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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CIETY

왜 과학은 ‘1번’을 두고 목소리 키울까

천안함 침몰 원인 놓고 여전한 의혹 제기 … ‘과학적 답변’으로 소모적 논쟁 끝내야

  • 강양구 프레시안 기자 tyio@pressian.com

왜 과학은 ‘1번’을 두고 목소리 키울까

왜 과학은 ‘1번’을 두고  목소리 키울까

합동조사단이 외부 폭발설의 근거로 제시한 어뢰추진체의 ‘1번’ 글씨.

천안함은 과연 북한이 쏜 어뢰 탓에 침몰했을까? 5월 20일 민·군 합동조사단이 이런 결론을 발표한 뒤 두 달 넘도록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정치 논리가 아닌 과학적 계산과 논리, 수치로 무장한 과학자들이 이 논쟁에 뛰어들면서 합동조사단의 결론에 의혹을 제기하는 사람을 모두 음모론에 빠진 ‘의심증 환자’로 치부하기도 쉽지 않게 됐다. 이들의 문제 제기에 합동조사단이 명쾌한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초 천안함 침몰의 원인을 놓고 합동조사단은 세 가지 ‘과학적 증거’를 내놓았다. ① 천안함은 외부 폭발로 파괴됐다. ② 외부 폭발은 ‘1번’이라는 글씨가 쓰인 어뢰의 폭발이었다. ③ ‘1번’이라고 쓰인 어뢰는 북한 어뢰다. 이 세 가지 중 하나라도 부정된다면 천안함 침몰의 원인은 다시 오리무중이 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합동조사단이 내놓은 증거는 의심의 여지가 없는 것일까?

합동조사단은 천안함과 1번 어뢰에서 발견된 이른바 ‘흡착 물질’을 외부 폭발의 증거로 내놓았다. 합동조사단은 이 흡착 물질을 놓고 “폭약 250㎏이 폭발하면서 나타난 ‘비결정질’ 알루미늄 산화물”이라고 주장했다. 비결정질 알루미늄 산화물이 천안함과 어뢰에서 동시에 발견된 것이야말로 ‘결정적 증거’라는 말이다. 흡착 물질은 앞에서 언급한 ①과 ②를 연결하는 중요한 고리다.

흡착물질 진짜 정체는 무엇?

그러나 이 증거에 대해 곧바로 반박이 들어왔다. 미국 버지니아대학 이승헌 교수(물리학)는 ‘폭약 250㎏이 폭발하면 과연 비결정질 알루미늄 산화물이 나오는가?’라는 의문에서 출발했다. 만약 다른 폭발에서 비결정질 알루미늄 산화물이 나오지 않는다면, 이 흡착 물질은 결코 폭발의 증거가 될 수 없다. 실제 이런 일이 반복해서 나타났다. 우선 합동조사단의 폭발실험에서 나타난 흡착 물질은 ‘비결정질’이 아닌 ‘결정질’ 알루미늄 산화물로 밝혀졌다. 이 교수가 직접 한 실험에서도 녹는점보다 훨씬 높은 온도로 알루미늄을 가열한 뒤 이를 급랭시켰더니 ‘결정질’ 알루미늄 산화물이 나온 것이 확인됐다. 비결정질 알루미늄 산화물이 폭발의 산물인지를 확신하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이런 반론에 대해 합동조사단은 ‘예외 상태’를 답으로 내놓았다. 자신들이 했던 폭발실험이나 이 교수의 실험은 폭약 250㎏이 바닷물에서 터지는 고온, 고압 상태를 재연할 수 없기 때문에 같은 물질(비결정질 알루미늄 산화물)이 나오지 않았다는 논리다. 그들은 “이것은 세계 최초로 발견된 현상”으로 “산에서 고래를 만난 격”이라고 설명했다.

다음은 캐나다 매니토바 대학 양판석 박사(지질과학과)가 흡착 물질을 둘러싼 논란에 뛰어들었다. 각종 광물 분석에 전문가인 양 박사는 합동조사단이 “흡착 물질이 비결정질 알루미늄 산화물임을 보여주는 증거”로 내놓은 에너지 분광(EDS·Energy Dispersive Spectroscopy) 분석 결과에 의문을 제기했다. EDS 분석은 시료에 전자선을 쏴 해당 물질에 들어 있는 원자와 그것의 상대적인 구성 비율을 확인하는 실험 방법이다. 양 박사는 흡착 물질의 EDS 분석 결과가 통상적으로 알려진 알루미늄 산화물의 그것과 눈에 띄게 다른 데 의문을 품었다. 알루미늄 산화물과 비교했을 때 흡착 물질은 산소(O) 원자를 지나치게 많이 포함하고 있었다.

