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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 이자 지옥에 빠진 돌려막기 인생①

고리대의 늪, 당신도 노리고 있다

사채에 손 댄 30대 직장 여성 한순간에 ‘인생 파산’

  • 손영일 기자 scud2007@donga.com

고리대의 늪, 당신도 노리고 있다

고리대의 늪, 당신도 노리고 있다
“죄송합니다. 고객님의 신용으로는 대출이 어려울 것 같습니다.”

벌써 7번째.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은행을 찾았지만 ‘역시나’였다. 은행은커녕 이제는 저축은행이나 캐피털사에서도 돈을 빌리기가 어려웠다. 지금까지 빌린 돈보다 갚은 돈이 많은데 빚은 줄지 않고 오히려 늘어만 갔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김영미(가명·32) 씨가 그 남자를 만난 것은 2003년 겨울. 잘생긴 얼굴과 듬직한 모습에 한눈에 반했다. 사랑에 빠졌고, 결혼을 약속한 사이로 발전했다. 그로부터 1년 뒤, 남자는 사업을 하겠다며 다니던 직장을 그만뒀다. 그러면서 사업자금을 조금만 보태달라고 했다. 그를 믿었기에 김씨는 한 치의 의심도 하지 않았다. 간호사란 번듯한 직업이 있어서 무난히 은행, 저축은행, 카드사로부터 3000만 원을 빌렸다.

“고마워, 꼭 갚을게.”

연신 고맙다며 자신을 꼭 안아주는 그의 품에서 김씨는 ‘이것이 행복이구나’를 느꼈다. 하지만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는 매번 사업자금으로 쓴다며 돈을 가져갔지만, 애초부터 사업을 할 생각이 없었다. 받은 돈을 생활비며 유흥비로 흥청망청 쓰다 보니 3000만 원이란 돈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은행의 높은 문턱 사금융으로 내몰아

남자는 한두 차례 이자를 갚았지만 뚜렷한 소득원이 없다 보니 이내 연체가 시작됐다. 은행에선 10%대, 저축은행과 카드사에선 20% 후반대의 금리로 돈을 빌렸으나 연체가 시작되자 대폭 뛰었다. 은행 연체이자는 20%대에 육박했으며 저축은행과 카드사는 30%가 훌쩍 넘었다. 매달 갚아야 할 이자만 100만 원이 넘었다. 하지만 남자는 자신은 모르는 일이라며 발뺌하기 시작했다.

“자기 이름으로 돈을 빌린 거잖아.”

그렇게 사랑은 끝났다. 여기저기서 급한 대로 돈을 빌려 갚았지만 역부족이었다. 남은 거라고는 3000만 원의 빚과 배 속 어린 생명뿐이었다. 무책임한 그에게 아이의 존재를 알리고 싶지는 않았다. 대신 그는 신용회복위원회의 문을 두드렸다. 2012년까지 매달 32만 원씩 갚는 것으로 채무조정을 했다. 보증금 500만 원에 월세 25만 원의 단칸방으로 옮겼지만 ‘잘 살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기에 하루하루를 견뎌낼 수 있었다. 작지만 매달 들어오는 월급으로 빚을 갚아나가며 새로운 미래를 꿈꿨던 김씨. 하지만 그의 불행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고리대의 늪, 당신도 노리고 있다

고리사채의 한 종류인 일수는 ‘꺾기(재대출)’를 통해 빚이 몇십 배로 불어난다.

2008년 7월 김씨를 찾는 전화가 왔다.

“김영미 씨죠? A캐피털입니다.”

A캐피털 직원이란 이는 다짜고짜 김씨에게 빚을 빨리 갚아야 한다고 말했다.

“빚이라뇨? 전 A캐피털을 가본 적도 없습니다.”

“OO씨 아시죠? 그분이 저희에게 돈을 빌리면서 김영미 씨를 보증인으로 삼았습니다.”

이제 그에게서 벗어났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끝이 아니었던 것이다. 남자는 사업자금을 쓴다며 돈을 빌려가 허공에 날린 것으로는 부족했는지, 김씨가 직장에 간 사이 본인도 모르게 인감도장과 인감증명서를 가지고 가서 김씨를 보증인으로 세워 A캐피털로부터 1400만 원을 빌렸다.

‘1000만 원만 구할 수 있다면, 지금의 상황을 지킬 수 있을 텐데….’

돈을 구하기 위해 은행과 저축은행을 발이 부르트도록 쫓아다녔다. 그러나 이미 김씨의 신용도는 최하 등급이었다. 은행과 카드, 보험사에서 빌린 돈이 연체가 된 데다 신용회복위원회로부터 채무조정을 받은 탓에 어떤 곳에서도 돈을 빌려주지 않았다.

“제발 살려주세요. 저 이대로 나가면 죽습니다.”

김씨의 애원에도 은행 직원은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싸늘하게 말했다.

“저도 개인적으로는 고객님의 말씀대로 해드리고 싶지만 회사 방침이라 어쩔 수 없습니다.”

