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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추격자’ 경찰 비하에 참을 수 없는 분노 느꼈다”

유영철 잡은 전직 형사 강대원이 본 ‘추격자’의 허와 실

  • 강대원 전 서울지방경찰청 기동수사대장

“영화 ‘추격자’ 경찰 비하에 참을 수 없는 분노 느꼈다”

“영화 ‘추격자’ 경찰 비하에 참을 수 없는 분노 느꼈다”
영화 ‘추격자’가 화제라고 한다. 개봉 13일 만에 200만 관객을 넘겼다는 언론보도가 나왔고, 프랑스 등 외국에 팔렸다는 소식도 들린다. 그야말로 오랜만에 보는 대박 한국 영화가 아닐 수 없다.

‘추격자’가 흥행하면서 이젠 잊혀진 인물이 돼버린 ‘살인마 유영철’도 다시 세간에 화제를 뿌리고 있다. ‘추격자’의 모티프가 된 사건이 바로 유영철의 연쇄살인이기 때문이다.

나는 2004년 7월, 서울지방경찰청 기동수사대(이하 기수대) 대장으로 재직할 당시 온 나라를 시끄럽게 했던 유영철 연쇄살인사건을 맡아 해결했다. 당연히 ‘추격자’에 관심이 갈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어떤 영화일까? 영화 속에서 유영철을 잡았던 내 모습은 어떻게 그려지고 있을까 하는 궁금증으로 영화 개봉을 기다렸다. 대한민국 관객 가운데 나보다 더 이 영화를 기다렸던 사람이 있을까.

그러나 영화를 본 소감은 한마디로 ‘실망’이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분노가 치밀었다. 특히 “놈을 잡은 건 경찰도 검찰도 아니었다”는 등의 경찰 비하 발언이 서슴없이 나오는 것을 보면서 당시 초인적인 정신력으로 유영철을 체포해 진술을 받아내며 사건을 해결했던 나와 동료 형사들의 모습이 떠올라 견딜 수 없었다. 영화를 만든 나홍진 감독이 시사회장에서 기자들에게 던진 “네, (경찰을) 비하했습니다”라는 말도 내 마음에 비수로 꽂혔다.

“전직 형사가 잡았다는 설정은 지나친 픽션”



영화라는 장르의 특성은 인정한다. 픽션(fiction·#44224;繩?을 가미해야 극의 긴장감을 높이고 흥미를 더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바 아니다. 하지만 실화에 바탕을 둔 영화라는 점을 제작진이 조금만 더 생각했다면, 이 사건에 모든 것을 걸었던 형사들이 있었고 그들이 어떤 고민을 했는지를 좀더 고려했다면 좋았을 걸 하는 아쉬움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사건을 해결해야 한다는 신념 하나로 밤을 새워가며 수사했던 나와 기수대 동료들이, 그리고 긴박했던 유영철과의 두뇌 싸움이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말이다.

‘추격자’는 사건의 진실을 많은 부분에서 왜곡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놈을 잡은 것은 경찰도 검찰도 아니었다”는 대사 외에도 “살인마 유영철을 1차 검거했지만 증거 불충분으로 풀어줬다”는 부분에 이르러서는 더 이상 말이 나오질 않는다. “전직 형사가 추적해 검거했다”는 식의 설정이야 영화적 흥미 요소로 본다고 해도, 그 사건을 수사했던 형사들이 여전히 활동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런 식의 폄훼는 자칫 한국 경찰의 이미지를 손상시키고 전국 경찰의 사기를 저하시킬 뿐 아니라, 세계에서 몇 번째 안에 드는 치안 수준을 자랑하는 우리나라의 위상도 땅에 떨어뜨릴 소지가 있다는 게 내 생각이다. 굳이 4년이나 지난 사건을 재론하기 위해 펜을 드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이미 알려진 바와 같이 유영철은 부유층과 여성에게 적대감을 가진, 그야말로 사회부적응자였다. 2003년 9월 강간 등 혐의로 복역 후 출소했지만 보름도 안 돼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단독주택에 침입해 칼과 해머로 집에 있던 노교수 부부를 살해한 인물이 바로 유영철이다. 그의 살인행각은 구기동 삼성동 동대문으로 이어졌고, 노약자와 여성 등 8명이 살해됐다. 출소 후 채 두 달도 안 되는 기간에 벌어진 ‘묻지마식 연쇄살인’이었다.

