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79

2009.03.31

생명 틔우는 기적 씨앗 보기를 황금처럼 하라

  • 김광화 flowingsky@naver.com

    입력2009-03-27 15:5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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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명 틔우는 기적 씨앗 보기를 황금처럼 하라

    어미 감자 곁에 올망졸망 달린 새끼 감자들.

    봄이다. 겨우내 땅바닥에 움츠렸던 밀보리는 쑥쑥 자라고, 겨울잠을 자던 감자와 고구마는 새싹을 내민다. 산수유꽃이 피고, 매화 꽃망울은 터질 듯 부푼다. 덩달아 사람도 봄기운을 받는다.

    봄이 되어 씨앗을 만질 때면 나는 빅뱅(big bang)을 떠올린다. 작은 씨앗 하나가 펼치는 대폭발에 가까운 한살이를. 우선 싹을 뚫고 자라는 모양새부터 그렇다. 때가 되면 작고도 여린 싹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오는지 놀랍기만 하다. 또한 대부분의 씨앗은 자기 크기의 수백에서 수만 배로 자란다. 그 대표적인 곡식으로 나는 참깨를 들고 싶다.

    참깨 한 알, 얼마나 작은가. 그런데 키가 어른 가슴 높이까지 자란다. 줄기는 손가락 굵기 이상이다. 나중에 꽃이 피고 꼬투리가 맺히면 그 속에는 씨앗이 영근다. 잘 자란 참깨 한 알은 다시 1만 개 이상의 씨앗을 남긴다. 그 덕에 사람들도 생명을 이어간다.

    감자는 보통 봄에 심어 하지 무렵에 거둔다. 위 사진의 감자는 땅에 심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미처 먹지도 못해 어두운 광에 하지 무렵까지 두었던 것이다. 그랬더니 어미 감자는 자기 몸을 자양분 삼아 새끼 감자를 올망졸망 달았다. 쪼글쪼글 흙빛 나는 게 어미 감자인데 마치 우리네 할머니를 떠오르게 한다. 그 둘레에 노랗게 빛나는 감자가 새끼 감자들이다. 햇살 한 줄기도 안 받고, 비 한 방울 만난 적도 없으며, 거름은 고사하고 흙냄새조차 맡아보지 않았는데 새끼를 낳았다. 그것도 크기를 골고루 해서. 어떻게든 자손을 이어가고자 하는 감자의 생명 본성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게 아닐까.

    생산성만 높이는 육종의 빛과 그림자



    이렇게 씨앗 자체는 경이로움을 주지만 안타까운 일도 있다. 요즘 농가에서는 씨앗을 돈 주고 사서 심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런데 이렇게 심은 곡식은 그 씨앗을 받아 이듬해 다시 심으면 원래 씨앗처럼 되지 않는다. 이 슬픈 현실에는 육종의 빛과 그림자가 동시에 있다.

    잡곡 같은 곡식은 농가에서 어느 정도 손수 씨앗을 받지만, 채소는 거의 대부분 씨앗이 종자회사에 의해 전문적으로 육종된 것이다. 이 씨앗은 F1이며, 돈을 주고 사야 한다. 농사로 돈을 벌려면 생산성이 높아야 하고, 그러자면 F1을 사다 심어야 한다. F1에서 다시 받은 씨앗이 F2. 이를 그 이듬해 심으면 수량이 뚝 떨어진다. 모양도 들쑥날쑥이라 상품성도 떨어진다. 먹는 게 무엇인지를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흔히 ‘먹는 게 바로 우리 몸’이라 한다. 그렇다면 당대에만 크고 빛깔 좋은 먹을거리가 우리 몸과 마음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자식은 부모보다 더 나아져야 하는 게 자연의 순리가 아닐까. 그 반대가 지속된다면 언젠가는 자기 씨앗조차 남기기 어려울 것이다.

