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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육· 해· 공 ‘세관전쟁’ 밀착취재 04

눈 부릅뜬 한 달 … “환치기 꼬리 발견!”

사정기관 총동원한 불법 외환거래 추적, 단 1달러라도 새나가는 돈 지켜라!

  • 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눈 부릅뜬 한 달 … “환치기 꼬리 발견!”

눈 부릅뜬 한 달 … “환치기 꼬리 발견!”
3월20일 서울 논현동 서울본부세관(이하 서울세관) 외환조사1과 사무실. 주말을 앞둔 금요일이라 분위기가 ‘널널’할 법도 하지만 긴장감만 느껴진다. 직원들은 모두 컴퓨터 화면과 서류에 시선을 고정한 채 뭔가를 찾아내기 위해 골몰하고 있었다. 적막감마저 감도는 사무실. 그 순간 사무실 어딘가에서 나지막한 회심의 소리가 들려왔다.

“음, 그럼 그렇지. A사 수입대금 지불 내역이 심상치 않은데…. ○○씨, 2006년부터 2008년까지 이 회사 수출입 실적, 입출금 계좌 내역을 다시 확인해줘요. 일단 과장께 보고해야겠어.”

한 달 전부터 조사1과 직원들은 무역업체인 A사의 동태를 관찰해왔다. 기획재정부 산하 금융정보분석원(FIU)으로부터 A사의 자금 흐름이 의심스럽다는 통보를 받았기 때문이다. FIU는 금융기관으로부터 하루에 5000만원 이상 자금을 거래한 사람의 인적사항을 통보받고 이를 분석해 검찰, 경찰, 국세청, 관세청, 금융감독위원회 등에 통보한다.

눈 부릅뜬 한 달 … “환치기 꼬리 발견!”

계약서상에 등장하는 해외 법인의 실체도 자체 분석자료를 통해 꼼꼼히 확인한다. 서울세관 외환조사1과 박남기 사무관(맨 오른쪽)이 불법 외환거래 의혹을 받는 업체를 압수수색해 통장과 메모 등을 분석하고 있다.

조사1과가 FIU에서 받은 자료를 분석하고 관세청 전자통관 시스템을 통해 1차 스크린을 한 결과, A사는 지난해 해외에서 여러 차례 물건을 수입하면서 계약서에 명시된 영수액(수입액)보다 훨씬 많은 금액을 지급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회사 계좌에서 수입대금으로 빠져나간 돈이 계약서에 명기된 수입액의 2배. 수입대금을 불법 지급한 것일 수도 있고, 회사 관계자가 재산을 국외로 도피시키기 위해 허위 수입계약서를 꾸몄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수첩, 메모지까지 뒤지고 또 뒤지고



송금 과정에서 불법 외환거래의 대표적 수법인 환치기 계좌가 이용됐을 가능성도 있다. 환치기는 송금자가 국내 환치기 조직의 계좌에 돈을 입금시키면 이와 연계된 해외 환치기 조직이 송금자가 지정하는 계좌로 입금하는 대체 송금 시스템이다. 사무실은 A사가 어느 경우에 해당하는지, 추가 불법거래 정황은 없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갑작스레 부산스러워졌다.

2주일 뒤인 4월3일 다시 찾은 외환조사1과. 조사관들은 관세청 통관 시스템에 저장된 데이터를 다각적으로 분석한 끝에 A사의 불법 외환거래 혐의를 하나하나 밝혀냈다. 셈이 빠른 여성 조사관들의 손놀림이 예전보다 훨씬 분주했다. 전자통관 시스템 프로그램을 통해 A사의 수출입 실적과 송금 실적, 수출입 미지불금액 명세, 조사처분 실적자료 등을 뽑아낸 조사관들은 이를 수입계약서의 지불금액과 일일이 대조했다. 자체 데이터 조회를 통해 A사로부터 수입대금을 송금받은 업체가 명목상 존재하는 페이퍼 컴퍼니(유령 회사)인지도 확인했다.

A사의 자금 이동이 의심되자 조사 방향이 A사 사장으로까지 확대됐다. 법무부와의 공조를 통해 사장의 출입국 기록도 확인했다. 돈거래를 한 업체가 소재한 나라에 사장이 실제로 갔다 왔는지를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만약 다녀온 흔적이 없다면 A사와 해외업체 간의 자금거래는 의혹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조사관들이 전자통관 시스템에서 2006년 이후 A사 사장의 출입국 기록을 확인했더니 중국과 베트남을 수시로 드나든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정작 A사가 물건을 수입했다는 업체는 홍콩에 있는 법인이었다. 게다가 홍콩 법인의 사장은 한국인이었고, ‘Employ’란에는 직원 수 기록이 전혀 없는 등 실체가 의심스러웠다.