그의 범행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위조한 경찰관 신분증과 수갑을 가지고 경찰관을 사칭하고 다녔던 그는 불법오락실에서의 금품갈취는 물론, 고급 승용차를 운전하는 여성을 상대로 한 금품갈취와 강간도 저질렀다. 또 2004년 3월부터는 ‘직업여성’에 대한 경멸을 이유로 전화방과 출장마사지 여성들을 자신의 오피스텔로 유인해 화장실에서 살해한 뒤 사체를 토막 내고 장기를 꺼내 먹는 등 인간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잔혹한 범죄를 저질렀다. 경찰에 검거된 2004년 7월까지 약 4개월에 걸쳐 그가 살해한 직업여성은 12명에 달했다. 유영철은 죽은 여성의 사체를 절단해 묵은 김치와 함께 묻는 치밀함도 보여 당시 수사진을 놀라게 했다.

“영화 ‘추격자’ 경찰 비하에 참을 수 없는 분노 느꼈다”

지난해 5월13일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보복폭행 사건의 수사상황을 브리핑하고 있는 강대원 전 서울시경 기동수사대장.

그러나 ‘추격자’에서는 주택가 살인사건이 전혀 다뤄지지 않았다. 단지 출장마사지 여성 2명을 상대로 살인행각을 벌인 내용만 자극적으로 묘사돼 아쉬움을 남긴다.

또한 ‘추격자’는 전직 형사인 보도방 업주가 범인을 잡아서 경찰에 인계한 것으로 묘사하고 있으나, 사건 당시 유영철을 검거한 가장 큰 힘은 보도방 업주의 신고를 받고 발 빠르게 움직인 경찰관들이었음을 강조하고 싶다.

물론 유영철 검거과정에서 보도방 업주가 큰 구실을 한 건 사실이다. 체포 당시 유영철을 처음 발견한 사람도 보도방 업주였다. 하지만 사건의 심각성을 간파하고 총력을 다해 검거에 나섰던 서강지구대 경찰관과 기수대 대원들이 없었다면 유영철 사건은 미궁에 빠졌을 게 분명하다. 당시 나와 기수대 대원들은 처음부터 유영철이 서울 서남부지역 연쇄살인사건의 용의자일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사건에 임했다.

“범인 검거 후 명예 못 누리고 좌천 경험 맛봤는데…”

범행 전모가 밝혀지는 과정에서도 ‘추격자’는 실망스러웠다. ‘추격자’는 경찰이 유영철을 증거 불충분으로 풀어준 뒤 2명의 여성이 범인의 집 근처 가게에서 희생되는 것으로 그렸다. 이 과정에서도 보도방 업주는 유영철의 집으로 찾아가 격투 끝에 그를 검거해 범행 전모를 밝힌 것으로 묘사됐다. 그러나 이는 작가가 그려낸 픽션임을 넘어 당시 사건을 해결한 경찰에 대한 모독에 가깝다.

당시 수사팀은 기수대로 유영철을 압송한 뒤 범행을 완강히 부인하는 유영철을 상대로 엄청난 두뇌 싸움을 벌여야 했다. 이 과정에서 결정적인 단서가 된 것은 이미 언론에도 보도됐던 여성용 금발찌였다. 당시 유영철을 조사했던 나는 ‘어떻게 시작해야 하나’를 두고 고민하던 중 우연히 유영철의 지갑에 달려 있던 노란색 금줄(18k)을 발견했다. 그리고 이를 단서로 대화를 풀어갔다.

강대원:이 쇠줄이 뭐냐?

유영철:지갑이 떨어지지 않도록 바지 끈에 묶어놓는 것입니다.

청계천 황학동에서 1000원 주고 샀습니다.

강대원:내가 지금 카드에서 1000만원을 빼줄 테니 이거 1만개만 사와라. 그러면 나 오늘 여기서 그만두고 돈이나 벌란다. 한 1억원 이상 벌 테니까.

유영철:… 솔직히 말씀드리겠습니다.

