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26

2008.03.11

라울은 쿠바를 춤추게 할까

고달픈 쿠바인들 변화욕구 강렬 … 미국 경제제재 여전, 과감한 정책 추진엔 회의적

  • 김연철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연구교수 dootakim@hanmail.net, 신석호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북한학 박사 kyle@donga.com

    입력2008-03-05 11:5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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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울은 쿠바를 춤추게 할까

    쿠바 국기를 흔들고 있는 라울 카스트로. 그는 2월24일 형의 뒤를 이어 국가평의회 의장으로 선출됐다.

    쿠바에서 피델 카스트로의 시대는 끝났다. 피델의 동생 라울의 시대가 개막했다. 라울의 국가평의회 의장 선출은 이미 오래전부터 예상됐던 일이다. 1997년 10월 열린 당대회에서 피델은 라울을 후계자로 공식 지정했다. 라울은 이후 당과 정부, 군에서 형식적으로나 실질적으로나 공인된 후계자였다.

    라울은 누구인가? 1931년생인 그는 대학생 시절 쿠바 내 청년당원들을 이끌었으며 53년 몬카다 전투에 참가했다 투옥된 경험이 있다. 쿠바혁명이 성공한 이후 라울은 ‘세계 최장기 국방부 장관’으로 불릴 정도로 주로 군부에서 경력을 쌓았다. 그러나 라울의 성향은 실용주의로 분류된다. 라울은 86년 군이 운영하는 기업들 일부에서 처음으로 경제개혁을 시도했다. 그는 이들 기업이 직원을 해고할 수 있도록 허용했으며, 기업의 처분권 또한 허용하는 등 자유화 조치를 취했다. 91년 4차 당대회에서는 경제개혁에 우호적인 입장을 표명했다.

    실용주의 성향 미국의 ‘마이애미 정치’ 극복이 관건

    라울의 쿠바는 어디로 가게 될 것인가? 급격한 변화는 예상하기 어렵다. 우선적으로 미국과의 관계 정립과 경제정책 방향이 주목된다. 쿠바는 사회주의권 붕괴 이후 소련의 공백을 틈타 비동맹 외교의 맹주로 활약해왔다. 그러나 역시 중요한 것은 미국과의 관계다. 미국의 포괄적인 경제제재는 지속되고 있으며, 마이애미 중심의 쿠바 망명자들이 주도하는 미국의 대(對)쿠바 강경책도 오랫동안 변하지 않고 있다. 라울의 쿠바가 대미관계 개선을 모색할 수는 있겠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미국의 대쿠바 정책이다. 차기 미국 행정부가 누가 될지, 민주당이 된다 해도 전통적인 ‘마이애미 정치’를 극복할 수 있을지는 두고 볼 일이다.

    라울 체제가 좀더 신경을 쏟아야 할 부분은 경제다. 비록 쿠바가 북한과 달리 90년대 초반부터 과감한 개혁개방 정책을 단행했지만, 중국이나 베트남 등 경제적으로는 자본주의를 도입한 시장사회주의 국가와 비교하면 아직 갈 길이 멀다는 평가를 내릴 수밖에 없다. 쿠바에 비판적인 미국 측 학자들은 쿠바 경제를 ‘문지기 국가’ 또는 ‘분절적 개혁’이라고 비난하기를 서슴지 않는다. 간단히 말해 국가 스스로 독점적인 자본가 역할을 맡아 개혁 개방할 부분과 그렇지 않을 부분을 결정하고, 충성도 높은 인민만 선별적으로 수익성 높은 태환페소 경제의 이득을 보게 함으로써 체제를 유지한다는 것이다. 국가는 외화에 대한 국가 독점과 자영업에 대한 강력한 규제 등을 통해 경제를 장악하고 있다. 기업 중심의 민간주도가 아니라, 서비스업 중심의 국가주도형 경제성장을 꾀하고 있다. 2007년 쿠바의 국내총생산에서 관광 등 서비스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76%나 된다.



    라울은 쿠바를 춤추게 할까

    쿠바 수도 아바나시의 정유공장 전경. 라울이 과감한 경제개혁을 이루지는 못할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77세 고령의 임시체제 … 라울 이후 후계자 더 궁금

    쿠바 정부는 일부 시장경제 영역에 대한 과세나 대외 부문에 대한 노동 통제를 통해 재정을 확충한다. 북한의 개성공단과 마찬가지로 외국인 기업은 국가를 통해 쿠바 노동자를 고용해야 하고, 임금도 노동자가 아닌 국가를 통해 지급해야 한다. 국가는 이 과정에서 외화와 내화의 가치 차이를 이용해 ‘부당이득’을 챙긴다. 한 외국인 기업에 근무하는 쿠바인 에르난데스는 “회사가 국가에 지급하는 임금은 월 1000달러 가까이 되지만, 국가가 내게 주는 돈은 단 300페소”라며“비록 국가가 교육 의료 등 사회복지 비용을 부담하지만 나도 내가 일한 만큼의 대가를 받고 싶다”고 불만을 털어놓았다. 많은 쿠바인들은 “국가가 통제를 풀어주면 우리도 중국이나 베트남처럼 잘살 수 있다”고 주장했다.

    에르난데스 등의 불만과 추가 개혁개방에 대한 요구는 쿠바의 새로운 지도자 라울이 직면한, 변화에 대한 욕구의 일단에 불과하다. 쿠바 경제가 안고 있는 이중성은 라울이 대처해야 할 근본적인 환경요인이다. 쿠바 경제의 장기적이고도 안정적인 성장을 위해 라울은 태환페소와 페소 경제권의 격차를 줄여야 한다. 환율 차이로 인한 소득격차 때문에 쿠바 사람들은 누구나 페소 경제권에서 이탈해 달러 경제권으로 진입하고자 한다. 교수는 호텔 종업원이 되려 하고, 기술자들은 택시운전사로 전업하려 한다.

    또 번창하고 있는 2차 경제(시장 메커니즘)와 1차 경제(사회주의 경제)가 공존하는 데서 오는 모순을 극복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대외의존적인 경제의 불안정성을 피할 수 있게 대내경제의 강화를 모색해야 한다. 외국인 관광 등 서비스산업 위주의 경제에 농업, 제조업 등 기반산업을 확충하는 것이 시급하다.

    라울 체제의 쿠바 경제개혁이나 과감한 구조조정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아직 미국이 경제제재 조치 등을 유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섣부른 추가 경제개혁과 개방을 할 경우 사회주의적 질서 유지가 어렵다는 것이 쿠바 정부의 오랜 방어 논리다. 쿠바 정부는 베네수엘라 및 중국과의 관계를 유지하며 인근 해안에서의 원유 생산 확대 등에 노력을 집중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국가가 인민을 시장에 내던진 상태’인 북한 인민들보다는 나을지 모르지만 쿠바 인민들도 국가의 까다로운 통제 속에서 2차 경제를 통한 태환페소 벌이를 위해 몸을 움직여야 하는 고달픈 삶을 당분간 계속해야 할 듯하다.

    쿠바 전문가들은 오래전부터 라울 체제를 ‘임시 체제’로 규정해왔다. 라울은 피델과 다섯 살 차이로 2008년 현재 77세의 고령이다. 카스트로 이후의 후계체제가 등장했지만, 곧바로 라울의 후계체제가 어떻게 될지 물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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