 뒤 자신의 머리에 총을 쏘는 세리머니를 했다. ‘이제 내 속에 서울은 없다’라는 의미였지만 상대 서포터스나 선수들 처지에서는 달가울 리가 없었다. 또한 이천수는 골을 넣었지만 오프사이드로 인정받지 못하자 주먹감자 세리머니를 해 징계를 받기도 했다. 상대를 자극하지는 않았지만 심판을 향해 메시지를 전달해 문제가 됐다.

FIFA를 포함해 K리그 등은 세리머니에 대해 강력한 규제를 한다. 상대를 자극하는 행위는 곧바로 퇴장을 명령할 뿐 아니라 추후 징계위원회를 열어 선수에게 제재를 하기도 한다. 그 정도가 지나치다고 판단될 때는 벌금까지 부과한다. 유니폼 상의를 벗으면 그 벌로 옐로카드를 주는 등 축구선수로서 품위를 유지하지 못한 것에 강력히 대처하고 있다. 다행스럽게도 세리머니 때문에 FIFA로부터 징계를 받은 한국 선수는 아직까지 한 명도 없다.

K리그에서는 이천수가 주먹감사 세리머니로 출전 정지뿐 아니라 벌금 등을 부과받는 등 최고 수위의 징계를 받았다. 상대방 관중석을 향해 주먹을 올린 조재진도 연맹으로부터 징계를 받았다. 서울의 데얀은 골은 넣은 뒤 상대방 벤치 앞에서 자신의 유니폼을 벗어 땅에 던졌다가 레드카드를 받고 퇴장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 선수들이 골 세리머니로 상대방 또는 상대 응원석을 자극하는 일은 점점 줄어드는 추세다. 골 세리머니로 징계를 받은 경우 팀에 큰 손해를 입히고, 이미지까지 실추돼 팀 관계자들과 선수들 모두 조심하고 있다.

축구는 페어플레이를 기본으로 한다. 이는 플레이를 하는 동안뿐 아니라 선수로서 행동하는 모든 부분에 기본 정신으로 작용한다. 당연히 정치 색깔을 띠거나 상대를 자극하는 세리머니도 페어플레이 위반이다. 축구에 대한 흥미를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자극적인 세리머니보다 팬들이 공감하면서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세리머니를 개발해야 한다.



주간동아 2011.02.14 774호 (p74~75)

최용석 스포츠동아 기자 gty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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