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05

2009.09.29

“꽁무니 빼던 선수들 이젠 인터뷰해달라고 졸라요”

‘얼짱’ 스포츠 전문 아나운서 김석류·송지선 씨 “펄펄 뛰는 현장, 갈수록 매력”

  • 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입력2009-09-23 15:2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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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꽁무니 빼던 선수들 이젠 인터뷰해달라고 졸라요”

    김석류 아나운서

    좀 과장해서, 요즘 이 두 여성이 없으면 한국 스포츠는 앙꼬 없는 찐빵 아닐까. 야구장, 축구장, 배구장에 이르기까지 생생한 스포츠 현장을 전달하는 방송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들.

    한 손에 수첩, 다른 손엔 마이크를 쥐고 카메라 앞에 서기만 해도 팬들은 물론 선수들까지 설레게 하는 두 명의 ‘얼짱녀’ 스포츠 전문 아나운서가 그들이다.

    스포츠의 매력을 여성 특유의 섬세함으로 색다르게 포장해 선사하는 KBS N 김석류(26)·송지선 (28) 아나운서와 특별한 만남을 가졌다. 한마디로 ‘달콤 살벌한 자화자찬 플러스 알파’. 가톨릭대에서 의류학을 전공한 송지선 아나운서는 원래 의류 머천다이저가 꿈이었다.

    그러다 유학을 준비하던 어느 날 문득 유학 갈 돈으로 아나운서 학원에 한 달만 다녀보겠다고 마음을 다졌고 결국 이 길을 택했다. 한양대 생활과학부를 졸업한 김석류 아나운서는 건축가가 꿈이었다.

    일본 와세다대 교환학생으로 선발됐을 만큼 열의를 보였지만 미련을 버리고 방송의 길로 들어섰다. 두 아나운서의 인기는 상상 이상이다. 시청률이 한 자릿수인 케이블 스포츠 채널의 아나운서지만 지명도와 인기는 지상파 방송의 유명 아나운서 못지않다.



    이들이 현장을 누비자 방송 노출에 인색하던 선수들도 적극적으로 미디어에 다가갔다. 그중에서도 두 아나운서와 가장 많이 접촉한 프로야구 선수들의 변화는 놀라울 정도다.

    송지선 “선수들의 호기심이 ‘적나라하게’ 느껴져요. 강민호, 홍성흔(이상 롯데) 선수는 왜 자기랑 인터뷰 안 하느냐고 얘기하기도 해요.

    진갑용(삼성) 선수도 장난으로 제게 면박을 주면서 인터뷰 요청을 해요. 그간 프로 선수들이 자신을 알리는 데 무관심했는데 이젠 그런 분위기가 많이 바뀐 것 같아요.”

    깨알 메모 내공으로 팬 갈증 해소

    올해 인기 절정인 프로야구 무대에서 두 미녀의 활약은 도드라진다. 5개월여의 페넌트레이스 기간에 팬들의 가려운 곳을 시원하게 긁어줬다. 매일처럼 각팀 선수와 감독의 속사정이며 희로애락을 생생하게 전달했다. 야구를 모르면 할 수 없는 일.

    경기마다 수훈 선수에게 한두 개의 질문을 던지는 게 다지만 행여 골수 팬들에게 지적받지 않을까 싶어, 또 스포츠 아나운서로서 전문성을 살려나가기 위해 경기 전 감독과 선수들을 만나 지식을 얻고 경기 내용도 9회까지 빠짐없이 모니터한다. 두 아나운서의 수첩은 깨알 같은 메모로 가득하다.

    “꽁무니 빼던 선수들 이젠 인터뷰해달라고 졸라요”

    김석류, 송지선 아나운서의 야구수첩. 깨알 같은 메모가 ‘내공’을 느끼게 한다.

    자기만의 노하우가 있나요.

    송지선
    “경기 상황을 구체적으로 메모해요. 예를 들어 유격수를 스치고 간 안타면 유격수 어느 방향으로 빠졌는지, 그 타구를 좌익수가 어느 위치에서 잡았는지까지 적어놔요.

    선수들의 일거수일투족뿐 아니라 팀 전체로서 아쉬웠던 상황도 정리하죠. 노트만으로는 모자라 작은 메모지를 여러 장 사용하는데, 이건 석류가 알려준 비법이에요.”

    김석류 “꼼꼼한 지선 언니처럼 일일이 볼 카운트까지 기록하진 않아요. 대신 양팀 라인업을 적고, 거기다 각 선수의 플레이나 대표 기록을 써놓고 질문지를 만들어요. 급하게 선수 인터뷰할 땐 이 노트가 큰 도움이 되죠.”

    이렇게 땀을 쏟다 보니 어느새 ‘야구 박사’가 돼갔다. 그러나 나름의 고충도 생겼다. ‘야구’가 눈에 보이면서 그만큼 생각이 많아진 것이다.

