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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 | 오동진의 ‘영화로 사는 법’

뱀파이어 소녀의 고독한 러브스토리

토마스 알프레드손 감독의 ‘렛 미 인’

  • 오동진 영화평론가 ohdjin@hanmail.net

뱀파이어 소녀의 고독한 러브스토리

뱀파이어 소녀의 고독한 러브스토리
브램 스토커가 탄생시킨 드라큘라는 인간, 특히 여성의 마음속 어두운 욕망을 대변한다. 이 뱀파이어 백작이 출현한 것은 1800년대 후반의 빅토리아 시대다. 빅토리아 왕조라면 코르셋으로 허리를 꽉 죄듯 여성들을 성적, 사회적으로 억압하던 시대다. 드라큘라는 음습하고 차가운 밤에 창밖을 돌아다니며 여성들의 억눌린 성적 욕망을 자극하면서 일탈을 부추기는 존재였다. 드라큘라가 여성의 목에 이빨을 박고 피를 빠는 장면은 당시 여성들에게는 성적 판타지의 극단을 상상케 하는 것이었다. 여성들에게 ‘흡혈을 당한다’는 것은 곧 직접적인 ‘인터코스’를 연상케 하는 것이었으므로. 드라큘라가 피를 빠는 장면에서 흔히 여성들이 고통스러운 척 황홀경에 빠져드는 표정이 되는 것은 그 때문이다.

따라서 드라큘라, 뱀파이어, 흡혈귀의 존재가 자꾸 문화 아이콘으로 등장하는 것은 역설적으로 지금의 시대가 얼마나 억압돼 있는지를 보여준다. 사람들은 억눌리면 억눌릴수록 마음속 깊은 욕망을 꺼내려고 애쓴다. 그렇다면 세상은 왜 뱀파이어를 자꾸 불러들이는 것일까. 여전히 사람들이 억눌려 있기 때문일까.

폭력적으로 느껴지지 않는 흡혈 장면

12살 소년이 같은 나이의 뱀파이어 소녀와 사랑에 빠진다는 내용의 스웨덴 영화 ‘렛 미 인’(감독 토마스 알프레드손)은 그와는 조금 다른 궤도에 서 있는 작품이다. 이 영화는 세상의 폭력이나 인간의 악마성과 싸우기 위해서는 뱀파이어의 힘이라도 빌려야 한다고 말한다. 뱀파이어를 소재로 하는 영화인 만큼 중간중간 피가 솟구치는 살육의 장면이 끼어들지만 이상하게도 뱀파이어 소녀의 모습은 결코 폭력적이지 않다. 그녀의 말처럼 자신은 ‘생존을 위해 사람을 죽일 뿐’ 세상사람들처럼 증오, 질투 따위의 악한 감정으로 그러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로 영화에서 진짜 폭력적이라고 느껴지는 장면은 주인공 소년이 또래 아이들에게 폭행과 따돌림을 당하는 모습이지 뱀파이어의 흡혈 과정이 아니다. 이 ‘영화 속 아이들 = 세상사람들’의 폭력이야말로 더 악마적이다.

얼굴이 하얗다 못해 창백한 꼬마 오스칼(카레 헤데브란트)은 엄마와 둘이서만 살아가는 외로운 소년이다. 오스칼은 같은 반 아이들에게 늘 폭행을 당한다. 친구도 없이 자신이 사는 아파트 앞 공터에서 매일 홀로 지내는 오스칼에게 어느 날 이상야릇한 느낌의 소녀가 접근한다. 자신의 이름을 엘리라고 밝힌 소녀(리나 레안데르손)는 살벌하게 추운 바깥 날씨에도 아랑곳없이 맨발에 반소매 차림이다. 오스칼은 점점 그녀의 매력에 빠지게 되고 결국 사귀자고 고백한다. 하지만 곧 오스칼은 엘리가 사람이 아닌 다른 존재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오스칼과 엘리가 사랑에 빠지는 것은 브램 스토커가 탄생시킨 드라큘라 백작의 얘기처럼 호색적인 동기나 욕망 때문이 아니다. 둘의 사랑은 좀더 절박한 이유가 있다. 둘 다 외롭고 힘들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 따돌림을 받는 오스칼이나 인간의 피를 빨아먹고 살아야 하는 흡혈귀 소녀 엘리는 소외된 아이라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엘리는 오스칼처럼 우리가 세상 밖으로 밀어낸 존재들을 대표한다. 영화는 소외의 문제에서 어린아이들의 세계에까지 만연한 폭력 문제, 인간 내면에 잠재해 있는 악마성 등 몇 가지의 주제를 중층적으로 쌓아낸다. 영어 원제목 ‘렛 더 라잇 원 인(Let the Right One in)’을 의역하면 ‘나를 네 마음속에 넣어줘’이다. 사람은 자신의 마음속에 무엇을 초대하고 받아들이냐에 따라 다른 존재로 전이된다.

