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05

2009.09.29

‘코리아워시’ 강요 후유증

  • 강지남 기자 layra@donga.com

    입력2009-09-23 14: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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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 조카가 말을 배우기 시작하자 저희 자매는 종종 물었습니다. “큰이모랑 둘째이모랑 막내이모 중에 누가 제일 좋아?” “큰이모랑 둘째이모랑 막내이모랑 좋아.” 우문현답(愚問賢答)이란 이런 거겠죠. 다 좋은데 하나를 고르라는 건 말이 안 되잖아요.

    2PM의 박재범 사태와 관련, 한국에 거주하는 해외교포 청년들을 만나면서 한국인이 ‘우문’에 빠져 있지 않나 싶었습니다. 교포들을 한국인으로 ‘믿는’ 것도, 미국인이나 일본인으로 여기며 밀어내는 것도 이들에겐 참 답답한 일입니다. 재미·재일교포에게만 국한된 문제가 아닙니다. 이미 우리 주변에선 많은 다문화가정의 아이들이 무럭무럭 성장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물론 한국인이죠. 그러나 필리핀 베트남 등 ‘엄마 나라’의 문화 또한 내재한 한국인입니다.

    다문화가정의 아이를 가르치는 교사들은 재미교포 2, 3세 청소년들이 ‘화이트워시(whitewash·백인화)’에 애쓰는 것처럼, 이 아이들 또한 ‘코리아워시(koreawash·한국화)’하기 위해 무던히 애쓰고 있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한국 사회가 ‘동남아계 엄마를 둔 한국인’을 인정하고 이해한다면 이들의 청소년기는 덜 혼란스럽지 않을까요. 또 한국을 배우느라 겪는 좌충우돌을 넉넉한 마음으로 받아줬으면 합니다. 청소년기에 잔소리하는 엄마를 향해 “엄마 싫어” “엄마 짜증나”라는 말, 안 해본 사람 없잖아요. 한국 비하로 매도된 박재범의 발언도 이런 수준의 것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코리아워시’ 강요 후유증
    세상에는 무 자르듯 명확하게 나눌 수 없는 것들이 지천입니다. 그런 것을 무리해서 나눠버리려고 하면 탈이 나게 마련이죠. 저도 예전에 캐나다에서 나고 자란 교포 친구에게 “네 조국은 한국이야, 캐나다야?”라고 물은 적이 있습니다. 그 친구는 “My country는 캐나다인데, 우리나라는 한국이야”라고 대답했습니다. 이중정체성의 의미를 그때 어렴풋이 깨달았던 것 같습니다.

    한국에 서울사람, 부산사람, 이북사람, 목포사람이 있듯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재미교포, 엄마가 필리핀인인 소년, 한국에서 지낸 지 꽤 오래된 조선족과 탈북자도 있습니다. 안타깝기 그지없는 박재범 사태가 한국 사회의 ‘다문화지수’를 높이는 계기로 거듭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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