    “전문가가 보는 야구와 팬이 보는 야구의 차이를 알게 된 거죠. 저는 그 중간쯤에 있으니 혼란스러워요. 질문을 준비하다 ‘혹시 이 얘기는 팬들도 알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머리가 복잡해지는 거죠.”

    “올해 들어선 팬들이 모르는 얘기도 많이 알게 됐거든요. 구단 사정이나 선수 개개인의 고민 같은 것이죠. 그래서 어디까지 얘기하고 어느 선에서 멈춰야 할지 고민스러울 때가 많아요.”

    자! 두 분도 이제 야구 전문가인데 만약 야구 국가대표팀 공동감독으로 임명돼, 베스트 9를 뽑는다면?

    “국제대회에선 적응력이 우선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외야수는 김현수(두산), 이용규(기아)….”

    “또 한 자리엔 이진영(LG)이 있겠네요.”

    “포수는 박경완(SK), 진갑용 선수를 꼽겠어요. 내야수는… 참 어렵네요. 좋은 선수가 너무 많아서. 그래도 1루수엔 국제대회에 강한 김태균(한화) 선수를….”

    “수비섭(기아의 최희섭을 지칭) 선수도 있잖아요.”

    “2루수는 정근우(SK), 유격수는 아직은 박진만(삼성) 선수가 필요하다고 봐요. 3루수는 이범호(한화) 선수.”

    “3루수엔 김상현(기아)… 김상현… 김상현!”

    김·송 “투수는 하나 둘 셋, 봉중근(LG)! 사심 가득 넣어서, 호호.”

    “꽁무니 빼던 선수들 이젠 인터뷰해달라고 졸라요”

    송지선 아나운서

    방송 중 실수하거나 야구장에서 마음의 상처를 입은 일도 많았죠?

    “지난해 박재홍(SK) 선수와 인터뷰하면서 ‘홈런 1위 오르셨네요’라고 축하를 했는데 박 선수가 ‘아닌데요’라고 해서 당황했죠. 또 심수창(LG) 선수가 결혼한다는 소문을 듣고 방송에서 결혼 얘기 좀 해달라고 부탁했는데 심 선수가 깜짝 놀라며 부인했어요. 주변분들 얘기 듣고 물어본 건데, 사실이 아니었던 거죠. 그 사건을 계기로 제가 직접 확인한 게 아니면 누구의 말도 듣지 않아요.(웃음)”

    경기 전 더그아웃 들어왔다고 소금 뿌려

    “작년에 뜻하지 않은 소문이 번져 마음고생이 심했어요. 연예 스캔들 기사 보면서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겠느냐’고 생각했는데, 막상 제가 그 중심에 서니까 정말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겠더라고요. 선수들 사이에서 도는 소문을 우연히 들었는데, 그땐 정말 야구에 대한 믿음도 무너지는 것 같았어요. 이 일을 그만둘까 하는 생각도 했죠.”

    김·송“(갑자기 얼굴 표정이 밝아지며) 선수들이 하는 얘기, 저희에게 다 들어와요. 호호.”

    게다가 아직 야구판에 여성에 대한 편견이 남아 있는 게 현실이다. 이럴 때마다 두 사람은 여성 스포츠 캐스터가 되려는 꿈의 한계와 현실의 벽을 느낀다.

    “경기 직전 모 구단 더그아웃에서 선수와 인터뷰를 했어요. 그런데 다음 날 석류가 같은 구단 선수와 인터뷰를 못했다고 하더라고요. 알고 보니 그 팀의 한 코치가 전날 제가 경기 전 더그아웃에 들어왔다고 석류가 간 날 소금을 뿌렸다는 거예요. 여성 스포츠 아나운서의 한계를 온몸으로 느낀 사건이었죠. 충격을 많이 받았어요.”

    그래도 두 사람은 오뚝이처럼 일어선다. 이젠 ‘그러려니’ 하는 여유가 생겼다. 스스로 마음을 열고 현실에 적응하려는 마음가짐이 강한 추진력이 돼준다.

    “더는 1년 전의 ‘들뜬 아이’가 아니죠. 이젠 미래가 그려져요. 공부를 많이 해야겠다는 절박함도 느낍니다. 방송을 하고자 했을 땐 쇼핑호스트가 되고 싶었는데 이젠 대본이 없고, 곧바로 피드백이 오는 스포츠 캐스터의 매력이 제 성격과 딱 맞아떨어지는 것 같아요.”

    “지난해 힘든 일을 겪으면서 긴 호흡으로 꿈을 바라봐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죠. 스스로를 자유스럽게 열어놓고 다양한 분야를 경험하려 해요. 내공을 쌓다 보면 그걸 스포츠에 접목할 수 있는 기회가 오겠죠.”

    얼굴도 예쁘고 마음도 예쁘다. 그렇지만 진정 아름다운 건 그들의 끝없는 도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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