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82

2009.04.21

한국 주부들 “미국 간호사로 취업” 열기

돈도 벌고 자녀 유학 뒷바라지 ‘일석이조’… 미 간호사 면허시험 응시자 급증

  • 오진영 자유기고가 ohnong@hanmail.net

    입력2009-04-16 13:3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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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주부들 “미국 간호사로 취업” 열기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 중환자실에서 근무하는 간호사들.

    간호사 박영희(가명·43) 씨는 대학 졸업 20년 만인 올해 이화여대 간호교육경력개발센터의 NCLEX-RN(미국 간호사 면허시험) 과정에 등록했다. 졸업 후 잠시 병원에 근무하다 줄곧 전업주부로 지냈던 그는 4년 전부터 다시 간호사로 일하기 시작했다. 박씨는 “미국 간호사가 되면 중학생 아이를 현지에서 공부시키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아 시험 준비를 시작했다. 재취업을 한 것도 경력을 쌓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1960년대 말 해외 취업의 대표 직종으로 꼽히던 간호사가 다시 부상하고 있다. 주부들이 자녀 유학을 뒷바라지하고, 돈도 벌기 위해 미국 간호사에 도전하는 것. NCLEX-RN 응시자 수도 꾸준히 늘어나 2003년 1341명에서 2005년 1724명, 2006년에는 2145명을 기록했다. NCLEX-RN 전문 학원도 전국에 20개나 된다.

    탄력근무로 6만∼8만 달러 연봉 가능

    NCLEX-RN에 응시하려면 3년제 이상 간호대학을 졸업하고, 한국 간호사 면허를 소지해야 하기 때문에 국내 간호대학의 편·입학 경쟁률도 올라가는 추세다. 수도권의 한 간호대 관계자는 “몇 년 전부터 명문대 졸업자, 대기업 직원, 의대 중퇴생까지 다양한 커리어의 주부들이 편입시험에 응시한다. NCLEX-RN 합격률이 평균 70%를 웃돌 만큼 높기 때문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주부들이 NCLEX-RN을 준비하는 가장 큰 이유는 미국 병원에 취업하면 영주권을 쉽게 받을 수 있기 때문. 이 경우 자녀를 미국 공립학교에 진학시킬 수 있다. 또 현지에서 본인이 원할 때까지 계속 일할 수 있어 자녀의 유학 뒷바라지에도 유리하다. 학원가에서는 최근 금융위기 여파로 고환율 현상이 지속되면서 주부 수강생이 늘고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박영희 씨도 “같이 수업을 듣는 이들 중에는 나처럼 나이 든 전·현직 간호사가 많다”고 전했다.



    미국 간호사의 급여와 처우가 한국 간호사보다 월등히 높다는 것도 많은 주부가 NCLEX- RN에 도전하는 이유. 미국 간호사 면허시험을 준비하는 전직 간호사 안수미(가명·48) 씨는 “한국은 간호사의 전문성을 인정해주지 않는 문화가 강해 간호사의 직업 만족도가 낮은 편이지만 미국은 그렇지 않다는 점에 끌렸다”고 밝혔다.

    그러나 NCLEX-RN 시험에 합격했다고 해서 누구나 미국 간호사로 일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미국 병원에 취업하려면 면허 취득 후 개별 인터뷰를 치러야 한다. 미국 병원에서는 간호사 실무 경력과 영어 능력을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에 이 단계를 통과하기 쉽지 않은 게 현실. 병원 인터뷰에 합격했다 해도 V.S.C(Visa Screen Certificate)를 받지 못하면 정식 취업이 안 된다. 미국 정부는 전문 분야의 취업비자를 발급하기 전에 신청자의 영어 실력 등을 검증해 V.S.C를 주는데, 의료 분야에서 V.S.C를 받으려면 IELTS 6.5 이상, 토플 550점(PBT) 이상 수준의 영어 실력을 갖춰야 한다.

    지난 2월 NCLEX-RN 시험에 합격한 조수정(가명·29) 씨는 “NCLEX-RN 합격자 가운데 미국 병원 취업에까지 성공하는 사람은 극소수”라며 “취업에 이르기까지의 어려움을 생각하면 미국 병원이 주는 급여나 보상이 우리나라보다 월등히 높은 수준인지 의심스럽기도 하다”고 말했다.

    美, 2016년까지 간호사 100만명 부족

    한국 주부들 “미국 간호사로 취업” 열기

    한국 간호사보다 급여와 처우 수준이 월등히 높은 미국 간호사가 되기 위해 자격시험을 준비하는 주부가 늘고 있다.

    2005년 간호사 인력난에 시달리던 미국 정부가 외국 이민자를 위한 간호사 취업 비자 5만개를 선발급하면서 취업의 문이 크게 넓어졌지만, 이 쿼터가 모두 소진됨에 따라 최근에는 미국 간호사 취업이 무척 어려워졌다고 한다. 이 때문에 아예 유학 비자를 받고 미국 간호대에 진학하는 이들도 있다. 성신여대 간호학과는 미국 뉴욕시립대 레먼대학과 협약을 맺고 미국 간호학사 편입과정(RN-BSN)을 운영한다. 이 대학 송지호 학장은 “우리나라에서 전문대 간호학과 이상을 졸업하고 NCLEX-RN을 취득한 사람이 이 과정에 등록하면 레먼대학에 학사 편입할 수 있다. 이 대학에서 1년 과정을 마치면 미국 간호학사 학위를 취득할 수 있어 비자 스크린 때 영어 점수를 제출할 필요가 없고, 졸업과 동시에 연봉 5만8000달러를 받는 유급 실무연수(OPT)에도 들어갈 수 있다”고 밝혔다. 2007년부터 시작된 이 과정을 통해 115명이 미국으로 떠났다.

    그러나 간호대학과 NCLEX-RN 학원가에서는 미국 간호사 취업의 문이 다시 열릴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최근 연방하원에 상정된 ‘비이민 비자 신설 법안’에 외국인 간호사 비자를 연간 5만개씩 발급하도록 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베이비붐 세대가 은퇴하면서 사회복지 시설의 간호사 인력난이 심해지는 것도 이 같은 예측을 뒷받침한다. 미국 노동국은 2020년까지 280만명의 간호사가 충원돼야 하는데 그중 30%인 80만명이 부족하다고 예측했고, 미국간호대협회(AACN)도 2016년까지 100만여 명의 간호사가 부족할 것으로 내다봤다.

    지난해 12월 NCLEX-RN에 합격한 김은혜(가명·37) 씨는 “미국 병원에 취업해 아이와 함께 유학을 갈 수 있다면 가장 좋겠다. 하지만 당장 취업을 못하더라도 이 자격증이 있으면 의료시장 개방 후 우리나라에 들어올 외국계 대형 병원에 취업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아 기대가 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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