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16

2009.12.22

‘엄마를 부탁해’… 남자도 울었다

‘1Q84’ ‘도가니’ 등 베스트셀러 작가들 건재 과시

  • 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입력2009-12-18 16: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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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마를 부탁해’… 남자도 울었다
    2009년 여름 동아일보 신입기자 선발 필기시험의 작문 주제는 ‘엄마’였다. 시험 감독관이 고사장 칠판에 ‘엄마’라고 쓰자 응시자들은 한순간 “아!” 하고 탄식을 내뱉었지만 곧바로 답안지에 글을 써내려갔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세상 사람들에게 ‘엄마’란 가장 가깝고도 고마운 존재다. 그래서 할 말도 많다. 하지만 저마다 엄마에게서 받은 것만 기억할 뿐, 평소 엄마의 인생을 깊이 들여다본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엄마는 과연 어떤 존재일까’ ‘엄마는 여자로서 어떻게 살아왔을까’ ‘자식 때문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얼마나 가슴앓이를 했을까’…. 누구나 한 번쯤 빠져들었을 궁금증이다. 각박한 세상에서 쫓기듯 살아가는 도시인들은 어느 순간 안식처로서 ‘엄마’의 존재를 그리워할 수밖에 없다. 책은 바로 이런 욕구를 해소해주는 ‘대체재’다.

    ‘엄마를 부탁해’… 남자도 울었다
    2009년 한 해 가장 많이 팔린 책이 바로 ‘엄마’를 소재로 한 소설 ‘엄마를 부탁해’다. 작가 신경숙 씨는 2007년 겨울부터 6개월여 간 ‘창작과비평’에 연재, 큰 호응을 얻은 ‘엄마를 부탁해’에 에필로그를 덧붙여 지난해 11월 세상에 내놨다. 어느 날 지하철역에서 아버지의 손을 놓쳐 실종된 엄마의 흔적을 자식들이 추적하는 과정에서 엄마의 인생 역정과 가족에 대한 극진한 애정을 느낀다는 것이 주요 내용. 세밀한 문체와 묘사로 엄마의 상처와 슬픔, 그리고 소박한 희망을 표현해 출판계에선 ‘멸종위기에 처한 희귀종 소설’이라는 평까지 나온다.

    ‘주간동아’가 대형 서점 2곳(교보, 영풍)과 도서 판매량이 많은 인터넷 도서구매 사이트 2곳(YES24, 인터파크 도서)에 지난 1월1일부터 10월31일까지 매출실적 집계를 의뢰해 분석한 결과 ‘엄마를 부탁해’가 소설, 비소설 부문(여행서, 아동·교육 관련 서적, 잡지 등은 제외)을 통틀어 압도적인 1위를 차지했다. 이 기간 중 ‘엄마를 부탁해’의 판매량은 30만7154권. 인터파크 도서는 12월9일 공식적으로 ‘엄마를 부탁해’를 올해의 베스트셀러로 발표했다.

    소설 부문에서는 ‘엄마를 부탁해’에 이어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 1편(12만5471권)과 공지영의 ‘도가니’(8만2852권)가 각각 2, 3위를 차지했다. 베른하르트 슐링크의 ‘더 리더-책 읽어주는 남자’(7만8954권)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신 1’(7만7585권), ‘신 2’(4만8317권) 등 유럽권 저자의 소설도 꾸준한 판매세를 기록했다. 김진명(‘천년의 금서’·5만3891권), 황석영(‘개밥바라기별’·4만765권) 등 ‘영원한’ 베스트셀러 작가들 역시 올 한 해 건재를 과시했다.



    비소설 부문에선 국제난민운동가로 활약한 한비야 씨의 독주가 두드러진다. 8년간 맡아온 국제 구호개발기구 월드비전 구호팀장을 그만두면서 쓴 ‘그건, 사랑이었네’가 15만7848부 팔려 1위에 올랐다. 인기그룹 빅뱅 멤버 5명이 가수로 도전하기까지의 과정을 담은 ‘세상에 너를 소리쳐!’는 학생들과 젊은 층에 크게 어필했다.

