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50

2010.08.16

“우린 로봇이었고 죽어났다”

대우조선해양 하청업체들 “매년 7% 단가 인하로 줄도산 … 그들만의 이익 잔치”

  • 배수강 기자 bsk@donga.com

    입력2010-08-16 13:5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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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린 로봇이었고 죽어났다”

    대우조선해양의 하청업체 대표였던 김상권, 김종승(왼쪽부터) 씨가 법원의 부동산 압류 판결서와 빚 변재 최고장 등을 들고 서울 다동 대우조선해양 본사 앞에 섰다. 그들은 이명박 정부의 ‘대·중소기업 상생’ 정책이 실효를 거두려면 하청업체 문제부터 살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검찰이 최근 대우조선해양㈜의 협력사인 임천공업에 압수수색을 실시하면서 대우조선해양 남상태 사장의 연임 로비 의혹에도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검찰은 “지금은 임천공업의 횡령 및 비자금 조성 여부가 수사 대상일 뿐”이라고 선을 그었지만, 임천공업의 비자금 조성 과정이나 횡령자금의 용처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남 사장의 연임 로비에 대한 수사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임천공업이 2008년을 기점으로 매출액과 순이익이 크게 늘며 급성장했다는 것. 이 회사 이모 대표가 조성한 비자금의 일부가 남 사장에게 건네진 것으로 검찰은 보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같은 기간 대우조선해양의 여러 하청업체는 계속되는 영업적자로 폐업을 고려하고 있었다. 전직 대우조선해양 협력업체 대표들의 사례를 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1조 원대 최고의 영업이익

    김종승(54), 김상권(53) 씨는 지난해 이맘때까지 대우조선해양의 사내협력사(하청업체·하도급법 규정에 의한 수급사업자) 대표였다. 김종승 씨는 선박 블록조립 하청업체인 풍림산업 대표로 300여 명의 직원을, 김상권 씨는 영신산업 대표로 150여 명의 직원을 둔 어엿한 기업인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물려받은 고향의 전답과 거주하는 아파트까지 모두 압류당하고 빚만 20여억 원이 남은 신용불량자가 됐다.

    “2009년 한 해 동안 생산 부문 13개 협력업체 중 7개 업체가 문을 닫거나 대표가 바뀌었습니다. 이 중 4개 업체가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를 했죠. 2006년부터 실제 하청업체가 배를 만들기 위해 투입한 비용의 60~70% 대금만 받았으니 회사 문을 닫을 수밖에요. 빚 독촉에 시달리기도 하지만 억울해서 신고를 했습니다.”



    법원의 부동산 가압류 결정서와 최고장 뭉치를 들여다보는 두 김씨는 허탈한 듯 선웃음을 쳤다.

    두 사람을 포함해 4명의 대우조선해양 사내하청업체 대표는 지난해 9월경 회사 문을 닫고,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에 대우조선해양이 ‘계약 체결을 위반하고 하도급 대금을 부당하게 낮춰 지급했다’며 신고를 했다. 지난 6월에는 국민권익위원회에 진정을 냈다.

    대우조선해양은 2007년 3067억여 원, 2008년 1조315억여 원, 2009년 6845억여 원이라는 사상 최대 영업이익을 남겼다. 아이러니하게도 하청업체들은 이 기간에 정반대로 사상 최악의 영업적자를 냈다.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대우조선해양에서 근무하던 두 전직 대표는 각각 1997년과 2000년 회사의 제안으로 사내협력업체를 설립했다. 그럭저럭 회사를 유지했지만, 2005년부터 급격히 회사 사정이 어려워졌다고 한다. 가장 큰 이유는 하도급 대금 문제. 김상권 씨의 설명이다.

    “‘생산성 향상’이라는 명목으로 2006년부터 대우조선해양 측에서 일방적으로 상응시수를 매년 7~8% 인하했습니다. 물가와 임금은 오르는데 해마다 기성금(하도급 대금)은 7~8% 적게 받으니 인건비를 감당할 수가 없었죠. 물량을 주는 대로 직원을 투입했지만 하도급 대금은 직원 월급에도 미치지 못했습니다. 이 기간 대우조선해양은 사상 초유의 영업이익을 냈습니다. 하청업체만 죽어났죠. 이명박 대통령이 최근 ‘대·중소기업 상생’을 강조한 이유가 다 있는 겁니다.”

