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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경 기자의 It-Week|첫 번째 쇼핑

선물,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상품권만 같기를!

  • holden@donga.com

선물,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상품권만 같기를!

선물,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상품권만 같기를!

상품권 박스를 한국의 ‘타샤’로 불리는 자연주의 살림꾼 효재 선생님께서 매듭으로 묶어주셨어요. 보자기로 싸도 예쁘더군요.

요즘 ‘잇백(It-Bag)’ ‘잇슈즈’ ‘잇걸’이니 하는 말, 많이 들어보셨죠? 유행하거나 유행 예감 100%라서 하나쯤 들어줘야 하는 가방이나 신발을 ‘잇백’ ‘잇슈즈’라고 하잖아요. ‘잇걸’은 이렇게‘잇(It)’한 물건으로 휘감은 여성들을 말하고요. 1930년대라면 ‘모던 걸’인 셈인데, 당시 ‘못된 걸’로 비난받았던 것처럼 ‘잇걸’은 때로 ‘된장녀’로 번역되기도 해요.

어쨌든 ‘잇’이 접두사처럼 붙은 물건들은 쇼퍼홀릭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고 마케터들을 긴장하게 하며 대중의 귀를 솔깃하게 해요. 쇼퍼홀릭들은 쇼핑 욕구에 불타오르고, 마케터들은 소비의 취향을 분석하며, 대중은 호기심을 감추지 않으니까요. 한 주, 한 달, 한 해를 정리하는 고전적인 방법은 그 시기에 벌어진 사건과 주인공을 내세우는 것이지만, 그 시기의 ‘잇’들이 무엇인지를 알아보는 일도 유용할 거예요.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쇼퍼홀릭으로서요.

저의 이번 주 ‘잇 아이템’은 선물이었어요. 추석이니까요. 뭘 샀느냐고요? 상품권요. 실망이라고요? 저도 상품권을 선물이랍시고 주거나 받으며 좋아죽는 사람들이 보기 싫어죽겠던 시절이 있었어요. 게다가 음전한 전용박스에 담겨 마치 전표 아닌 척, 무명 손수건의 자태를 하고 있는 꼴은 가증스럽기도 했죠. 그땐 선물이란 쓸모없을수록 가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미술작가가 전시장에서 중고원피스를 랩으로 감아 파는 야릇한 뭉치를 2만원에 사서 미술 문외한인 친구에게 준 적도 있고, 별을 많이 보라며 앤티크 망원경을 평범한 직장인에게 선물한 적도 있어요. 그나마 실용적인 선물로는 알로하풍의 티셔츠, 무거워서 들기 어려운 돌접시, 베트남 요리 소스, 와인온도계, 영국 여행길에 사온 전화기, 중고 메탈 구슬백 등등이 있죠.

그런데 선물 포장을 연 사람들이 말도 하지 못할 만큼 환하게 웃었던 건 당황스러움 때문은 아니었을까 싶어요. 이후 그 선물에 대한 얘기를 듣지 못했어요. 랩을 칼로 뜯었다는 친구는 “그 원피스 못 입겠더라”고 하더군요. 망원경을 받은 샐러리맨은 ‘내가 그렇게 무미건조한가’라고 비관했을지도 몰라요. 벼룩시장에서 산 영국 전화기는 유럽연합(EU) 내에서만 된대요. 선물이란 결국 상대방에 대한 나의 바람이란 걸 몇 년 전에야 깨달았어요. 며칠 전 여성들끼리 선물 얘기를 했는데 흥미롭게도 그들 모두 시어머니, 남편, 남자친구에게 앞치마를 선물받은 적이 있더라고요. 그런데 모두 기분이 좋지 않았대요. 스튜어디스의 앞치마가 마음에 들어 직접 구입한 적이 있는 여성도 시어머니가 선물한 앞치마는 보기 싫다더군요. 한 남성은 크리스찬 디올 광고(모델 샤론 스톤)를 보고 그 신상 립스틱을 아내에게 선물했다가 대판 싸웠대요. “생일 축하해, 무지방 저칼로리 초콜릿 케이크야”라고 말하는 연인이 있다면 그 얼굴을 케이크에 박아버려야 하지 않을까요? 나의 뱃살이 그렇게 거슬렸어?



수많은 선물쇼핑을 나 좋은 대로 한 뒤에야 자신감을 잃고, 상품권에 관대해졌어요. 부모님은 10만원짜리 상품권을 선물받으면 주변에 “이 옷 우리 딸이 상품권 선물해줘서 산 거야” “우리 애가 상품권 준 걸로 백화점 가서 식사하실라우?”라며 자랑하더라고요. 선물 총액이 수백만원대로 늘어나는 효과가 있는 거죠.

선물,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상품권만 같기를!
백화점에 가니, 상품권 사는 사람들이 정말 많았어요. 번호표를 뽑고 한참 기다렸죠. 수십, 수백 장씩(수천만원짜리 덕용세트가 나와 있어요) 사는 양복쟁이 손님들이 많았어요. 그들은 그다지 즐겁지 않은 표정이더군요.

요즘 한국의 살림꾼으로 유명한 효재 선생님께 상품권 상자를 가져갔더니 예쁘게 묶어주셨어요. 떨떠름하던 기분이 말끔해졌어요. 대통령도 이번 추석에는 소년소녀가장들에게 상품권을 선물한대요. 상품권, 미워하지 말고 선물 쇼핑할 때 고려해보세요.



주간동아 2008.09.16 653호 (p50~50)

holde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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