강대원:혜화동 주택가 살인 용의자와 모습이 비슷하다. 뒷모습 좀 찍어보자.

유영철:대장님 모든 것을 털어놓겠습니다. 어머님을 불러주시면 양심고백을 하겠습니다.

“영화 ‘추격자’ 경찰 비하에 참을 수 없는 분노 느꼈다”

영화 ‘추격자’의 한 장면.

유영철은 현장검증 과정에서도 아주 지능적으로 경찰 수사를 방해했다. 엉뚱한 곳을 살인현장이라고 말하는가 하면, “그 집에 침입할 때 대문을 어떻게 열고 들어갔느냐”고 물으면 “사건 발생 후 TV 뉴스에 나온 것을 보니 그 집 앞에 경찰이라고 쓰인 줄을 걸어놨던데요”라고 태연히 대답하는 식이었다. 당시 한 동료는 내게 “어이, 대장. 헛 다리짚었어”라고 말했을 정도다.

비록 유영철이 경찰의 방심을 틈타 도주한 탓에 사건이 또다시 미궁에 빠질 수도 있었지만(이 부분은 수사팀의 실수였음을 솔직히 인정한다), 그보다는 도주 11시간 만에 인구 1000만명이 넘는 서울에서 그를 다시 체포할 수 있었던 경찰의 노력도 제대로 평가받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다. 당시 서울지방경찰청장이던 허준영 전 경찰청장도 내게 “오늘 중으로 못 잡으면 사표 쓸 각오해”라며 사건 해결에 의욕을 보였다. 하늘이 도왔는지, 아니면 우연인지 유영철은 내 생각대로 영등포역에 나타났고 결국 체포됐다. 실로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 ‘형사 25시’였다.

‘추격자’는 싸움으로 일그러진 보도방 업주의 모습과 교회를 비추면서 막을 내린다. 하지만 실제 조사 및 검찰 송치과정의 에피소드와 기자회견 도중 경찰의 발차기 해프닝은 영화 내용보다 훨씬 드라마틱했다.

다시 잡혀 들어온 유영철이 내게 끌려와 “대장님, 제 운은 여기까지입니다”라는 말과 함께 무릎을 꿇던 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 그가 털어놓는 사건 하나하나는 그야말로 충격 자체였다. 조사과정에서 추가 범죄에 대해 입을 열지 않는 유영철에게 내가 “여기서 다 불고 가. 그러지 않으면 땅 끝까지 쫓아가서라도 조사할 거야”라고 했던 말도 기억에 남아 있다. 그가 처음 자백을 하던 날, 영등포경찰서 유치장에서 유영철과 하룻밤을 지내며 이런저런 대화를 통해 여죄를 추궁한 일도 지금은 추억이 됐다.

하지만 알려진 바와 같이 유영철 사건을 수사한 나와 동료들은 큰 사건을 해결했다는 사명감이나 명예를 누리지 못했다. 검찰 송치 과정에서 유족들에게 발길질하는 장면이 고스란히 방송을 타면서 명예는 사라졌고 승진은커녕 좌천 되는 경험도 맛봤다. 한마디로 운이 없는 사건이었다. 물론 억울한 부분도 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일본 후지TV와 계약한 한국 측 뉴스 공급업체인 모 프로덕션이 피해자 유족을 찾아가 “기자회견장에서 유영철의 모자를 벗기면 사례하겠다”고 한 일이 발차기 사건의 발단이 된 사실을 알고는 화도 났다. 하지만 이젠 모두 지난 일이 아닌가. 누구도 원망할 생각은 없다.

다만, 나를 포함해 당시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동분서주했던 동료 형사와 경찰 관계자들이 이 영화를 보고 상처받지 않길 바라는 마음은 꼭 전하고 싶다. 비록 실수도 많았지만 ‘살인마’를 잡으려 애썼던 경찰의 노력이 ‘추격자’로 인해 헛되이 취급되지 않길, 또 유영철 사건이 단순한 영화 소재가 아니라 우리 사회에 여전히 경종을 울리는 사건으로 남길 바라는 마음을 간절히 전하며….



주간동아 2008.03.11 626호 (p30~32)

강대원 전 서울지방경찰청 기동수사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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