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르키예 대표 온천 유적지 파묵칼레

[재이의 여행블루스] 석회 함유한 온천수 1만4000년에 걸쳐 흘러내려

  • 재이 여행작가

    입력2025-03-15 09: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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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튀르키예는 고대부터 화산 폭발과 지진이 잦았던 데다, 로마시대부터 목욕 문화가 발달해 현재도 유서 깊고 물 좋은 온천이 많다. 그중에서도 히에라폴리스와 함께 유네스코 세계복합유산에 등재된 파묵칼레는 튀르키예 최고 비경과 수질을 자랑하는 온천 유적지다.

    새하얀 소금산과 에메랄드빛 호수

    온천수가 흘러내리면서 마치 계단식 논처럼 각기 다른 형태의 자연 온천장을 만들었다. [GettyImages]

    온천수가 흘러내리면서 마치 계단식 논처럼 각기 다른 형태의 자연 온천장을 만들었다. [GettyImages]

    파묵칼레는 튀르키예어로 목화를 뜻하는 ‘파묵(Pamuk)’과 성을 뜻하는 ‘칼레(Kale)’가 합쳐진 말로, ‘목화의 성’을 의미한다. 석회를 함유한 온천수가 약 1만4000년에 걸쳐 흘러내리며 산비탈을 하얀 탄산칼슘 결정체로 뒤덮은 모습이 마치 목화를 쌓아놓은 것처럼 보였던 모양이다.

    파묵칼레는 땅속에서 뿜어져 나온 온천수가 아래로 흘러내리면서 마치 계단식 논처럼 각기 다른 형태의 자연 온천장을 만들어냈다. 또 온천수에 함유된 풍부한 미네랄이 이곳에 눈부시게 하얀 석회질을 덧씌웠다.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새하얀 소금산과 기하학적 곡선의 에메랄드빛 호수(‘미니 노천’ 혹은 ‘테라스풀’이라고 부른다)가 보인다. 물이 얼마나 곱고 예쁜지 당장이라도 몸을 던지고 싶은 충동이 일어난다. 아침, 점심, 해 질 녘 빛에 따라 물 색깔이 달라지니 인생사진을 남기고 싶다면 최대한 오래 머무는 것을 추천한다. 테라스풀을 떠받치는 고드름 모양 종유석도 온천수에 섞여 있는 석회 성분이 침전돼 생겨난 것으로 이 또한 특별한 볼거리다.

    파묵칼레 온천수는 류머티즘, 피부병, 심장병, 신경통, 소화기장애 등 각종 질병을 치유하는 효험이 있다고 알려지면서 로마시대부터 사람들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특히 로마시대에는 황제와 귀족은 물론, 이집트 여왕 클레오파트라까지 심신의 치유를 위해 이곳을 찾아 목욕을 즐기고 사랑을 나눴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도 전해진다.

    하지만 지난 세기 관광지로 개발되고 1980년대 이후 파묵칼레 인근에 생겨난 호텔들이 너무 많은 온천수를 뽑아 쓴 탓에 산등성이에 흘러넘치던 수량이 급격히 줄었다. 예전에는 테라스풀에서 온천욕을 즐기는 것이 파묵칼레 관광의 백미였지만 1988년 유네스코 세계복합유산으로 지정된 이후에는 석회층 보존을 위해 입욕이 금지됐다.

    그래서 지금은 수영복을 입은 관광객들이 파묵칼레를 따라 줄지어 올라가는 장관을 더는 볼 수 없다. 그 대신 맨발 산책과 함께 허용된 구역에서 세수와 족욕은 가능하다. 물 표면에 푸른빛이 돌아 무척 차가울 것 같지만 막상 발을 담그면 따뜻하다. 섭씨 35℃ 탄산수가 발목을 살랑살랑 간지럽히는데 그 촉감도 좋다. 전 세계에서 모여든 여행객들은 온천수에 의해 석회암 수로가 만들어진 곳에 발을 담근 채 서로의 사진을 찍어주거나 이야기를 나눈다.

    수로 바닥은 탄산칼슘 때문에 딱딱하면서도 온천수의 미네랄 때문에 만질만질하다. 평소 맨발 걷기를 자주 하지 않았다면 그 촉감이 어색하고 찌릿찌릿 아플 수 있다. 또 미끄럽기도 하니 적응될 때까지는 살얼음판 위를 걷듯이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그리고 통행로 밖으로는 절대 나가지 말아야 한다. 경관을 살리려고 별도의 안전 펜스를 설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테라스풀에 몸을 담그지 못해 아쉬웠다면 ‘클레오파트라 수영장’ 혹은 ‘테르메 온천욕장’으로 불리는 ‘앤티크풀’을 이용해보자. 2500년 역사를 가진 앤티크풀은 지진으로 무너진 히에라폴리스 유적을 온천수가 덮으면서 물속에 로마시대 대리석 기둥, 성벽에서 떨어진 돌조각 등 유적이 가득해 파묵칼레의 독특한 자연과 히에라폴리스의 아득한 역사를 한꺼번에 느낄 수 있다.

    로마시대 유적 들여다보며 온천욕

    로마시대 대리석 기둥 등이 물속에 잠겨 있는 앤티크풀. [GettyImages]

    로마시대 대리석 기둥 등이 물속에 잠겨 있는 앤티크풀. [GettyImages]

    앤티크풀은 수온이 사계절 내내 35℃를 유지하는 탄산 온천으로, 미네랄 성분이 풍부해 피부 알레르기나 염증이 완화된다. 따뜻한 천연 온천에서 하루 종일 망중한을 즐기며 느긋하게 치유의 시간을 보내도 좋겠다. 자연이 만들어낸 경이로움 그 자체인 파묵칼레를 즐기다 보면 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로 빠르게 해가 저문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이제 파묵칼레만큼 독특한, 자연이 빚어낸 명소 ‘카파도키아’로 떠날 차례다. 수도 앙카라에서 275㎞ 떨어진 카파도키아는 마을 전체가 버섯 모양의 기묘한 바위로 가득한 곳이다. 뾰족하게 올라온 버섯바위들 사이로 요정이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것 같은 신비함 때문에 전 세계 여행자가 지금 이 시간에도 끊임없이 몰려든다.

    ※ 주간동아 1482호에서 ‘지구가 아닌 다른 행성, 카파도키아’ 이야기를 만날 수 있습니다.

    재이 여행작가는…
    세계 100여 개국을 여행하며 세상을 향한 시선을 넓히기 시작했다. 지금은 삶의 대부분을 보낸 도시 생활을 마감하고 제주로 이주해 글을 쓰고 사진을 찍으며 다양한 여행 콘텐츠를 생산하는 노마드 인생을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