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11

2009.11.17

‘캠리’ 돌풍, 명불허전? 거품?

‘미국화한 일본차’, 기존 명성 덕에 높은 중고차 값 유지

  • 디트로이트 = 유승민 재미 자동차컨설턴트 flyerno1@gmail.com

    입력2009-11-11 19: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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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캠리’ 돌풍, 명불허전? 거품?

    한국토요타자동차는 ‘프리우스’ ‘캠리’ ‘캠리 하이브리드’ ‘RAV4’의 네 모델로 한국 시장에 도요타 브랜드의 차종을 본격 판매한다. 이 가운데 캠리는 최근까지 미국 시장 내 베스트셀러로 꼽히는 도요타자동차의 ‘대표선수’다.

    도요타의 한국 진출은 다양한 진기록을 낳고 있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현대 쏘나타 킬러’로 떠오른 모델 ‘캠리(Camry)’일 것이다. 한국토요타자동차가 9월14일부터 사전예약 판매를 실시한 결과 캠리는 10월 말 기준, 2730대 계약을 돌파했다.

    도대체 어떤 차이기에 “직접 보지도 않고 계약금부터 걸어놓은 사람이 줄을 섰다”는 소문이 들리는 걸까.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산다’는 캠리의 인기 이유와 ‘인기의 실체’를 짚어봤다.

    미국산 부품 사용으로 ‘애국심 전략’에 대항

    해외여행 자유화 조치가 취해지고 많은 사람이 ‘아메리칸드림’을 찾아 LA 등 미국 각지로 향하던 1990년대 초반, ‘LA 폭동’이 일어난 바로 그즈음에 미국에서 ‘캠리 신화’가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 1980년대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수입된 일본산 중형차, 특히 도요타 캠리와 혼다 ‘어코드’가 90년대 초반 미국 시장에서 돌풍을 일으켰는데 특별한 마케팅 전략이나 광고가 아닌 입소문이 큰 기여를 했다.

    “옆집 사는 아무개가 일본차를 샀는데, 1년 동안 엔진오일 한 번 안 갈고 탄다더라. 내 미국차는 산 지 일주일 만에 고장 났는데…”와 같은 품질에 대한 입소문이 미국 시장에서 빠르게 번져갔다. 이런 입소문 덕분에 일제 중고차의 인기까지 높아졌고, 이는 중고차 가격에도 반영됐다. 신차 기준, 동일한 가격대의 경쟁차들보다 우위에 서게 된 것이다.



    당시 미국 자동차산업의 수준은 어땠을까. UAW(전미자동차노조)를 비롯한 노동조합의 텃세와, 자동차 개발보다는 다른 방법(각종 금융상품 운용 등)으로 돈을 벌려는 경영층의 무관심으로 엉성한 디자인과 품질의 차가 쏟아져나오고 있었다. 자동차 엔지니어나 전문경영인이 아니라 CPA(공인회계사)가 GM의 회장을 맡는 요즘 추세와 별반 다르지 않다고 해야 할까. 엉성한 품질 탓에 자동차 매장에는 팔려고 내놓은 새 차보다 고장 수리를 위해 입고된 ‘수리 대기 중’ 차량이 더 많았다.

    이런 시기, 잔고장 없는 차라는 일본차의 이미지는 신화이자 혁신으로 받아들여졌다. 이렇게 혜성처럼 나타난 일본차에 대항해 미국 내에서 외친 구호는 1990년대 중후반의 ‘Buy American’(미국 제품을 사자)과 ‘Learn Toyota’(도요타를 배우자)였다. 일본 자동차 업체의 인건비는 미국 노동자 인건비의 3분의 1, 완성차의 고장률은 미국차의 10분의 1에 불과하니 미국 완성차들도 긴장감을 높일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1980년대 후반 도요타는 켄터키주 조지타운에 공장을 세워 좀더 강도 높게 미국 시장 공략에 나섰다. 1988년에 등장한 ‘2세대 모델’부터 이 공장에서 만든 모델들은 미국 판매량의 50%대를 차지했다. 또한 미국에서 조립하는 완성차에는 미국산 부품을 적극 사용해 애국심을 자극하는 미국 업체들의 마케팅 공략에 맞서는 전략을 썼다.

    그 결과 초기에는 일본에서 100% 만들어 수입해온 ‘made in Japan’ 차를 판매했으나 2000년대에 이르러 미국 내 완성차 판매량의 95%가 ‘made in USA’인 상황으로 역전시켰다. 한편 이 공장에서 출고한 차량의 미국산 부품 사용률도 90% 이상으로 높였다. 또한 일본에서 만들어 미국에서 수입한 캠리도 일본 내수시장용 제품과는 다른 모델일 뿐 아니라 미국 내에서 생산한 부품의 사용률이 70%가 넘는다.