양 박사의 문제 제기에 합동조사단은 “흡착 물질에 수분(물·H2O)이 40% 가까이 된다는 사실을 간과했다”는 답변을 내놓았다. 흡착 물질의 분석 결과에서 산소가 많아 보이는 것은 산소 원자를 포함한 물이 알루미늄 산화물에 묻어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왜 과학은 ‘1번’을 두고  목소리 키울까

두 동강이 난 천안함. 일단의 과학자들은 어뢰에 의한 폭발설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그러나 이 답변은 곧바로 과학계의 웃음거리가 됐다. 왜냐하면 EDS 분석 때 ‘진공’ 상태에서 시료를 금으로 코팅하는 과정을 거치기 때문이다. 그러면 진공 상태에선 시료에 묻은 물의 대부분이 증발하고, 일부 남아 있는 물도 전자선을 쏠 때 발생하는 열로 증발할 수밖에 없다. 즉, 합동조사단의 설명과 다르게 흡착 물질의 분석 결과에서 보이는 산소 원자는 그것을 구성하는 내부 물질이었던 셈이다.

과연 흡착 물질의 정체는 무엇일까? 양 박사는 “산소 원자의 높은 비율을 염두에 둘 때, 흡착 물질은 알루미늄 산화물(Al2O3)이 아니라 ‘알루미늄 수산화물(Al(OH)3)’”이라고 주장한다. 흡착 물질이 알루미늄 산화물이 아니라 알루미늄 수산화물이라면 보통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알루미늄 수산화물은 꼭 폭발이 아니더라도 물속에서 알루미늄이 부식되면 나타날 수 있는 물질이기 때문이다. 즉, 양 박사의 주장대로라면 천안함과 어뢰에서 발견된 흡착 물질은 어뢰 폭발의 증거가 아니라 물속에서 알루미늄이 자연 부식돼 나타난 것에 불과하다. 현재까지 합동조사단은 이에 대한 명확한 반박을 하지 못하고 있다.

이렇게 ①과 ②의 연결고리가 끊어지는 상황에서 ②와 ③의 연결고리인 어뢰에 쓰인 ‘1번’ 표기의 정체도 도마에 올랐다. 합동조사단은 “어뢰에 쓰인 ‘1번’ 표기가 북한산 어뢰의 표기 방법과 일치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교수와 서재정 존스홉킨스대학 교수(정치학, 학부전공은 물리학)는 “‘1번’이라는 한글 표기는 ‘북한산 어뢰의 표기 방법’과 일치할 뿐 아니라, 한국의 무수한 다른 표기 방법과도 일치한다”고 반박한다. 더구나 ‘1번’을 쓰는 데 사용한 잉크는 한국 기업이 특허를 낸 제품이다.

“잉크도 타는 폭발 vs 그곳은 영하 온도”

‘1번’ 글씨를 둘러싼 또 다른 의문도 제기됐다. 합동조사단이 공개한 어뢰는 외부가 심하게 부식됐다. 부식을 막고자 어뢰에 칠해둔 페인트가 폭발로 탄 것이다. 이 교수는 “페인트를 태우려면 어뢰 표면의 온도가 최소한 325℃ 이상으로 올라야 하는데, 이 온도에서는 잉크도 타야 한다”고 지적했다. 다른 부분이 탔으면 ‘1번’ 표기도 탔어야 한다는 논리다.

‘1번’의 조작 가능성을 제기한 이 교수의 지적에 최근 한국과학기술연구원(KAIST) 송태호 교수(기계공학과)가 반론을 폈다. 송 교수는 몇 가지 가정을 전제로 “폭발 후 ‘1번’ 글씨가 적힌 어뢰 뒷부분의 온도는 단 0.1℃도 오르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런 그의 주장을 놓고 현재 과학계는 갑론을박이 진행 중이다. 이 교수는 “잘못된 가정이 빚은 엉뚱한 결론”이라며 “송 교수의 가정대로 계산을 해보면 어뢰가 폭발하고 나서 그곳의 온도가 영하로 떨어진다”고 꼬집었다. 또 다른 과학자도 “송 교수의 가정대로라면 ‘1번’ 글씨가 안 탄 이유는 설명되지만, 버블 효과로 생기는 물기둥이 고작 2m뿐이어서 천안함이 두 동강 난 것은 설명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더군다나 송 교수는 어뢰 잔존물 중 1번 글씨가 쓰인 훨씬 더 뒷부분의 부식 상태, 즉 페인트가 타서 없어진 현상이나 어뢰 프로펠러에 알루미늄이 녹아서(알루미늄의 녹는점 660℃) 흡착된 이유를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어쨌든 합동조사단은 여전히 ‘1번’ 글씨를 북한이 썼다는 사실을 입증하지 못하고 있다. ②와 ③의 연결고리도 합동조사단의 주장만 있고 입증된 것은 없다.

이처럼 합동조사단이 내놓은 ‘과학적 증거’ 모두가 과학계의 정면도전을 받는 상황에서 정부는 ‘과학적 답변’을 내놓지 못한 채 천안함 침몰의 원인을 ‘북한이 쏜 어뢰’로 확정했다. 하지만 과학계는 “북한이 실제로 어뢰를 쏴 천안함이 침몰했다고 해도, 이런 억지 논리로는 국제사회의 웃음거리가 될 뿐 논쟁을 종식할 수 없다”는 분위기다. 만약 천안함 사고원인을 둘러싼 논쟁이 이대로 마무리된다면, 우리 정부는 두고두고 과학계의 쓴소리를 들으며 뒷감당을 해야 하는 처지에 놓일 것이다.



주간동아 2010.08.16 750호 (p50~51)

강양구 프레시안 기자 tyio@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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