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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CIETY

“법의학으로 무장한 살해범” VS “억울한 누명 씌우는 것”

만삭 의사부인 의문사 날 선 공방 확산

  •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법의학으로 무장한 살해범” VS “억울한 누명 씌우는 것”

“법의학으로 무장한 살해범” VS “억울한 누명 씌우는 것”
서울서부지방법원은 2월 4일 경찰이 만삭인 아내 A씨(29)의 목을 손으로 눌러 살해한 혐의로 모 의대 전공의 B씨(31)에 대해 신청한 구속영장을 ‘사고사에 의한 사망 가능성이 있다’며 기각했다. 이 사건이 세인의 관심을 폭발시키는 이유는 피의자인 남편이 잘나가는 의대 전공의인 데다 최근 유행하는 과학수사 드라마에서처럼 살인과 사고사 여부, 진범이 누구인지를 두고 법의학적인 분쟁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 더욱이 살해 혐의를 받는 남편의 변호를 맡은 그의 형 또한 유명 의대 소속의 전문의인 점이 눈길을 끈다.

남편을 살인범으로 의심하는 사람들은 “법의학 지식이 해박한 의사임을 이용해 완전범죄를 꿈꾼다”고 생각하고, 반대로 그의 무죄를 주장하는 측은 “경찰이 무고한 사람을 범인으로 몰아간다. 의사가 아니었다면 억울하게 당했을 것”이라고 동정론을 편다.

# 싸우다 상처 났다? 그냥 긁었다?

현재 경찰과 유족 측은 이번 사건을 남편이 계획적으로 저지른 살인이라고 주장하는 반면, 남편과 형은 법의학적 근거를 대며 경찰과 유족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하고 있다.

경찰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하 국과수)이 발표한 부검 결과를 토대로 아내의 손톱에서 발견된 남편의 DNA, 아내가 입고 있던 상의에서 발견된 남편의 혈흔, 남편의 상의 추리닝에 묻은 아내의 혈흔, 남편이 진술한 알리바이가 거짓말탐지기를 통과하지 못한 점 등을 들어 남편을 범인으로 지목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하지만 남편 측은 이를 반박하며 무고함을 알리고 있다. 만삭 아내의 사망사건, 그 진실은 무엇일까?



경찰이 남편을 범인으로 확신한 이유 중 하나는 남편 몸에 난 상처 때문이다. 남편의 이마와 양 팔뚝의 긁힌 상처가 아내가 저항하거나 두 사람이 싸우다 생긴 것이라는 주장. 하지만 남편 측은 “이마의 상처는 전날 물을 마시기 위해 컵을 꺼내려고 주방 찬장을 위로 열다 난 상처다. 양 팔뚝 상처는 시험 스트레스 때문에 팔짱을 낀 채 손으로 긁다 보니 생긴 상처로 이미 딱지가 앉을 정도로 오래됐다. 평소 피부가 건성이라 자주 긁는다”고 반박했다. 반면 아내 측은 “처음 상처에 대해 아토피를 앓았다고 변명했다. 하얗고 깨끗한 피부를 가진 남편이 피부질환 운운하는 것은 거짓말”이라고 반문했다.