엘리는 오스칼의 방문 앞에서 ‘나는 네가 초대해야만 들어갈 수 있다’고 말한다. 오스칼이 엘리에게 들어오라고 하는 순간 그에겐 이제까지와는 다른 삶이 펼쳐진다. 이 외로운 소년은 결국 소녀와 절박한 사랑에 빠진다. 사랑은 오스칼처럼 고독 속에서 찾아온다. 하지만 사랑한다고 고독에서 벗어나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사랑은 위대한 고독이자 혼자만의 선택이고 결단이다.

‘렛 미 인’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는 엘리의 아버지처럼 보이는 남자가 자신 때문에 그녀의 정체가 탄로나려 하자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모습이다. 이 남자는 엘리를 대신해 사람들을 죽여서 그녀에게 피를 공급하다 이 엽기적인 살인극이 결국 꼬리가 밟히자 얼굴에 염산을 뿌려 정체를 숨긴다. 경찰에 잡힌 채 병원에 후송된 남자는 깊은 밤 엘리가 찾아오자 아무 말 없이 그녀에게 자신의 목덜미를 내준 뒤 창문 밖으로 투신한다.

사랑은 자신을 ‘죽이는 것’

북구 겨울의 스산하고 황량한 풍경과 함께 ‘렛 미 인’이 보는 사람들의 가슴속에 차가운 바람을 지나가게 하는 것, 쉽게 자리를 털지 못하고 눈물 흘리게 만드는 것은 오스칼의 운명이 결국 투신자살하는 늙은 남자와 같은 길을 걷게 될 것이라는 예감 때문이다. 늙은 남자도 수십 년 전 12살 때 뱀파이어 소녀를 만났을 것이다. 오스칼처럼. 사랑이 위대한 고독이라고 얘기하는 건 그 때문이다. 이 엄혹한 겨울의 시대에 우리 역시 마음속에 뱀파이어를 초대할 것일까. 극장 밖 풍경이 새삼스러운 모습으로 다가설 것이다.



또 한 편의 뱀파이어 영화 ‘트와일라잇’


뱀파이어 소녀의 고독한 러브스토리

‘트와일라잇’

극장가에 걸려 있는 또 한 편의 뱀파이어 영화 ‘트와일라잇’은 할리우드 영화답게 로맨스가 제격인 작품이다. ‘해리포터’ 시리즈의 광팬들이었던 로틴(low teen)들이 하이틴(high teen)으로 성장하자 할리우드도 재빨리 말을 바꿔탔다.

이제 더는 조앤 K.롤링과는 볼 일이 없어졌다. 이들은 이제 할리퀸 류의 소설 ‘트와일라잇’ 3부작을 쓴 스테프니 메이어와 친해질 필요가 생긴 것이다. ‘트와일라잇’에 나오는 17살짜리 뱀파이어 에드워드는 초절정 꽃미남이다.

그는 흉측하게 피를 빨아먹는 장면을 한 번도 보이지 않는다.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이 뱀파이어 꽃미남을 사랑하게 된 같은 나이의 소녀 이사벨라가 에드워드에게 피를 빨려 그와 영생을 같이하고 싶어하는 부분이다. 하지만 정작 에드워드는 그녀의 목에 이빨을 박지 않는다. 자신과 같은 괴물을 만들지 않겠다는 것이다.

인간으로서의 삶을 포기하면서까지 피를 빨리고 싶어하는 이사벨라의 사랑이 진짜 사랑일까, 아니면 흡혈의 충동을 참아가면서까지 그녀를 인간으로 남게 하려는 에드워드의 사랑이 진짜 사랑일까.

그것 참 헷갈리는 얘기지만 이 영화의 매력은 그 아슬아슬한 간극에서 찾아진다.




주간동아 2008.12.30 667호 (p84~85)

오동진 영화평론가 ohdji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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