    ‘주간동아’가 입수한 공정위 신고서와 업계에 따르면 이들 하청업체가 일을 하고 받는 하도급 대금은 ‘기성시수(상응시수)×기성단가’로 결정된다. 상응시수는 실제 작업에 투입된 작업량이 아니라 원청업체(대우조선해양)가 예상해 지정하는 ‘목표시수’를 말한다. 따라서 실제 작업에 투입된 시수와 차이가 있게 마련이지만, 대우조선해양은 일률적으로 상응시수를 낮춰 그만큼 낮은 대금을 지급했다.

    2009년 기준 실투입시수에 대한 상응시수 비율(업계에선 ‘능률’이라고 표현한다)은 60~70%까지 떨어졌다. 능률은 작업 전 목표시수(상응시수)와 실제로 일한 시수가 같아야(100%) 최적. 작업 환경과 공정이 하청업체에 비해 쉬운 직영업체들의 능률도 70~80% 선이었음을 감안하면, 대우조선해양이 당초 예상한 상응시수는 실투입시수에 비해 30%가량 적었다는 결과가 나온다.

    그나마 2004년까지는 직영사의 능률이 100%에 미치지 못할 경우 상응시수를 잘못 잡은 것으로 보고 협력업체에 기성시수를 일정 보정해주는 ‘보전금(F1)’ 제도가 있었지만, 2004년 중순 이후 회사 측이 일방적으로 폐지하면서 하청업체의 어려움은 가중됐다. 대우조선해양 측이 작업 전 목표시수를 낮게 잡아 초과 비용이 들었더라도 초과 비용을 보전받지 못하게 된 것이다.

    단체로 결재 도장 찍어 항의 힘들어

    “말이 기업 대표이지, 모든 인력 배치와 공정은 ‘새벽시장’이라 부르는 아침 회의에서 본사 관리자가 직접 협력업체 조장에게 작업지시를 합니다. 우리(하청업체 대표)는 작업지시에 따라 필요한 직원을 대고 하도급 대금을 받아 인건비를 주는 로봇이었습니다.”

    두 회사의 손익계산서를 보면, 실제 대우조선해양의 미정산시수(실투입시수-상응시수)로 인한 손실금액은 영신산업이 55억여 원(2006년 7월~2009년 7월), 풍림산업이 94억여 원(2007년 5월~2009년 8월)이었다.

    “평일 연장근무를 하거나 휴일근무를 해야 하는 돌관 작업도 상당 부분 하청업체가 떠맡습니다. 하지만 대우조선해양 측은 실제 투입된 시수대로 하지 않고 임의로 낮게 정산을 했고, 결국 하청업체 대표들은 돈을 빌려 직원 수당을 줘야 했습니다.”

    이러한 하도급 대금 인하에 따른 문제는 대우조선해양 노조도 여러 차례 지적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음은 노조 소식지 ‘새벽함성’(2009년 9월 24일자)과 ‘실노추’(2009년 9월 17일자)에 실린 내용의 일부.

    “몇 년 전 대우조선해양이 적자로 전환할 때부터 협력사 단가 조정을 통해 생산성을 이뤄왔고, 그 결과 매년 5~7% 협력사 시수 절감을 통해 흑자 전환을 했지만 협력사는 열심히 일하고도 운영이 힘들어 계약을 해지해야 하는 것이 대우조선해양 협력사의 실정이다.”

    그렇다면 하청업체 대표들은 왜 이의 제기를 하지 못했을까.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이하 하도급법)에 따르면 하도급 대금은 물량과 납기, 품질, 노무비 등을 고려해 갑(甲·대우조선해양)과 을(乙·하청업체)이 협의해 정해야 한다. 작업물량에 대한 단가와 시수도 상호 확인하고 별도 외주작업계약서를 작성해야 한다. 부당하게 하도급 대금을 낮췄다면 협의 과정에서 이의를 제기할 수 있었을 터. 하지만 이들 하청업체는 ‘들러리’였다고 한다.