    생명이 돈에 휘둘리는 세상. 농사꾼들은 씨앗에서 점점 멀어지고, 소비자들은 먹을거리 불안을 더 크게 겪게 된다. 심지어 터미네이터 종자(terminator seeds)라는 것도 있다. 이는 씨앗을 심어 한 차례 수확한 뒤에는 그 씨앗을 받아 다시 심어도 싹조차 나지 않게 만든 종자다. 한마디로 불임 종자. 씨앗이 발아하고자 하는 생명 본성마저 돈의 논리로 막아버린 셈이다. 끔찍하지 않은가. 그러니 씨앗은 생산자나 소비자를 가리지 않는 모두의 문제다.

    생명 틔우는 기적 씨앗 보기를 황금처럼 하라

    <b>1</b> 씨앗을 나누는 손. 아름답고 거룩한 손이다. <br><b>2</b> 씨앗을 나누는 씨드림 회원들의 눈빛이 마치 보물을 대하는 듯하다. <br><b>3</b> 서 있는 이가 씨드림 안완식 대표. 그 왼쪽이 농촌진흥청 국립농업과학원 농업유전자원센터 김정곤 소장.

    우리 땅에 적응한 토종씨앗 지키기 운동

    이 끔찍한 흐름을 되돌리기 위한 움직임도 생겨난다. GMO 반대운동과 토종씨앗 지키기 운동이 그것이다. 자급자족 삶을 추구하고자 할 때 그 뿌리는 씨앗이 된다. 조상 대대로 이어와 우리 땅과 기후에 적응된 생명. 전문적으로 육종된 씨앗에 견줘 당장 눈에 보이는 수량은 떨어질지 모르지만 생명력은 어떤 씨앗보다 안정된 상태다.

    이렇게 우리 씨앗을 살리려는 희망 하나를 소개한다. 지난해 봄부터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전여농)에서 깃발을 들면서 시작된 모임인 씨드림(대표 안완식). 1년 사이에 회원이 600여 명으로 늘어났다. 나도 3월11일 열린 씨드림 모임에 참석했다. 지난해 이어 두 번째 정기모임인데 전국에서 50여 명이 함께했다. 몇몇 단체에서도 관심을 갖고 참여했다. 전여농을 비롯해 전국귀농운동본부와 흙살림, 여성민우회 생활협동조합들이다. 농촌진흥청은 회원들에게 모임 장소를 제공하고, 종자 은행을 안내하며, 농가들과 농업 유전자원을 나눠 갖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모임이 끝난 뒤에는 회원들마다 가져온 씨앗을 나눴다. 예부터 전해오는 말이 있다. ‘농부는 굶어죽더라도 씨앗은 베고 죽는다’ ‘아무리 없이 살아도 씨앗은 갈라 쓴다’ 등. 씨드림 회원 누구도 씨앗을 나눠주면서 돈을 바라지 않았다. 그저 우리 씨앗을 잘 살려나가자는 일념 하나. 씨앗을 보는 눈빛들이 기대와 설렘으로 빛난다. 보물을 바라보는 눈빛이라고 할까.

    그렇다. 씨앗은 보물이다. 우리네 생명을 이어주는 보물이자, ‘대폭발’을 기다리는 보물. 황금 보기를 돌같이 하기는 어렵지만 씨앗 보기를 보물처럼 하기는 어렵지 않다. 토종씨앗 지킴이인 안완식(68) 대표는 강조한다.

    “한 뙈기 텃밭에도 얼마든지 우리 종자를 키울 수 있다. 시골 농가는 물론 도시에서 텃밭 하는 사람들이 각자 한 가지 종자만이라도 이어나가자. 조상들이 일궈놓은 종자의 다양성을 다시 살려가야 하지 않겠나.”

    이제 우리는 배곯던 시절의 절대 가난을 벗어났다. 좀 적게 먹더라도 제대로 생명을 이어가는 먹을거리에 관심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씨앗을 보물로 바라보는 관점의 전환이 절실한 때다. 우리는 부모 씨앗으로 태어난, 사람 씨앗이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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