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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 2009 BEST SELLER 07 영화·연극·뮤지컬

1천만명 흥행 쓰나미 덮친 ‘해운대’

연극 ‘로미오 & 줄리엣…’ 색다른 재미, 뮤지컬에선 ‘오페라의 유령’ ‘2009 점프’ 인기

  • 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1천만명 흥행 쓰나미 덮친 ‘해운대’

1천만명 흥행 쓰나미 덮친 ‘해운대’

1. 2009 흥행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2. 1131만 관객을 동원해 한국영화 흥행순위 4위에 오른 ‘해운대’. 3. 830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 ‘국가대표’.

쓰나미(지진 해일)를 소재로 올여름 극장가를 강타한 영화 ‘해운대’가 2009년 최고 흥행작의 자리를 굳혔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영화진흥위원회에서 집계한 2009년 영화 흥행실적 자료(1월1일~10월31일)에 따르면, 윤제균 감독의 ‘해운대’가 1131만1981명의 관객을 동원해 국내외 영화를 망라한 전체 흥행 순위에서 독보적 1위를 차지했다. 역대 한국 영화로는 ‘괴물’(1301만명), ‘왕의 남자’(1230만명), ‘태극기를 휘날리며’(1174만명)에 이어 흥행 순위 4위에 해당하는 기록. 더욱이 7월22일 개봉 후 단 3개월 만에 달성한 수치다. 또 한 편의 흥행작인 ‘국가대표’는 7월29일 개봉해 836만9801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인기몰이를 했지만, ‘해운대’의 벽에 밀려 2위에 만족해야 했다.

윤 감독은 동남아 쓰나미 참사가 벌어진 2004년 부산에 살면서 ‘쓰나미가 해운대에 몰려오면 어떤 상황이 빚어질까’ 하는 생각이 들어 영화를 만들기로 마음먹었다고 한다. 관객과 같은 눈높이에서 상식적으로 제기될 만한 의문에서부터 영화 소재의 실마리를 풀어간 것. ‘해운대’의 성공은 이처럼 쓰나미에 막연한 궁금증을 갖고 있던 일반 대중의 심리를 교묘히 자극한 데 힘입은 바 크다.

‘해운대’의 흥행이 더욱 빛을 발하는 것은 기획과 제작, 개봉 과정에서 숱한 어려움과 악재를 이겨낸 결과라는 점 때문이다. 윤 감독이 2004년 제작을 결심하고 투자처를 찾기까지 걸린 시간은 무려 4년여. 과연 이 영화가 흥행에 성공할 수 있겠느냐는 주변의 우려를 이겨내기까지 그처럼 긴 인내의 시간이 필요했다.

1천만명 흥행 쓰나미 덮친 ‘해운대’

1. ‘코믹쇼 로미오 & 줄리엣 시즌2’의 주인공 8인, 2. 뮤지컬 ‘그리스’. 3. ‘샤우팅’. 4. ‘클레오파트라’.

막상 투자를 받고 나서도 첩첩산중. 무엇보다 정해진 제작비 안에서 영화의 하이라이트인 쓰나미급 파도의 컴퓨터그래픽을 외국 블록버스터 영화에 견줄 만큼 만들어내야 하는 부담은 너무나 컸다. 이뿐 아니라 기존 블록버스터의 공식화한 플롯에 변화를 줘 관객이 식상하지 않게끔 해야 했고, 그 연장선상에서 메인 인물을 설정하는 것도 쉽지 않은 작업이었다. 실제로 세 커플을 추려내는 작업에만 1년여가 걸렸다는 후문이다. 개봉 직후엔 동영상이 유출되는 치명적인 위기를 맞기도 했다.

2009년 영화 흥행 Top10을 되짚어보면 전체적으로 국내 영화가 강세를 보였다. 10위 내 작품 중 7개가 국내 영화다. 전형적인 비인기 종목으로 단 5명뿐인 스키점프 국가대표 선수들의 애환을 그린 ‘국가대표’를 비롯, ‘7급 공무원’ ‘쌍화점’ 등이 300만 넘는 관객을 동원했다. 영화 ‘추격자’로 충무로 흥행배우의 입지를 다진 김윤석이 주연한 ‘거북이 달린다’도 예상외로 선전해 300만 관객 대열에 합류했다. 제30회 청룡영화상에서 최우수작품상을 받은 ‘마더’ 또한 297만의 관객을 동원했다.



‘국가대표’ ‘7급 공무원’ 등 국내영화 강세

외화에선 ‘트랜스포머 : 패자의 역습’(732만명), ‘터미네이터 : 미래 전쟁의 시작’(449만명), ‘해리 포터와 혼혈 왕자’(295만명) 등이 한국 영화 틈바구니 속에서 관객의 시선을 모았다.