    “원칙대로라면 작업 시작 전에 외주작업계약서를 작성하면서 작업량과 시수에 대해 협의한 뒤 일을 해야 하지만 실제는 다릅니다. 계약서는 작업 전에 작성해야 하지만, 매달 초 그 전월에 이뤄진 공사비를 정산하면서 추후 작성했고, 계약 체결일자도 전전월 말일로 거짓 기재했죠. 각 협력사 총무를 한데 모아 단체로 결재 도장을 찍는 상황에서 상응시수를 확인하거나 이의를 제기하려 하면 ‘일할 업체 많다’는 ‘암시적’인 태도뿐이었습니다.”

    “우린 로봇이었고 죽어났다”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야경.

    이러한 관행을 참다못한 대우조선해양 25개 협력업체는 2008년 공정위에 신고했고, 공정위는 지난 3월 23일 “정당한 사유 없이 서면(계약서)을 지연 교부해선 안 된다”며 시정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이후에도 이런 관행은 지속됐다는 게 이들 하청업체의 설명이다.

    여기에 2006년부터 목표 보유인력 수를 정해 일방적으로 통보하고 “인원 충원 지시에 느슨하게 대응하는 협력사 대표에게는 상응하는 조치를 취하겠다”는 e메일을 보내 하청업체들의 경영난을 부채질했다.

    “보유인력 수를 강요하면서 비용에 대해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았습니다. 하도급 대금을 매년 낮추면 각종 제세금과 연금 등은 어떻게 냅니까.”

    ‘방만 경영’ 업체에 다시 하청 맡겨?

    이에 대우조선해양 측은 “다른 협력업체들은 모두 흑자를 냈는데 (공정위에 신고한) 4개 업체는 ‘방만 경영’으로 적자를 냈다. 현재 4개 업체 인력을 승계한 회사는 흑자가 났다. 경영을 잘못한 부분을 회사가 보전해줄 수는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하지만 현재 대우조선해양 하청업체를 운영하는 A씨의 말은 달랐다. 그는 두 김씨가 낸 공정위 신고 내용은 ‘사실’이라고 확인해줬지만, ‘갑’과 ‘을’ 관계를 이해해달라며 세 차례나 익명 인터뷰를 요구했다. 다음은 A씨의 설명.

    “사내 협력업체 110여 개 중 용접, 탑재, 선각, 도장 등 배 생산업체는 대부분 적자에 시달리고 있다. 나도 도저히 견딜 수 없어 조만간 폐업을 생각한다. 이런 업체가 70%라고 보면 된다. 하청업체가 견적서를 올리면 자기들(대우조선해양) 견적서를 내밀며 서명하라고 한다. 4년 이상 생산성 향상이란 명목으로 연 7%씩 대금을 깎아왔다. 최첨단 장비가 지급돼 새로운 공정이 진행되고 인력을 줄여야 생산성이 향상될 것 아닌가. 그런 것 없이 일방적으로 줄이니 우리 업주들은 살아가기 어렵다. 직원들도 일은 적게 하려 하고 임금만 올려달라 한다. 4대 보험 등 제세금 신고는 강화됐다. 그나마 여건이 좋은 30%는 차량이나 장비, 자재를 지원하는 외부 지원업체다.”

    이와 함께 대우조선해양 측은 지난 6월 공정위 조사가 본격화할 즈음, 공정위에 신고한 4개 업체 대표에게 자회사의 하청업체를 다시 맡을 것을 제의한 것으로 확인됐다.

    대우조선해양 측은 “배려 차원”이라고 했지만, ‘방만 경영’을 한 업체 대표에게 다시 하청업체를 맡아달라고 제의했다는 것은 스스로 모순을 자인한 꼴이다. 2개 업체 대표는 다시 하청업체를 맡았고, 두 김씨는 제의를 거절했다.

    이에 대해 공정위 조병노 사무관은 “최근 대통령의 발언과 무관하게 하도급법이라는 법 테두리 안에서 판단하고 있다. 양측 모두 대리인(변호사)을 내세운 만큼 충분히 조사해 법리적으로 따져볼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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