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47

2010.07.26

생각하는 여행자, 떠밀리는 관광객

인간은 여행과 새로운 것 갈망 … 교통 발달로 여행 대중화 시작

  • 안병직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 ahnbj@snu.ac.kr

    입력2010-07-26 16: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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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각하는 여행자, 떠밀리는 관광객

    그리스 델포이 마르마리아 지역의 원형 신전 톨로스.

    휴가철을 맞아 국내외 여행이 절정에 이르고 있다. 특히 올해는 경기 회복세와 더불어 해외여행객이 기록적으로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여름휴가가 시작된 7월 중순 이래 인천공항 출국자가 하루 10만여 명에 이르고, 올여름 전체적으로 약 200만 명이 해외여행을 다녀올 것으로 추산된다.

    목적적 여행에서 즐기는 여행으로

    여행은 인간의 본능이자, 오래된 활동 가운데 하나다. 여행의 역사는 서양의 경우 고대 그리스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고대 그리스의 여행도 오늘날처럼 각양각색이었다. 고대 그리스인은 올림피아 경기에 참여하고자 여행길에 올랐고, 신탁을 듣기 위해 델포이로 여행을 떠났다. 고대 그리스의 상인들은 멀리 지중해와 소아시아 지역까지 배를 타고 장삿길에 나섰다. 낯선 곳에 대한 동경과 미지의 것에 대한 호기심에 이끌린 탐사여행도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기원전 5세기 헤로도토스의 여행이다. 그의 여행 경로는 오늘날 상상하기 쉽지 않을 정도로 광범위했다. 동쪽으로는 유프라테스 강을 거쳐 바빌론, 서쪽으로는 이탈리아와 시칠리아, 북쪽으로는 우크라이나, 남쪽으로는 이집트까지 이르렀다.

    고대 로마인도 여행에 적극적이었다. ‘인간이란 본래 여행을 즐기고 새로운 것을 갈망하는 존재’라고 규정한 이도 로마의 문인 플리니우스였다. 아피아 가도(街道)처럼 돌로 포장되거나 자갈이 깔린 길이 북해에서 사하라까지, 대서양에서 도나우와 메소포타미아까지 이어지며 약 20만km에 달했던 사실은 활발한 로마시대 사람들의 왕래를 짐작게 한다. 고대 소아시아 출신 한 상인의 묘비 기록에 따르면, 그는 사업차 이탈리아를 72번이나 방문했다. 사업이나 장사 외에도 고대 로마인들의 여행 목적은 다양했다. 로마 귀족들은 여름이면 피서를 위해 남동쪽 알바니아 산맥이나 나폴리 만으로 향했다. 또 목욕을 즐긴 로마인들은 유황과 철분이 함유된 온천을 찾았다. 휴양과 아울러 낯선 문물을 익히고 식견을 넓히고자 여행을 떠나는 이도 있었다. 그들이 선호한 여행지는 아테네, 코린트, 스파르타 등 기념비적 건축물이 있는 그리스였으나, 이집트 파라오 신전에 남아 있는 로마인의 낙서가 보여주듯 그보다 먼 거리의 여행도 마다하지 않았다.

    중세에는 몇 가지 새로운 유형의 여행이 나타났다. 그중 하나가 순회 통치에 나선 군주들의 여행이다. 독일, 프랑스, 영국, 스페인 등 중세 유럽의 국왕들은 수많은 수행원을 거느리고 주교나 세속 봉신(封臣)의 성(城)과 도시를 방문해 일정 기간 머물며 왕국을 통치했다. 국왕의 순회여행은 중세의 특징적 현상이었으나, 중세 유동인구의 대다수는 국왕처럼 고귀한 신분이 아니었다. 그들은 혼자 또는 무리 지어 궁정과 마을을 떠돌아다닌 음유시인, 곡예사, 광대들이었거나, 장인이 되기 위한 수련 과정으로 편력 여행길에 올랐던 수공업의 직공들이었다.



    그러나 중세 유럽에서 가장 특징적인 여행은 순례여행이었다. 유럽 도처에서 수천 명의 성직자와 평신도가 예루살렘을 비롯한 기독교 성지를 향해 속죄를 위한 순례여행을 떠났다. 그들은 원거리 여행의 여독, 역병, 이국의 기후와 풍토병 등으로 고초를 겪고 때로는 목숨을 잃었지만 순례여행을 일생의 소원으로 동경했다.

    중세에서 근대로의 이행기였던 르네상스는 여행에도 큰 변화를 가져왔다. 르네상스의 본질을 세속화로 보았던 역사가 부르크하르트가 르네상스 정신으로 설파한 ‘자연과 인간의 발견’은 여행에 가장 잘 나타났다. 종래 사람들은 정치, 사업, 순례 등 특별한 목적이나 불가피한 이유로 여행했으나 이제는 더 이상 그렇지 않았다. 특히 종교적 믿음과 성찰을 위한 방편으로서 여행의 의미는 사라졌다. 사람들은 여행 자체를 위해 떠나기 시작했고,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보다 그 과정에 더 의미를 뒀다.