발견된 혈흔에 대해서도 남편 측은 “충분히 해명했다”는 생각이다. 경찰은 “남편이 아내를 살해한 뒤 추리닝 상의에 혈흔이 묻은 걸 발견하고 숨겨두었다. 아내의 옷에서도 남편의 혈흔이 나왔다. 특히 추리닝 상의에 묻은 혈흔과 관련해 ‘평소 코피를 자주 흘리는데 닦다 묻었다’고 했다가, 다음엔 또 아니라고 하는 등 남편의 진술이 일관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하지만 남편 측은 “경찰은 혈흔이라고 표현하는데 1, 2mm에 불과한 핏자국으로, 뾰루지를 짠 뒤 고름과 섞여 나온 피가 묻은 정도인 생활흔이다. 아내의 옷에 묻은 혈흔은 이 생활흔이 옮겨 묻은 것일 뿐”이라고 반박하며 “경찰이 아내의 손톱 밑에서 남편의 DNA가 나왔다고 했지만 이는 등을 긁어주다 낀 각질에서도 나온다. 싸웠다면 남편의 살집이 손톱 밑에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직접적인 사망 원인을 두고도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여기에 일부 법의학자, 범죄전문가까지 가세했다. 국과수가 밝힌 사망 원인은 ‘목눌림에 의한 질식사’다. 남편 측은 “경찰이 목 졸라 살해했다고 추정했다 눌림으로 결과가 나오자 당황했다. 목을 손으로 눌려 죽였다고 하는데, 5분 이상 힘껏 눌러야 사람을 죽이는 게 가능하다. 그렇다면 목에 손자국이 남아 있어야 하는데 전혀 표시가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서울대 법의학교실 이윤성 교수는 “목 주변에 수건을 두르거나 손이 아닌 팔을 이용해 누른다면 흔적을 남기지 않고 살해할 수 있다”고 다른 의견을 냈다. 대부분 법의학자는 말을 아끼며 신중론을 펼치고 있다. 한 법의학교실 교수는 “목눌림에 의한 질식사 한 구절을 두고 갑론을박하지만 직접 부검하지 않은 법의학자가 하는 말은 모두 추정이다. 결국 국과수가 해결할 일”이라고 밝혔다.

남편 측은 아내의 죽음이 사고라고 주장한다. 남편 측은 “살을 빼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아내가 음식도 잘 챙겨먹지 않았다”고 말한다. 아내가 욕실에서 갑자기 현기증을 느껴 욕조에 걸터앉았다가 뒤로 넘어져 목이 눌려 숨졌다는 것이다. 아내의 뒤통수에 생긴 찢어진 상처도 이때 생긴 것으로 추정했다.

“법의학으로 무장한 살해범” VS “억울한 누명 씌우는 것”
# 욕조에서 죽었나? 욕조로 옮겼나?

한 산부인과 전문의는 남편 측 주장에 대해 “아내가 153cm에 57kg 정도였다면 만삭 산모치고 몸이 약한 편이라 갑자기 일어서다 정신을 잃는 기립성 저혈압이 올 가능성이 다른 산모보다 크다. 하지만 기립성 때문이라면 한순간에 정신을 잃기에 욕조에 반듯이 눕는 자세가 나오기 어렵고, 뒤통수의 상처도 더 커야 한다. 게다가 조심성 많은 산모가 욕조에 걸터앉았을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밝혔다. 아내가 다닌 산부인과 병원 관계자도 “A씨는 특이사항 없는 건강한 산모”라고 밝혔다. 아내는 사건 발생 전까지 매일 마포 자택에서 분당 학원까지 직접 운전해 출근했고, 부검 결과 몸속에서 약물이나 독극물도 나오지 않았다.

경찰과 유족 측은 남편이 집 안 다른 곳에서 아내를 살해한 뒤 욕조로 옮겼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경찰은 뒤통수의 상처에서 피가 많이 흐르지 않은 데다 아내 머리 여러 군데에 상처가 있고, 목이 기울지 않고 바로 놓여 있었던 점을 그 증거로 봤다. 반면 남편 측은 “욕조의 피가 많지 않았던 점은 알고 있지만 아내의 상처에 대해서는 모른다. 경찰이 처음 수사할 때 집 안에서 아내를 옮긴 흔적이 나오지 않았다”고 밝혔다. 하지만 유족 측은 “주검을 처음 발견했을 때 남편이 죽인 뒤 아내를 안아 옮겨놓은 모양이 분명했다”고 주장했다.

경찰도 명확히 밝혀내지 못한 부분은 살해 동기다. 처음 구속영장을 신청할 때는 ‘불상의 이유’로 밝혔다. 주검 발생 전날인 1월 13일 저녁 부부 사이에 대한 주장도 양측이 엇갈린다. 이날 남편은 소아과 전문의 1차 시험을 치른 후 아내와 외식을 하고 오후 5시 45분쯤 서울 마포구 도화동 집으로 돌아왔다. 이후 남편 측은 “아내와 소파에 앉아 서로 등을 긁어줄 정도로 사이가 좋았고, 시험을 망친 이야기를 털어놓자 아내가 위로해주고 다독여줬다”고 주장했다. 아내와 대화를 마친 뒤 시험 스트레스를 풀려고 인터넷 게임을 한 뒤 잠을 잤으며, 다음 날 병원에 출근한 뒤 도서관에 갔다는 것. 남편은 도서관에서 휴대전화를 무음으로 바꿔놓아 아내의 행방을 묻는 처가 식구의 전화를 받지 못했다.

