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69

2009.01.13

대학도 튀어야 산다

독특한 카피·차별화 이미지 광고 홍수… 생존경쟁 본격화

  • 구가인 기자 comedy9@donga.com

    입력2009-01-07 17:2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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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도 튀어야 산다

    로스쿨의 등장으로 법대가 없어진 최근에는 경영대의 ‘지존’ 자리를 두고 대학 간 홍보 경쟁이 치열하다. 오른쪽은 얼마 전 화제를 모은 고려대 경영대 광고(위)와 연세대 경영대 광고.

    “교수님, 정말로 고대 경영이 서울대보다 더 좋습니까?” “어머님, 하나 빼고 다 좋습니다.”

    “선배님, 정말로 하나 빼고 다 좋아요?” “당연히 고대 경영이 서울대보다 더 좋아요!”

    최근 고려대 경영대가 주요 일간지에 낸 2009년 정시모집 광고, 일명 ‘하나 빼고’ 광고가 눈길을 끌었다. 고려대 경영대의 장학금 및 각종 혜택을 담은 이 광고는 신문을 좌우로 나눠 학부모와 교수, 고3 수험생과 고려대 경영대 재학생이 질문을 주고받는 틀로 제작해 대학광고로선 파격적인 형식을 취했다. 물량 공세도 남달랐다. 고려대 측에서 공식적으로 광고비를 공개하지는 않았으나 광고 관련 업체 관계자들은 “광고가 나간 빈도, 크기나 배열 위치 등을 고려하면 20억원 정도는 들었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특히 경영대 장하성 학장이 아이디어를 낸 것으로 알려진 ‘고대 경영이 하나 빼고 서울대보다 낫다’는 카피가 화제를 불렀다. 그 ‘하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 누리꾼(네티즌)들의 추측이 난무했고, 전통적으로 상경계열이 강세인 라이벌 학교 연세대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하지 않고 서울대와 노골적으로 비교한 터라 두 대학을 모두 자극했다.

    고대 비교광고 서울대·연대 자극



    일부 언론매체에서는 서울대가 광고의 위법성과 관련해 공정거래위원회에 문의했다고 보도했고, 젊은 층이 많이 모이는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안중에도 없다’는 카피 아래 연세대를 상징하는 커다란 독수리가 창공을 뒤덮고 멀리 고려대를 상징하는 조그마한 호랑이가 서 있는 패러디 비교 광고도 떠돌았다(연세대 측은 이 광고가 텍스트는 연세대 경영대의 실제 광고를 따온 것이지만 나머지 이미지는 출처를 알 수 없다고 밝혔다).

    광고 한 편이 서울대-연세대-고려대 사이에 이상 기류를 흐르게 하자 이 광고에 대한 고려대 측의 반응은 조심스럽다. 고려대 경영대의 한 관계자는 “학교 내에서도 (광고에 대해) 찬반 양론이 있다”면서 “대학이 기업체처럼 비교광고를 한다는 비판적인 이야기도 있고, 눈길을 끄는 표현이 좋았다는 평가도 있다”고 말을 아꼈다.

    그러나 이 같은 광고 열기가 비단 고려대만의 드라이브는 아니다. 연세대 역시 최근 들어 일간지에 내보내는 광고의 규모가 커졌다. 연세대 대외협력처 김동훈 처장은 “교육 서비스를 제공하는 대학이 상품을 파는 기업처럼 광고를 하는 게 옳은 일인지에 대한 비판이 있기에 과도한 경쟁은 피하려 한다”면서도 “광고라는 게 재학생을 비롯한 동문들의 사기와 관련돼 있어 고려대 광고가 나오면 ‘우리 학교는 왜 안 하냐’는 반응을 일으킬 수 있다”고 그 필요성을 설명했다. 광고 실무를 담당한 관계자는 “광고를 통한 외부 커뮤니케이션에 앞서 내부 구성원들이 학교의 실적을 공유하는 데 더 주력했다”면서 “동문들에게 프라이드를 심어주고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생기는 홍보 효과가 클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두 대학 모두 경영대 광고에 집중한다는 것도 공통점이자 전에 없던 변화다. 고려대와 마찬가지로 연세대도 지난해부터 ‘연세경영 No.1’이라는 카피를 내세운 경영대 광고를 내보내고 있다. 특정 단과대 광고가 단독으로 등장하는 것은 다른 단과대를 자극할 수 있다는 점에서 예전에는 시도되지 못했던 일. 로스쿨의 등장으로 법대가 사라지면서 두 대학 모두 ‘경영대’를 간판으로 내세우게 됐기에 좀더 우수한 학생 유치를 위한 시도로 이해할 수 있다.