영화진흥위원회 등에서 구체적인 관객 수가 집계되는 영화와 달리, 연극이나 뮤지컬 관객 수는 온라인 티켓 구매 사이트의 예매율 집계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영화보다 훨씬 많은 작품이 수시로 쏟아져나오고, 공연 기간도 짧게는 일주일에서 길게는 1년 이상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연극이나 뮤지컬을 상영하는 중·소극장의 현장 판매율이 전혀 노출되지 않는 것도 또 다른 이유. 문화체육관광부나 사단법인 한국영화협회, 한국뮤지컬협회에도 연극이나 뮤지컬 관객 수에 대한 객관적인 데이터가 없다.

1천만명 흥행 쓰나미 덮친 ‘해운대’
‘주간동아’는 이를 고려해 접속자 수가 많은 ‘티켓링크’ ‘맥스티켓’ ‘클릭서비스’ ‘인터파크’ 등 4대 공연 포털 사이트에 올해 1월1일부터 10월31일까지 예매건수 집계현황을 요청했다. 이에 ‘티켓링크’는 예매건수와 순위, ‘맥스티켓’은 순위만 집계된 자료를 보내왔다. 반면 ‘인터파크’와 ‘클릭서비스’는 ‘대외비’라는 이유를 들어 자료 제공을 거부했다. 결과적으로 올 한 해 상영된 연극과 뮤지컬 가운데 관객이 가장 많이 찾은 ‘베스트10’을 꼽는 것은 불가능했다. 아쉬운 대로 ‘티켓링크’ ‘맥스티켓’의 예매건수 집계현황을 참고로 올 한 해 주요 작품을 살펴보자.

연극 부문에선 ‘코믹쇼 로미오 · 줄리엣 시즌2’(이하 ‘로미오 · 줄리엣…’)가 단연 돋보였다. 실제 동원 관객 수와 차이는 있겠지만, 티켓링크에선 10개월간 예매건수 1위였고 맥스티켓에서도 연극 전체 예매실적 2위에 올랐다.

‘로미오 · 줄리엣…’은 새로운 공연 방식을 시도해 연극계에서도 호평받은 작품이다. 관객이 직접 주인공을 선택하는 것부터 색다르다. 원작의 주인공인 로미오와 줄리엣 역을 맡을 연기자가 각각 4명씩 총 8명이 등장한다. 관객들은 이들 중 로미오와 줄리엣 역의 연기자를 한 명씩 선정하고, 이들이 연극을 풀어나가도록 한다. 관객이 어떤 연기자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이야기도 달라진다. 경우의 수를 따져보면 16가지 이야기 중 1가지를 관객들이 선택하는 셈. 더욱이 중·후반부엔 관객들이 2차 투표를 해 다시 2명을 뽑는다. 관객들은 자신이 선택한 배우들이 연기하기 때문에 당연히 연극에 몰입할 수밖에 없다.

1천만명 흥행 쓰나미 덮친 ‘해운대’
이 작품 제작사인 애드벤치의 박경훈 대표는 “배우와 직접 소통할 수 있는 관객참여형이다 보니 입소문이 많이 났다”며 “관객들이 원작을 우리 현실에 맞게 바꾸면서 재평가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는 점에서 흥미를 느끼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110분이라는 시간 안에 많은 얘기를 풀어내야 하다 보니 배우들의 배역 소화력이 높다. 박 대표는 “이런 측면에서 관객들은 연극을 보면서 배우들의 연습 과정도 유추해볼 수 있는 또 다른 재미가 있다”고 전했다. 지난해 9월 첫 공연을 시작한 ‘로미오 · 줄리엣…’은 이례적으로 1년3개월째 연장 공연을 이어가고 있다. 박 대표에 따르면 1회에 120여 명의 관객이 입장하는데, 한 달에 33~35회 공연을 치른다. 지금까지 6만명 넘는 관객이 공연장을 찾았다는 얘기. 내년에도 연장 공연이 이어질 예정이다.

한편 뮤지컬 부문에선 ‘오페라의 유령’ ‘아이러브유’ ‘2009 점프’ ‘그리스’ ‘클레오파트라’ ‘샤우팅’ 등이 사이트 예매순위 상위권을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얼굴을 마스크로 가린 채 오페라하우스 지하에 숨어 사는 음악의 천재 팬텀과 프리마돈나 크리스틴, 그리고 크리스틴을 사랑하는 라울 간에 펼쳐지는 아름다운 러브 스토리를 담고 있는 ‘오페라의 유령’은 특히 연일 매진을 기록하면서 고공 순항 중이다. 극중 팬텀이 직접 누리꾼에게 뮤지컬 뒷이야기를 전해주는 서비스까지 제공하면서 관객들을 끌고 있다.

할아버지에서부터 아버지, 어머니, 삼촌 등 범상치 않은 가족과 주변 인물 사이에서 벌어지는 기상천외한 이야기를 다룬 ‘2009 점프’는 서울을 비롯, 부산 등 지방 공연에서도 많은 관객을 동원했다.

