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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 줄게 핵 포기”… 美-北, 3번째 밀고 당기기

한반도 해빙 무드와 맞물려 국제사회 관심 집중

  • 신석호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 kyle@donga.com

“쌀 줄게 핵 포기”… 美-北, 3번째 밀고 당기기

북한의 인도적 문제를 담당하는 로버트 킹 미국 국무부 대북인권특사는 방한 중이던 2월 9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대북 식량 지원의 세 가지 원칙을 밝혔다. 그는 특히 “대북 인도적 지원에 대한 미국의 입장은 수요에 기반해야 하고 어떠한 정치적 고려도 들어가지 않는다는 게 첫 번째 원칙”이라고 말했다.

킹 특사의 이날 발언은, 올해 1월 28일자 ‘동아일보’ 단독 보도로 미국이 북한에 대한 인도적 식량 지원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는 사실이 공개된 이래 미국의 ‘책임 있는’ 당국자가 이 문제에 대해 밝힌 가장 구체적인 ‘워딩’이었다.

킹 특사의 발언 중 가장 흥미로운 내용은 ‘정치적 고려가 없다’는 것이다. 첫 번째 의미는 읽히는 그대로이나 두 번째 의미는 ‘북한이 필요로 하고 다른 두 조건(균형성과 투명성)이 맞으면 6자회담 재개와 관련 없이도 식량을 지원할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북한이 남한과 가진 군사실무회담에서 돌연 “천안함 사건은 우리와 무관하고 미국의 조종 하에 남측의 대북 대결정책을 합리화하려는 특대형 모략극이다. 연평도 사건도 남측이 연평도를 도발의 근원지로 만들었기 때문에 일어난 것이다”라고 주장한 순간에 나온 킹 특사의 발언은 역설적으로 묘한 정치적 뉘앙스를 풍겼다.

킹 특사가 실무회담 결렬 소식을 전해 듣고 이 말을 한 건 아니지만, 북한에 대한 쌀 보따리를 쥐고 있는 그가 ‘식량을 지원해줄 테니 우리(미국과 남한)의 말 좀 들어!’라고 조용히 타이르는 듯했다.



北, 뉴욕 채널 동원 식량 요청

“쌀 줄게 핵 포기”… 美-北, 3번째 밀고 당기기

방한한 로버트 킹 미국 국무부 대북인권특사(왼쪽)가 2월 8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 외교통상부 청사에서 위성락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 만나 악수하고 있다.

실제로 ‘동아일보’의 취재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말부터 미국과 북한은 식량 지원을 둘러싼 북-미 간 줄다리기 3라운드를 시작한 상태였다. 북한은 지난해 말부터 뉴욕 채널을 통해 2009년 3월 중단된 대북 식량 지원 재개를 요청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은 이에 대해 국내 대북 지원단체와 정부 등을 상대로 북한의 지난해 식량 생산 상황과 올해 수요 등을 조사한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의 대북 식량 지원의 시작은 15년 전인 199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정치적 목적’으로 북한에 처음으로 식량을 지원했던 미국은 그동안 두 차례나 ‘정치적 이유’로 지원을 중단한 바 있다.

먼저 손을 내민 쪽은 늘 북한이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1990년대 초 소련과 동유럽 사회주의권의 붕괴 이후 1994년 김일성 주석 사망과 1995년 수해 등 자연재해가 겹치자 간부들에게 “가만히 있지 말고 미국에 우는 소리를 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북한 외무성은 ‘큰물피해대책위원회’를 구성해 미국에 손을 내밀었다.

당시 빌 클린턴 행정부는 1996년 국제식량계획(WFP)을 통해 식량 1만9500t을 지원했다. 미국은 이를 통해 북한이 1994년 제네바합의를 제대로 이행할 것으로 기대했다. 실제로 클린턴 행정부는 지원 규모를 1997년 17만7000t에서 1999년 69만5000t으로 늘렸고 2000년 북-미 공동 코뮈니케를 성사시켰다.

그러나 북한은 지원 식량을 교묘하게 전용(轉用)하면서 미국과 국제사회의 인도적 지원 원칙을 무시했다. 미국의 북한 전문가인 마커스 놀랜드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 선임연구원과 스테판 해거드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대 교수는 2006년 저서 ‘북한의 선택’을 통해 북한 지도부가 인도적 지원 식량을 빼돌려 권력층 배급용으로 전용하거나 이를 국제시장에 내다 팔아 사치품을 사는 데 사용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한 미국 내 여론이 악화되자 2001년 출범한 공화당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식량 지원 규모를 2001년 35만t에서 2003년 4만t으로 삭감했다. 미국 의회는 2004년 북한인권법을 통과시키면서 더 높은 분배 투명성을 요구했다. 그러나 북한은 이를 거부하며 2005년 WFP 상주인력 추방 등으로 맞섰고 미국은 2006년분 원조 중단을 결정했다.

그러자 북한은 2006년 11월 1차 핵실험을 강행하며 실력 행사를 한 뒤 북-미 대화 및 6자회담이 재개된 2007년 다시 미국에 손을 벌렸다. 임기 말 북한 관리에 나선 부시 행정부는 6자회담을 통한 전향적인 대화정책과 함께 2008년 WFP를 통한 50만t 원조를 결정했다. 북한도 분배 모니터링 지역을 확대하고 한국어 사용 요원의 확충 등을 약속해 모두 16만9000t을 받았다.

그러나 2008년 말 6자회담이 북핵 검증의정서 채택 실패로 다시 교착상태에 빠지면서 두 번째 파국이 왔다. 북한은 버락 오바마 행정부 출범 직후인 3월 다시 지원단체들을 몰아낸 뒤 4월 장거리로켓을 발사하고, 5월 2차 핵실험을 단행했다.

한국 입장도 충분히 고려할 듯

이제 다시 미국은 북한이 비핵화를 위한 대화에 나서도록 하는 일종의 정치적 대가로 식량 지원을 검토하고 있다. 북한은 ‘미국이 6자회담과 식량 지원을 재개하지 않으면 우라늄 폭탄으로 3차 핵실험을 하겠다’고 위협하고 나선 상태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은 현재 한 손으로는 ‘식량 지원 카드’를 보여주면서 다른 손으로는 균형과 투명성의 원칙이라는 두 가지 다른 원칙을 내들고 북한을 다루려는 듯하다. 킹 특사는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나머지 두 원칙을 이렇게 설명했다.

“(대북 식량 지원의) 두 번째 고려사항은 균형의 원칙이다. 북한으로부터의 수요나 필요성, 인도적 요청과 함께 다른 지역의 수요도 고려해야 한다. 한정된 재원을 균형 있게 배분해야 하기 때문이다. 세 번째로는 투명성의 원칙을 들 수 있다. 어떤 지원을 했을 때 배분 방식이 투명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가장 필요로 하고 취약한 계층에 인도적 지원이 주어지는지를 모니터링해야 한다.”

미국은 동맹국인 한국이 대북 식량 지원에 부정적인 상태라는 점도 충분히 고려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 당국자는 “미국이 대북 식량 지원을 하면 북한은 이를 3대 세습 후계자인 김정은의 외교적 치적으로 선전하며 정치적으로 악용할 소지가 있다”고 우려했다. 남북대화 및 6자회담 재개 여부와 함께 진행되는 남-북-미의 ‘식량 지원 정치’ 3라운드가 어떻게 전개될지에 국제사회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주간동아 2011.02.14 774호 (p20~21)

신석호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 ky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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