“법의학으로 무장한 살해범” VS “억울한 누명 씌우는 것”
하지만 유족 측은 “둘 사이가 평소에도 좋지 않았다”고 반박한다. 아내는 남편의 합격 여부도 중요했지만 시험 성적도 좋아야 수도권 지역 공중보건의 자리를 얻을 수 있기에 시험을 중요하게 생각했다는 것. 하지만 남편이 시험을 망친 뒤에도 게임에 몰두하자 아내가 잔소리를 했을 것이고 이로 인해 다퉜으리라는 게 유족 측의 주장이다. 유족 측에 따르면 숨진 A씨는 지인과의 전화통화를 통해 “나는 거실에서 텔레비전을 보고 남편은 방에서 게임을 한다. 게임을 너무 좋아해 속상하다”고 자주 말했다는 것. A씨의 어머니는 “주검이 발견된 직후 사위가 ‘전날 다퉜다. 제가 일방적으로 당했다’고 분명히 말했다. 그날 오전 평소에 하지 않던 전화까지 하며 알리바이를 확보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남편 측은 “서로 조금 삐친 정도였고, 토닥토닥했다고 표현했는데 장모가 다퉜다고 오해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경찰은 “과학적 증거가 충분히 확보돼 혐의 입증에 자신이 있다. 구속영장을 곧 재신청할 것”이라고 강한 의지를 보였다. 하지만 남편 측 임태완 변호사는 “구속영장에 범행추정 시각을 13일 오후 5시 45분부터 14일 오전 6시 47분으로 넓게 잡았다. 국과수가 범행추정 시각을 그렇게 알려준 것인지, 아니면 범행추정 시각이 경찰에 불리하게 나와 두루뭉술하게 잡은 것인지 궁금하다. 더 나올 증거가 없을 것이며, 유력한 증거라면 구속영장을 신청할 때 빼놓았을 리 없다”고 반박했다.

“혐의 입증 자신” vs “더 나올 증거 없다”

남편 측과 유족 측도 서로 날 선 공방을 펼치고 있다. 유족 측은 “법의학 지식이 해박한 사위가 비겁하게 사건의 진실을 조작하고 있다”고 비난하는 반면, 남편 측은 “딸을 죽였다고 오해한 장인 장모가 딸 잃은 한을 무고한 사위에게 풀려고 한다. 장인의 영향력까지 동원하고 있다”며 억울해한다. 남편 측은 “장인이 경찰, 국과수 사이에 친분이 있다. 과거 청탁수사 의혹을 받은 팀이 이번에도 장인 측의 청탁을 받아 무리하게 자백을 받으려 했다. 국과수에서 거짓말탐지기를 받을 때도 한 직원이 공포 분위기를 조성해 결과가 다르게 나온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마포서 최종상 형사과장은 “이는 명백한 명예훼손감이다. 주임형사는 형사과장인데 다른 형사가 영향력을 끼칠 수 없다. 과거 강력팀이 받은 청탁 의혹도 무혐의로 결론 났다”고 밝혔다. 유족 측도 “딸을 잃은 부모가 담당 경찰에게 딸 죽음의 진실을 밝혀달라고 말을 건넨 것이 청탁이냐”고 분노했다. 유족 측은 도리어 “평소 찾아가면 집이 춥다고 느껴질 정도로 보일러를 틀지 않았는데 이날은 따뜻했다. 법의학을 잘 아는 사위가 사망추정 시간을 조작해 수사에 혼선을 주기 위한 행동”이라고 말했다.

경찰이 주머니에 넣고 있는 증거는 과연 무엇일까. 이 증거가 팽팽한 입씨름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을까. 세상을 놀라게 한 만삭 아내 살인사건은 지루한 법정싸움으로 번질 가능성이 커 보인다.



주간동아 2011.02.14 774호 (p61~63)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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