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이번 4·29 재보선을 앞두고 정치권에 이상기류가 형성되고 있다. 이명박 정부와 집권여당에 대한 평가보다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의 복귀 문제가 최대 이슈로 떠오르면서 오히려 야당의 갈등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는 것. 재보선 결과의 후유증이 한나라당보다 민주당 쪽이 훨씬 클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4·29 재보선은 18대 국회 들어 처음 치러지는 국회의원 재보선이다. 인천 부평을, 울산 북구, 경북 경주, 전북 전주 덕진·완산갑 등 5개 지역이 재보선 선거구다.
현재 민주당 내 최대 관심사는 전주 덕진에서 정 전 장관이 과연 당 공천을 받을 수 있을지 여부다. 정 전 장관이 공천받지 못할 경우 무소속으로 출마를 강행할지가 그 다음 관심사다. 정세균 대표를 중심으로 한 민주당 지도부는 3월18일 정 전 장관이 출마 의사를 밝힌 전주 덕진을 인천 부평을과 함께 ‘전략공천 지역’으로 결정했다. 공모 절차 없이 당 지도부가 직권으로 후보자를 결정하겠다는 뜻이다.
鄭동영 - 丁세균, 세력 대결로 치닫나
하루 전날 민주당 공천심사위원회가 발표한 다섯 가지 공천심사 기준도 정 전 장관을 겨냥한 것이라는 의심을 샀다. ‘미래 지향적인 인사’ ‘기득권이나 특정 이해관계를 배제한 심사’ ‘당의 화합과 발전에 기여할 인물’ 등의 표현이 정 전 장관 측을 자극한 것. 원론적인 표현 같지만 당 지도부의 정치적 판단에 따라 얼마든지 자의적 해석이 가능하다.
당내에서는 정 대표와 당 지도부가 ‘정 전 장관의 공천 배제를 위한 절차 밟기를 한다’는 시각과 ‘결국에는 공천을 줄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 엇갈린다. 정 대표 측근들과 당 지도부 내에서는 그동안 정 전 장관을 아예 공천 대상에서 배제해야 한다는 강경 목소리가 높았다. 원내대표실의 한 고위 당직자는 “대선 이후 동료와 선후배 의원들이 사정(司正) 정국에 휘둘릴 때 정 전 장관은 아무런 정치적 책임도 지지 않았다. 대선과 총선 패배에 대한 진정한 반성과 고민도 없이 당선이 보장된 과거 자신의 지역구로 출마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며 공천 배제의 당위성을 강조했다.
민주당의 한 의원은 정 대표와 정 전 장관의 관계를 ‘불구대천(不俱戴天)’이라고 표현했다. “호남 맹주의 자리, 당권, 차기 대권 후보 등 세 가지 절대 권력을 사이에 두고 두 사람이 첨예하게 맞서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정 대표가 향후 자신의 정치적 행보를 위해서라도 정 전 장관과 함께 가지는 못하리라는 뜻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정 전 장관이 공천에서 배제되고 무소속으로 출마할 경우 정 대표와 정 전 장관 모두 죽는 길’이라는 위기론에 힘이 실리고 있다. 전북지역 한 의원실 보좌관은 지역 의원들의 분위기를 이렇게 전했다.
“그동안 정 전 장관이 과연 출마할 것인지를 놓고 신경전을 벌이다, 결국 정 전 장관이 출마를 결심하자 당 전체가 혼란에 빠진 상태다. 정 대표가 정 전 장관을 공천에서 배제할 경우 그 후폭풍을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다. 정 대표 본인이 누구보다 이 점을 잘 아는 만큼, 결국 정 전 장관을 공천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 대세다. 정 대표가 설마 무덤을 파겠는가.”
이 보좌관은 또한 “다만 정 대표 측은 막판까지 고심을 거듭하는 것처럼 행동함으로써 이번 기회에 정 전 장관을 최대한 흠집 내려 할 것”이라고 말했다. 당권파로 분류되는 송영길 최고위원이 정 전 장관을 향해 “제2의 이인제가 될 사람”이라고 악담을 퍼붓는 게 그 일환이라는 것. 일각에서는 그동안 대여협상 과정에서 막판에 흐지부지 타협하고 끝내버린 정 대표의 성격을 지적하면서 “정 전 장관과 막판 대타협을 할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한다.