    서울 소재 중상위권 대학들의 광고 경쟁도 뜨거워지고 있다. 한 사립대학 관계자는 “최근 5년 사이 광고비가 30% 정도 늘었다”면서 “어느 때보다 대학 생존을 위한 마케팅이 중요해진 상황이라 광고의 비중이 커질 수밖에 없다”고 털어놨다.

    “전체 인구는 점차 줄고, 갈수록 외국 유학을 가거나 대학에 진학하지 않는 비율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이미 20~30개 대학이 정원 미달 상태인데 앞으로는 더 늘어나겠죠. 10등 안에 못 들면 미래를 장담할 수 없는 겁니다. 대학 처지에서는 좋은 학생을 뽑는 게 영업 마케팅이고, 그 한 방편이 광고라고 할 수 있죠. 심지어 연·고대가 저렇게 치고받는 판에 그 아래 사립대들은 오죽하겠습니까?”(사립대 관계자)

    대학광고 시장의 규모가 커졌을 뿐 아니라 광고 형태도 그만큼 다양해졌다. 대학광고를 주로 맡아온 광고대행사인 광고플러스 김원규 대표는 “4~5년 전부터 서울 소재 중상위권 대학의 광고 경쟁이 시작됐다”면서 “대학광고를 둘러싸고 중급 광고기획사들의 경쟁도 치열해졌다”고 말했다.

    대학 라디오 광고 최근 3배 가까이 늘어

    “일부 대학들은 경제지에도 대학광고를 넣는데, 이건 학생모집을 위한 게 아니라 기업에 자신의 대학을 알리고 자기 학교 출신 졸업생들을 홍보하기 위해서죠. 최근 연·고대의 경우 국내 광고뿐 아니라 ‘더 타임스’ ‘파이낸셜 타임스’ 같은 유명 해외 매체 광고도 시작했어요. 지금 당장 학생들을 끌어오겠다기보다 학교의 이미지를 홍보하고 그 신문을 보는 오피니언 리더들에게 어필하는 거죠.”

    숙명여대 홍보실장을 맡고 있는 한규훈 교수(광고학)는 “숙대에서 10년 전 ‘울어라 암탉아’ ‘나와라 여자대통령’을 기획할 당시만 해도 (신입생 모집 정보를 알리기 위한 광고 외엔) 이미지 광고라는 게 전무했는데, 요즘은 대부분의 대학이 이미지 광고 위주로 흐르는 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달라지지 않은 것도 있다. 한 교수는 ‘적정선을 지키는 효율성’을 강조했다.

    “대학광고는 특수한 면이 많아요. 상품광고처럼 많이 할수록 효과가 나오는 건 아니죠. 상위권 대학의 경우 광고를 많이 하면 내부에선 ‘우리는 (광고) 안 해도 학생들이 몰리는데 비싼 돈 들여 광고를 왜 하냐’는 원망을 듣기도 하고, 외부로부터는 ‘요즘 위기인가’ 하는 의혹도 살 수 있죠.”

    대학광고를 싣는 매체가 여전히 신문과 같은 인쇄매체에 한정돼 있다는 점도 변하지 않은 ‘룰’이다. 일부 지방 사립대학과 사이버대학들이 라디오 광고를 활발히 하지만 서울 소재 중상위권 대학이 라디오 광고를 하는 경우는 드물다. 한국방송광고공사 강이근 과장은 “과거에 50개 남짓하던 대학 라디오 광고가 최근 3배 가까이 늘었지만 대부분 지방대학 광고”라면서 “일부 스폿광고를 제외하면 비용이 비싼 때문인지 아직 TV 프로그램 광고에 본격 진출한 대학은 없다”고 말했다.

    서울의 한 중위권대 관계자는 “소위 ‘레벨’이 다른 학교, 예컨대 명문대학이 지방대 광고와 같이 나오면 내부 구성원들의 반발이 크다”며 “라디오나 지하철 광고는 이처럼 역효과를 낼 우려가 있어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제 TV 프로그램 광고만이 남아 있으니 조만간 유명 사립대에서 (TV 광고를) 하지 않겠느냐”면서 “효과가 크겠지만, 인쇄매체 광고보다 상업적인 느낌을 줘 반발을 살 수 있기에 다들 섣불리 나서지 못할 뿐”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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