    미국의 유명 자동차 사이트, 카즈닷컴(Cars.com)이 선정하는 ‘아메리칸 메이드 인덱스’(미국 내에서 생산한 부품이 완성차에 사용되는 비율을 나타내는 것)에서 2009년형 도요타 캠리가 미국차의 상징인 포드 ‘F-150 픽업트럭’을 제치고 1위를 차지한 것도 이를 뒷받침한다.

    예전보다 덜한 인기, 기대감 지나쳐

    ‘캠리’ 돌풍, 명불허전? 거품?

    도요타 ‘캠리’를 비롯해 일본차 신화가 일어난 1992년, 미국 시장의 대표 차종으로 꼽히던 크라이슬러 ‘닷지 스피릿’ 포드 ‘토러스’ 혼다 ‘어코드’ 모델(위부터).

    한국토요타자동차 측은 한국에서 수입하는 캠리 모델은 전량 일본에서 제작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렇다 해도 미국산 부품의 사용비율이 상당히 높을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이것은 높은 부품값으로 인한 유지비용 증가, 다른 미국차와 별반 다르지 않은 품질 수준으로 연결될 우려가 있다.

    지난 20여 년 동안 자동차 산업은 그전 20년과는 크게 다른 양상을 보였다. 그중 한 가지가 바로 자동차회사가 자동차를 개발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외관 디자인과 주요 부품 조립기술을 제외한 상당수 요소가 자동차회사가 아닌 부품업체에 의해 개발되기 때문이다.

    도요타에 트랜스미션(변속기)을 납품하는 회사는 동일한 부품을 포드와 폭스바겐에도 납품하고 있고, 현대 쏘타나와 도요타 캠리가 공유하는 부품회사의 수가 두 자리 숫자 이상이라는 것이 그 단적인 예다.

    ‘JD 파워’를 비롯한 품질조사기관의 품질 수치를 보면 가장 품질이 나쁜 회사와 가장 높은 수준을 자랑하는 회사의 차이가 총점의 10%에 그치기도 한다. 따라서 같은 부품을 써서 만드는 차끼리 품질 차이를 논하는 것 자체가 난센스다.

    최근에도 유학이나 이민으로 미국 땅을 밟는 사람의 상당수가 첫 차로 무조건 일본 브랜드를 찾는다. ‘잔고장 안 나고, 중고차 팔기도 쉽고, 가격도 안 떨어진다’는 이유에서다. 그런데 이 사람들에게 자신들이 타던 일본차를 ‘기꺼이’ 파는 한국인들의 입에서는 한결같이 “일제차라고 별반 다른 게 없더라. 고장률이 다른 차종과 비슷한 데다, 지나치게 흔해서 일제 중고차 살 바에는 현대 쏘나타 신차를 사겠다”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한다.

    그만큼 한국차의 품질이 좋아지기도 했거니와, 일본차보다 긴 보증기간을 제시하는 한국차를 타는 게 유지비용 면에서 경제적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결국 캠리는 이제 ‘미국에서 생산하는 일본차’이기에 ‘특별한 차’로 여겨지지 않는다. 다만 기존의 명성 덕에 유지되는 비교적 높은 중고차 값과 품질에 대한 기대치가 지금의 캠리를 버텨주는 밑바탕이라 볼 수 있다.

    매년 혼다 어코드와 미국 내 승용차 판매량 1, 2위를 다투면서도 렌터카 회사 등 대량 구매처에 단 1대도 팔지 않는 혼다와 달리 캠리는 판매량 가운데 30%가 렌터카업체 등에 대량 판매되는데, 이것만 봐도 캠리의 인기가 예전 같지 않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물론 같은 시기 현대 쏘나타는 미국 내 판매량의 절반 이상을 대량구매 업체에 넘겼지만 말이다.

    이미 국내에서도 SK네트웍스가 캠리를 직수입해 판매하던 터라 국내 시장에서도 이 모델에 대한 중고차 가격이 형성돼 있다. 그런데도 캠리에 거는 일부 사람의 기대는 지나치게 큰 듯하다. 무엇보다 미국에서야 ‘국산차’나 다름없으니 수리나 부품 수급에 큰 지장이 없지만 한국 내에서는 유지비용이 만만치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결론은 캠리 인기 열풍에 다소 ‘거품’이 끼어 있을 수 있다는 것. 미국 시장 진출 초기에 그랬듯 ‘(미국에서 타본) 누가 그러는데 고장도 잘 안 나고 중고차 값도 잘 받는다더라’는 입소문은 자동차를 구입하는 소비자 본인이 직접 검증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유승민 씨는 2000년 도미, 기계공학과 엔지니어링 매니지먼트 석사학위를 받고 현지에서 신차 및 중고차 딜러십 운영, 부품회사 개발, 납품업무 등 자동차 개발, 판매 관련 경력을 쌓았다. 현재 자동차 컨설턴트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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