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35

2010.05.03

서울의 한옥 속으로 공간이동

서도호의 ‘Reflection’

  • 김지은 MBC 아나운서·‘예술가의 방’ 저자 artattack1@hanmail.net

    입력2010-05-03 11: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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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의 한옥 속으로 공간이동

    서도호, ‘Reflection’, 2004 nylon and stainless steel tube dimensions variable Edition of 2 Installation view, Lehmann Maupin Gallery, New York, 2007

    뉴욕 유학시절, 학교 수업은 서양미술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었어요. 그래도 일본, 중국, 인도 미술 수업은 따로 몇 시간 마련돼 있었는데, 한국 미술에 관해서는 그마저도 없었죠. 그런 상황에서 교수와 학생들이 큰 관심을 보이며 정확하게 이름까지 발음하는 한국인 작가가 있었으니 ‘Doho Suh’, 즉 서도호였습니다.

    맨해튼 보우어리(Bowery)에 두 번째 공간을 연 리먼모핀 갤러리(Lehmman Maupin Gallery)가 오픈 기념으로 서도호 작가를 초대했는데요. 친구들과 우르르 몰려가 그의 작품 ‘Reflection’을 보는 순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탄성을 쏟아냈습니다. 2층 높이의 전시 공간에 그는 자신이 서울에서 살던 한옥의 중문을 속이 비치는 얇은 사(絲)로 재현한 뒤 위, 아래로 연결해 마치 맑은 연못에 비친 듯 설치했습니다. 1층 공간에서 만져볼 수 있을 만큼 가까이 가서 보는 부분은 거꾸로 매달린 문인데요. 2층 계단에 올라가면 문은 똑바로 설치돼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멀리서만 바라볼 수 있습니다. 두 문을 가르는 투명한 수면 같은 막을 통해 2층 관객들은 1층 관객들이 섬세하게 재현된 문의 각 부분을 관찰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집을 떠난 뒤 한 번도 찾은 일 없다 하더라도 우리 기억 속엔 늘 어린 시절 까치발 들어 키를 쟀던 눈금이 기둥에 그려진 옛날 집이 머물러 있죠. 수몰지역 주민들이 더 이상 존재하지도 않는 물에 잠긴 집을 생생히 기억하듯, 집이라는 공간은 이제 물리적 건축물이 아닌 인간의 무의식에 견고하게 지어진 심리적 공간은 아닐는지요. 서도호 작가가 재현한 서울의 집 역시 자신과 늘 함께하는, 즉 이미 작가의 몸이 된 육화된 공간이 아닐까요.

    작가의 부모는 1970년대, 19세기 순조대왕이 비원에 만든 연경당의 사랑채를 본떠 집을 지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연경당이 당시 선비, 즉 민간인의 집을 본떠 지었다는 거죠. 비현실적인 시공간이 중첩된 한옥의 낮은 문을 통과하면서 작가는 현재라는 또 다른 시공간으로 이동합니다. 작은 문 하나를 통과하면 순식간에 세상이 뒤바뀝니다. 옛 한옥은 안채, 사랑채, 행랑채 등을 연결하는 중문의 높이를 어른 키보다 조금 낮게 만들었다지요? 고개를 숙이면 자연스레 앞만 향하던 시선이 자신을 향하게 됩니다. 세계와 자신을 동시에 보는 반개(半開)한 눈을 위해서죠. 자기 성찰이 이뤄지는 순간은 출발지와 목적지처럼 머무는 공간이 아닌, 이처럼 이동하는 공간에 있습니다. 안도 밖도, 그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은 공간. 그러나 두 세계를 연결해주는 공간. 어쩌면 우리 인생도 이런 찰나적 이동의 공간은 아닐까요?

    그의 작품을 보면 다양한 시공간의 중첩을 투명하게 재현한 수면 위를 한 마리 물고기가 돼 헤엄치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처럼 서도호 작가는 귀가 닳도록 들어 이제는 지루해진 ‘글로벌 유목주의’라는 현상을 지극히 개인적인 언어로 아름답게 형상화해, 보는 이들로 하여금 스스로의 ‘집’을 꺼내도록 하는 데 성공합니다.



    저는 이제 제가 참 좋아하는 서도호 작가에 대한 글을 마지막으로 작별인사를 할까 합니다. 빛 안 드는 맨해튼의 작은 스튜디오에서 시작한 ‘아트 앤 더 시티’ 덕분에 저는 세계 곳곳의 작가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영감이 안 떠오른다”며 머리를 쥐어뜯다가도 결국 마감을 해내는 저를 보며 혀를 내두르기도 했습니다. 언제나 아름답게 지면을 꾸며준 ‘주간동아’와, ‘세상을 보는 또 다른 창’인 미술 이야기를 글쓴이보다 더 열성적으로 읽어준 독자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See you very s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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