정 전 장관이 공천에서 배제되든, 공천받아 원내에 진출하든 민주당은 이번 재보선 이후 극심한 후유증에 시달릴 수밖에 없으리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민주당으로서는 인천 부평을에서 패배할 경우 이번 선거 전체에서 진 것이나 다름없다. 당장 정 대표와 당 지도부는 당내 비주류뿐 아니라 정 전 장관 측으로부터 사퇴 압력을 받을 것이다.
여기에 5월 말로 예정된 원내대표 선거를 앞두고 정 대표 측과 정 전 장관 측으로 세력이 갈려 원내 주도권을 차지하기 위한 치열한 다툼이 예상된다. 원내대표 선거를 앞두고 가장 활발히 움직이는 이강래 의원이 정 전 대표 측의 대표주자다. 당내 비주류이던 이종걸 의원은 정 전 대표 측의 도움을 받아 원내대표에 도전하겠다는 전략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정 대표 측 후보로는 김부겸 의원이 거론된다. 지난해 원내대표 선거 때 현 원혜영 원내대표와 후보단일화를 하면서 차기 선거 때 지지를 약속받았다는 후문이다. 이번 재보선 결과는 원내대표 선거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한편 당내 일각에서는 한화갑 전 대표와 이해찬 전 총리 등 당 외곽에서 신당 창당을 추진하는 정치세력들이 재보선 이후 당내 갈등을 부추길 가능성도 우려하고 있다.
친李 - 친朴, 선거 후 속앓이 끙끙
![커가는 鄭 태풍 (민주당) … 불붙는 집안 싸움 (한나라당)](https://dimg.donga.com/egc/CDB/WEEKLY/Article/20/09/03/27/200903270500017_1.jpg)
지난 1월 서울 여의도 한나라당사에서 열린 최고중진연설회의에 참석한 박근혜 전 대표(가운데)가 박희태 대표(오른쪽)의 말을 듣고 있다.
박희태 당 대표가 울산 북구에서 출마하고, 당 지도부와 박근혜 전 대표 진영이 경북 경주에서 정면승부를 벌일 경우 선거 이후 후유증이 엄청날 것으로 예상됐다. 이번 재보선이 이명박 정부에 대한 중간평가에 무게가 실리면서 한나라당과 정부에 부담이 가중될 뿐 아니라, 친이와 친박 진영의 파열로 자칫 당이 깨지는 최악의 상황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행스럽게도 박 대표가 울산 북구 출마를 포기하고, 박 전 대표가 경북 경주의 친박계 정수성 후보와 일정한 거리를 두면서 한나라당으로서는 부담을 크게 줄였다. 하지만 박 전 대표의 지원사격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박 전 대표 측은 이번 재보선을 앞두고 입을 굳게 닫았다. 친박계 이정현 의원은 “이번 선거는 당 지도부 중심으로 치러져야 한다”는 원칙론만 피력한 채 “선거에 대해서는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않겠다”며 일절 언급을 피했다.
친이계 측은 친박계를 자극하지 않기 위해 애쓰는 인상이다. 친이계 현경병 의원은 “박근혜 전 대표와 경북 경주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한 정수성 후보의 관계가 약한 것으로 안다”면서 “박 전 대표가 정 후보의 출판기념회에 간 것은 아마도 오랜 인연에 대한 신세를 갚는 정도의 의미로 이해한다”고 말했다. 박 전 대표나 친박계가 한나라당 후보를 돕지는 못할망정 상대 후보 편에 설 것이라고는 생각하고 싶지 않다는 뜻이다.
만일 한나라당이 이번 재보선에서 패배한다면 어떤 후유증이 나타날까. 한나라당 내에서 패배 책임론을 둘러싸고 친이계와 친박계 간 갈등이 표면화할 것으로 전망하는 이들은 드물다. 대신 서로에 대한 심적 갈등이 심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국회의장실 이재성 정무보좌관은 “이번 선거는 당 지도부 중심으로 치러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고, 비록 선거에서 패배하더라도 친박 측에서 비판할 수 없는 구도”라고 말했다. 현경병 의원은 “선거에서 지든 이기든 친이계나 친박계 양 진영 모두 불편한 감정을 드러내지 못한 채 마음속에만 담아둘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