이와 유사한 정황이 하나둘 드러나자 A사 사장의 계좌 조사에 들어갔다. A사와 해외업체 사이에 오고 간 자금과 개인계좌 자금의 연관성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조사1과는 이미 해당 은행에 금융정보 제공을 요청해둔 상태였다.

계좌 확인 작업이 끝나자 한 조사관이 소리를 질렀다.

“A사 압수수색 신청해주세요.”

해외거래 송금 내역을 계좌 확인 작업으로 밝혀내지 못하자, 문제가 된 자금거래의 실체와 그 목적을 추적하기 위해 검찰의 지휘를 받아 압수수색을 신청한 것이다. 법원에서 압수수색 영장이 발부되자 A사에서 장부와 통장, 회계자료 등을 상자 가득 압수해 와 분석에 돌입했다. 보통 이 단계에서 지금껏 입증하기가 쉽지 않았던 자금거래 내역의 실체가 드러나는데, 회사 대표나 회계 관계자의 수첩에 적힌 메모 등에서 은밀한 자금의 성격이 밝혀지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

불법 외환거래는 해마다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관세청 분석 자료에 따르면 2007년 외환 및 재산 국외도피, 자금세탁 등 불법 외환거래 단속 실적은 2364건, 2조3898억원. 이에 비해 지난해는 2288건으로 건수는 줄었지만 액수가 3조3692억원으로 크게 늘었다. 올 들어서도 2월까지 340건, 4064억원 상당의 불법 외환거래가 적발됐다. 경기가 어려워졌다고 하지만 불법 외환거래엔 별다른 변화가 없다.

불법 외환거래는 크게 순수 외환 사건과 재산 국외도피, 자금세탁 사건으로 나뉜다. 순수 외환 사건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데 환치기, 채권 미회수, 자본거래 신고위반, 외화 휴대 밀반출입 등이 포함된다. 특히 무등록 외국환 업무, 즉 환치기 계좌에 의한 자금거래가 가장 많다. 지난해 환치기 계좌운영 적발 사례는 68건에 그쳤으나 그 금액은 전체 단속 금액의 60%가 넘는 2조1020억원에 이를 정도다. 최근엔 외부로 노출되지 않고 송금 수수료도 줄일 수 있는 점을 악용해 재산 국외도피와 자금세탁 사건에까지 환치기 계좌가 이용되고 있다.

‘통장과 도장을 통째로’ 신종 수법도 등장

눈 부릅뜬 한 달 … “환치기 꼬리 발견!”

의심스러운 계좌를 추적하기 위해 금융기관에 해당 계좌의 금융정보를 요청한다.

서울세관 외환조사1과 박남기 사무관은 “정보원의 제보나 고발 등 여러 채널을 통해 불법 외환거래 관련 첩보를 수집하는데, 무역업체나 개인 간 자금거래에서 발생하는 불법 외환거래는 거의 다 환치기 사건”이라며 “통장을 도장과 함께 통째로 전달하는 신종 환치기 수법도 유행하고 있다”고 전했다.

통장전달 방식은 국내 환치기 업자가 송금 의뢰자 명의의 통장과 도장, 비밀번호를 넘겨받아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수법. 가령 송금 의뢰자가 환치기 업자에게 준 자신의 계좌로 1억원을 입금하면, 환치기 업자는 해외에 있는 연계조직에 지시해 송금 의뢰자가 지정하는 수취인에게 1억원을 내주는 방식이다. 일이 완료되면 국내 환치기 업자는 송금 의뢰자의 통장에서 수수료와 1억원을 빼내면 ‘상황 끝’이다. 환치기 조직은 자신들의 계좌를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수수료도 벌고 계좌 추적도 피할 수 있다. 이 밖에 증권계좌를 이용하거나 노인 등의 명의로 5만 달러 이하의 소액을 분산 송금하는 수법도 널리 이용된다.

불법 외환거래 단속은 상당한 시간을 요구하는 작업으로, 축적된 첩보의 가공에서 모니터링, 실사, 처분에 이르기까지 복잡다단한 과정을 인내를 가지고 진행해야 한다. 서울세관 이종욱 외환조사과장은 ‘시간과의 전쟁’이라는 표현을 썼다.

“수사 모니터링 시간이 오래 걸려요. 혐의가 포착된 이후에도 한 달 이상 소요되죠. 당연히 어려움이 많아요. 계좌추적에 들어갔는데, 중국에서 대포통장을 사용해 인터넷뱅킹을 한 사례가 나오면 맥이 ‘탁’ 풀려요. 핵심 인물이 조선족이라면 상황은 더 어려워지고요. 그럴 때는 시간이 걸려도 원점으로 돌아가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 들어가요. 그러다 보면 예상 밖의 결과를 얻기도 하죠. 큰 건을 잡는 경우도 많아요. 결국 자신, 그리고 시간과의 싸움인 셈입니다.”



주간동아 2009.04.21 682호 (p30~31)

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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