1천만명 흥행 쓰나미 덮친 ‘해운대’
전문가들이 본 2009 소비패턴 변화와 특징 | 한국 영화

즐겁지만 경박하지 않은 코미디 전성시대


1천만명 흥행 쓰나미 덮친 ‘해운대’
2009년 한국 영화계는 ‘과속 스캔들’로 흥행의 물꼬를 텄다. 흥미로운 것은 ‘과속 스캔들’이 여러모로 한국 영화계 변모의 방향을 암시했다는 사실이다. 변모는 몇 가지 키워드로 압축할 수 있다. 우선 웰 메이드 상업영화의 등장을 들 수 있다. ‘과속 스캔들’은 과속 3대의 이야기를 가족 중심의 코미디로 만들어낸 작품이다. 기대 이상의 흥행 성적은 혼전 임신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가족의 재결합이라는 전통적 주제의식으로 녹여낸 데서 비롯됐다.

한국에서 코미디는 늘 우세종이기는 했지만, 1990년대 이후 몇몇 조폭 시리즈물로 대표되는 코미디물은 경박함과 천박함이라는 비난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반면 ‘과속 스캔들’은 세대갈등을 코미디 소재로 삼으면서도 그것을 신선하게 재구성해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가볍지만 진지하고, 즐겁지만 경박하지 않은 코미디는 2009년 흥행 영화의 공통 키워드로 자리잡았다.

윤제균 감독의 ‘해운대’는 그런 점에서 변화를 직감하게 한 영화다. 지금까지 한국 영화에서 1000만 영화는 ‘태극기 휘날리며’ ‘실미도’ ‘왕의 남자’ ‘괴물’ 등으로 이어져왔다. 역사적 사실이나 한국의 사회적 현실을 다루는 진지한 ‘정극’이 1000만 영화의 핵심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해운대’는 지금까지의 1000만 영화와는 완전히 다른 성향을 지녔다. 첫째는 전형적인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스타일인 재난영화를 표방했다는 것이고, 둘째는 인간들의 비루한 욕망이나 정치적 갈등을 다룬 비극이 아니라 재난 속에서도 꺾이지 않는 인간애를 그린 영화라는 것이다. 특히 스타일이나 주제에 있어 ‘해운대’는 한국적 차별성이 아니라 장르적 보편성을 추구했다. 여기에 재난영화라는 보편적 문법을 윤제균 식 ‘코미디’로 녹여냈다는 점도 독특하다.

이러한 면은 김용화 감독의 ‘국가대표’에서도 발견된다. ‘미녀는 괴로워’로 흥행 감각을 입증한 바 있는 김 감독은 ‘국가대표’를 통해 한국형 장르영화와 웰 메이드 상업영화의 표본을 제시하는 데 성공했다. 사회의 주변부를 전전하는 ‘루저’들을 소환해서 국가대표로 바꾸는 이야기는 음악과 CG, 배우들의 연기로 매끈한 작품을 만들어낸 솜씨와 비견된다. 2009년 흥행순위 Top 10에 합류한 ‘거북이 달린다’와 ‘7급 공무원’ 역시 웰 메이드 상업영화의 계보에 포함될 수 있다.

2009년 한국 영화 시장의 또 다른 특징 중 하나는 ‘신기술 환대’다. 2000년대 이후 자리잡은 이 현상은 주로 할리우드 영화에 대한 소비가 SF 및 슈퍼히어로 블록버스터에 한정된다는 점에서 확인할 수 있다. ‘트랜스포머’ ‘터미네이터’와 같은 영화는 현재의 시각적 기술이 어느 정도까지 진보했는지 확인시켜주는 계기가 된다. 이 작품들은 모두 이야기나 서사의 측면에서는 허약하나 볼거리가 풍성하다는 공통점을 지녔다. 이처럼 세계의 다른 어떤 곳보다 한국에서 영화의 시각적 신기술이 환대받는다는 것은 한국 시장의 특수성을 보여주기도 한다.

2009년 한국 영화의 또 다른 특징 중 하나는 신인 감독들의 활약과 독립 영화의 선전이다. ‘과속 스캔들’을 비롯해 ‘킹콩을 들다’ ‘애자’와 같은 작품은 모두 신인 감독의 데뷔작이지만, 탄탄한 시나리오와 꼼꼼한 연출력으로 평단과 관객의 호평을 이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웰 메이드 상업영화, 한국형 작가주의 영화의 계보를 잇는 이러한 ‘입봉작’은 한국에서 영화감독으로 입봉하기가 더 힘들어진 만큼 경쟁 끝에 선보인 작품의 수준이 만만치 않다는 점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워낭소리’에서 시작된 독립영화에 대한 열풍이 ‘똥파리’ ‘낮술’ ‘반두비’ 같은 작품에 대한 관심과 지지로 이어진 사실에도 주목해야 한다. 한국 영화 관객의 층위가 다양화했다는 것을 의미하며 다양한 취향과 소비 패턴이 자리잡아가고 있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다양한 패턴을 지닌 관객의 출현은 다양한 작품의 생산을 가능케 한다. 이는 다양한 변화가 있었던 2009년 한국 영화계가 기대감으로 2010년을 기다릴 수 있는 원동력이기도 하다.

강유정 영화평론가·국문학 박사 noxkang@hanmail.net




주간동아 2009.12.22 716호 (p42~45)

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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