A캐피털의 채무독촉은 갈수록 심해졌다. 비록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을 했지만 전화가 걸려올 때면 심장이 멎는 듯했다. 월급통장을 압류하겠다고 하니 더 이상 직장을 다닐 수 없었다. 결국 김씨는 자의 반 타의 반 병원을 떠났다. 아이는 막 돌을 지났을 뿐이었다. 우유며 기저귀며 모든 것이 돈이었다. 하지만 직장도 그만둔 데다 빚 독촉에 시달리니 눈앞이 캄캄했다.

일단 살아야 했다. 혼자면 도망이라도 가겠건만 아이가 눈에 밟혔다. TV 광고로 친숙한 대형 대부업체로부터 돈을 빌려 A캐피털의 빚을 갚았다. 하지만 별다른 소득원이 없는 상황에서 김씨가 할 수 있는 것은 여러 군데에서 돈을 빌려 ‘돌려막기’를 하는 것뿐이었다. B대부업체로부터 빌린 돈이 연체되기 시작하면 이번에는 C대부업체로부터 돈을 빌리는 식이었다. 5군데의 대부업체로부터 돈을 빌려 돌려막기를 했지만 그것도 1년뿐이었다. 악성 채무자로 낙인찍히면서 이제는 대부업체에서마저 돈을 빌리기 어려웠다.

돌려막기 하다 사채까지

고리대의 늪, 당신도 노리고 있다

일단 ‘금융채무 불이행자’로 낙인이 찍히면 제도권 금융에서 돈을 빌리기가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그 결과 다시 고리의 사채업자를 찾는 악순환이 되풀이된다.

한 군데가 아닌 여러 곳에서 빚 독촉을 해오자 사채에까지 손을 댔다. 매일 12만 원씩 갚아 100일 뒤 1200만 원을 갚는 조건으로 무등록 사채업자로부터 1000만 원을 빌렸다. 법정 최고금리를 훌쩍 뛰어넘어 연 이자율만 136.2%에 이르렀다. 그러나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아 돈을 넣을 수 없게 됐다.

“마감날이 됐는데 마감을 안 쳐. 돈 빌릴 때는 좋았지? 이 씨X년, 죽여버린다.”

공갈협박은 예사고, 집에 찾아와 집기를 집어던지며 행패를 부리기 일쑤였다. 또 다른 사채를 끌어왔지만 이자를 갚는 것조차 버거웠다. 분명 원금을 다 갚았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빚은 ‘꺾기(재대출)’를 통해 몇십 배로 불어 있었다. 사채업자는 “신체포기각서를 쓰든지 유흥업소에서 몸을 팔든지 알아서 하라”는 말도 예사로 내뱉었다.

고민 끝에 김씨는 민생연대 상담소를 찾았다. 그 결과 민생연대의 도움을 받아 파산신청을 하고, 법정금리를 초과한 부분에 대해서는 반환청구 민사소송을 제기하기로 했다. 하지만 아직 안심하기엔 이르다. 이미 신용도는 최악이고 마땅히 돈을 빌릴 곳도 없는 상황이니 또다시 고리대의 늪에 빠지는 것은 시간문제일지도 모른다.

김씨의 사례에서 보듯 금융채무 불이행자가 돼 고리대의 늪에 빠지는 것은 한순간이다. 사업이 부도를 맞거나 병원비나 학자금 때문에 급전을 빌렸는데 실직을 하거나 임금이 삭감돼 빌린 돈을 제때 갚지 못하면 순식간에 빚더미에 올라앉는다. 금융채무 불이행자라고 낙인이 찍히는 순간, 사회·경제적 활동에 심각한 제약을 받는다. 직장인은 기본 생계비 120만 원을 제외한 모든 급여가 압류되며, 하루에도 몇 번씩 걸려오는 상환 독촉전화에 전화벨 소리만 울려도 가슴을 쓸어내린다. 신용카드를 만들 수 없는 것은 물론, 신규대출은 소액이라도 거부된다.

그러다 보니 금융채무가 연체되면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기 위해 사금융에서 급전을 빌린다. 보통 네댓 군데 대부업체에서 급전을 빌려 돌려막기로 버텨보지만 얼마 가지 못한다. 설령 채무를 다 상환해도 한번 새겨진 ‘금융채무 불이행자’라는 주홍글씨 탓에 제도권 금융에서 다시 돈을 빌리기란 언감생심. 급한 상황이 닥치면 고리의 사채업자를 찾아갈 수밖에 없는 악순환에 빠진다. 서민은 제도권 금융의 높은 문턱 때문에 살인적인 고리대에 내몰리는데, 이들의 고혈로 금융사와 사채업자의 배만 불리는 모습이 ‘고리대 공화국’ 대한민국의 서글픈 현주소다.

※ 김영미 씨 사례는 민생연대 상담내용을 일부 재구성했습니다.



주간동아 2010.08.16 750호 (p22~24)

손영일 기자 scud200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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