    전문가들이 본 2009 소비패턴 변화와 특징 | 도서

    힘든 현실 이겨내는 ‘용서와 사랑’


    ‘엄마를 부탁해’… 남자도 울었다
    2009년 최고의 베스트셀러는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다. 불과 한 해 전까지 부와 성공의 비밀을 찾아 헤매던 독자들은 차가운 경제적 현실 앞에서 절망했다. 미국발 금융위기가 닥치고 경제적 성공은커녕 생존조차 쉽지 않아 보였기 때문이다. 독자들은 올 한 해 책을 통해 잠시 현실을 잊었다.

    ‘엄마를 부탁해’는 독자들이 찾아낸 안식처였다. 불과 10여 개월 만에 100만부가 넘게 팔리며 최단기 100만 부 판매 신화를 새로 썼다는 사실이 이를 입증한다. 많은 사람이 ‘엄마를 부탁해’를 읽으며 만난 감동을 앞다퉈 고백했다. 남자들도 오랜만에 책을 읽으며 울었다고 했고, 소설가 박완서는 “증손자 볼 나이에도 지치거나 상처받아 잠 못 이루는 밤이면 엄마를 찾아 훌쩍인다”고 했다. 외환위기 즈음에 생겨난 ‘아버지 신드롬’과 짝을 이루는 불황기의 ‘엄마 신드롬’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2009년의 베스트셀러를 조금 더 살펴보면 보다 근본적인 이유가 있음을 눈치챌 수 있다. 일련의 베스트셀러는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그림자나 다름없다. 경쟁에 낙오되고 승자독식 사회에 지친 개인들의 모습이 베스트셀러에 반영되고 있다. ‘눈먼 자들의 도시’나 ‘1Q84’ 같은 소설의 배경은 조지 오웰의 ‘1984’를 연상시키는 디스토피아다.

    아귀다툼에 지친 독자는 이제는 돌아갈 수 없는 유년적 세계를 그리워하거나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 기대고자 한다. 미국에서 600만부가 팔린 블록버스터 ‘오두막’이나 한국의 대표 저자 중 한 사람인 한비야의 ‘그건, 사랑이었네’ 등이 내세우는 가치도 결국 용서와 사랑이다. 조금 더 즉자적인 해결책이 필요한 독자라면 ‘긍정의 한줄’같이 매일의 지침을 적은 책을 통해 지치고 괴로운 순간에 힘을 얻고자 했다.2009년에는 특히 심각한 위기에 처한 20대를 향해 주파수를 맞춘 책이 여럿 선보였다. 실업과 비정규직 세대로 전락한 오늘의 20대가 처한 현실을 고발한 데 이어 그들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전하는 책이 다수 출간됐다. 그간 ‘바람의 딸’로 전사적 이미지를 보여준 한비야 역시 ‘그건, 사랑이었네’에서 젊은 세대를 토닥인다. 공지영의 ‘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 역시 대학에 들어간 큰딸에게 건네는 편지글 형식으로 구체적 독자를 지정하고 있다. 빅뱅의 에세이 ‘세상에 너를 소리쳐!’도 젊은 세대에게 건네는 힘찬 응원가다.

    2009년은 애도가 끊이지 않은 한 해였다. 장영희의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은 그가 세상을 떠난 후 출간돼 많은 이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끊임없이 병마와 싸우면서도 단 한순간도 삶을 포기하지 않은 그의 모습이 독자들에게 희망으로 다가왔다. 순위에는 포함되지 않았으나 노무현,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 이후 출간된 책들도 눈길을 끈 한 해였다.

    또한 브랜드를 지닌 작가만이 선택받은 한 해였다. 신경숙, 공지영, 베르나르 베르베르, 무라카미 하루키, 황석영, 한비야 등은 모두 검증받은 저자다. 이런 구매패턴은 원작소설 특수(特需) 현상으로도 이어졌다. ‘더 리더’ ‘브레이킹 던’ ‘눈먼 자들의 도시’ 등 영상으로 선보인 원작소설이 독자의 신뢰를 받아 인기를 누리는 현상은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경제 한파로 2000년대 내내 성장세를 선보이던 경제·경영서는 주춤했다. 그 틈에서 과거와 달리 농업적 근면성을 강조한 ‘일본전산 이야기’ 같은 경제·경영서가 호응을 얻은 것이 주목할 만하다.

    한미화 출판 칼럼니스트 bangku8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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