    생각하는 여행자, 떠밀리는 관광객

    1 아프리카 남부 나미비아의 트럭 여행자들. 2 1904년 조랑말을 타고 한국 여행에 나선 독일 부인.

    특히 여행에서 풍경을 감상하고 자연의 아름다움을 즐기려는 태도가 나타났다. 14세기 이탈리아 인문주의자 페트라르카는 프로방스의 방투 산을 등정했는데 자연을 감상하려고 험한 산에 오르는 것은 전대미문의 현상이었다. 15세기 이후 르네상스가 북유럽에 전파되면서 여행은 또한 교양을 쌓는 독특한 방식이 됐다. 유럽의 학자나 예술가들은 상호교류를 위해 이탈리아, 프랑스, 네덜란드 등으로 여행을 떠났다.

    레저여행의 효시 ‘그랑 투르’

    르네상스 시기에 나타난 여행의 근대적 성격, 즉 여행 자체가 목적이고 여행에서 즐거움을 추구하는 현상은 16세기 영국에서 유래한 ‘그랑 투르’에서 더욱 분명해졌다. 그랑 투르는 귀족가문 출신의 젊은이들이 시종을 거느리고 몇 달 또는 몇 년간 유럽 여러 지역을 주유(周遊)하는 여행이었다. ‘세상은 위대한 책’이라는 말은 이 여행에 특히 잘 어울렸다. 즉 그랑 투르는 대학을 마치고 직업 활동을 시작하기 전에 행하는 일종의 통과의례로, 정규교육을 보완할 수 있도록 세상을 경험하는 기회였다. 외국의 문물과 풍속을 익히는 교육 목적이 일차적이었지만, 미지 세계에 대해 호기심이 강한 젊은이들에게는 여행 자체가 즐거움이었다.

    사실 그랑 투르는 근대적 레저여행의 효시였다. 18세기 후반 그랑 투르가 유럽 상류층에 일반화되면서 많은 젊은이가 무리를 지어 유람에 나서자, 이들을 위해 여행안내서가 등장했고 교통편을 비롯해 여행 편의를 제공하는 일을 생업으로 삼는 사람이 나타났다. 그랑 투르와 더불어 여행이 하나의 사업이 됐다는 사실은 전통적 ‘여행(travel)’이 근대적 ‘대중관광 여행(tourism)’으로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19세기에는 본질적으로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여행 패턴으로서 ‘대중관광 여행’이 정착했다. 대중관광 시대의 전제조건을 만든 것은 무엇보다 교통혁명을 가져온 철도였다. 철도는 ‘여행의 민주화’를 가능하게 했다. 많은 사람을 한꺼번에 빨리, 저렴한 비용으로 운송할 수 있는 철도의 등장은 지금껏 부유한 소수의 전유물이었던 장거리 레저여행의 기회를 대중에게 제공했다.

    교통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대중관광 시대를 여는 데 중요한 구실을 한 것은 대중을 상대로 관광여행을 조직한 여행사들이었다. 1840년대 초 영국에서 토머스 쿡이 최초로 여행사를 설립해 단체여행을 기획·조직한 데 이어 미국, 네덜란드, 독일 등에서 여행사가 탄생했다. 열차를 이용한 운송, 숙박, 관광을 묶어 패키지여행을 제공했던 이들 여행사의 등장은 여행의 상업화 현상을 촉진했다.

    19세기 대중관광 시대의 도래를 보여주는 또 하나의 현상은 여행안내서였다. 종래의 안내서는 주관적인 여행 기록의 성격이 강했으나 이제 객관적이고 정확한 정보를 담은 책이 등장한 것이다. 최초의 근대적 여행안내서는 영국과 독일에서 유래했다. 1830년대 후반 런던의 출판업자 존 머리와 독일 코블렌츠의 서적상인 칼 베데커가 붉은색 장정의 포켓사이즈 안내서를 출간했는데, 곧 수백만 명의 여행객이 필수품으로 휴대할 만큼 유명해졌다.

    대중관광 여행은 오늘날 하나의 상품이 된 여행의 본질을 보여준다. 여행을 ‘구매’하는 오늘날의 ‘관광객’은 전통적인 ‘여행자’와 구분된다. 그는 여행에서 독립성을 상실했고, 그가 여행에서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사전에 기대하도록 허용된 것뿐이다. 무엇보다 그는 되도록 적은 비용으로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곧장 여행지에 가고자 한다. 이 점에서 그는 이제 더 이상 ‘여행’하지 않고 단지 ‘도착’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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