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실용주의’가 각광받을 가능성은 진작부터 보였습니다. 이명박 당선자는 ‘실용적 경제관’을 내세워 지난 1년간 여론조사 부동의 1위 자리를 지켰습니다. 2월에 출범할 새 정부에 ‘실용정부’라는 이름을 붙이려는 움직임도 있다고 하지요.
동의합니다. 우리도 이제 부질없는 보혁(保革) 논쟁은 정리할 때가 됐습니다. 선진국들을 둘러봐도 이념 갈등은 철 지난 유행가가 된 지 오래입니다. 그 빈자리를 국익(國益)에 입각한 실용주의가 차지하고 있는 게 세계적 대세이지요. 늦은 감이 있지만, 우리도 비로소 제 궤도를 찾아가는 듯해 안도감이 듭니다.
찜찜한 구석도 있습니다. 개표가 거의 끝나가던 19일 심야 TV토론에 나온 한 논객의 말이 막연하게 찜찜하던 그 부분을 일깨워주더군요. “이미 신자유주의가 팽배한 상황에서 ‘이명박식 토목경제’가 과연 최선의 대응책인지는 의문이다….”
좌파 성향인 그 논객은 이명박 씨의 당선이 못마땅했나 봅니다. 대운하 공약을 빗댄 ‘토목경제’라는 표현을 쓴 걸 보니 말입니다. 아무튼 그분의 말은 개발시대 주인공이 성장제일주의식 정책을 펼칠 때 야기할 수 있는 양극화 심화 등의 부작용을 걱정하는 것으로 들렸습니다.
그러나 굳이 신자유주의를 운위하지 않더라도 실용주의가 진보 이념과 대척점에 있는 입장인지는 의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실용주의가 보수 이념과 더 가깝다는 식의 논리도 억지라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대선 이후 우리 사회의 보수는 환호하고, 진보는 좌절합니다. 단지 한나라당 후보가 당선됐다는 이유만이라고 한다면, 우리 사회철학의 빈곤함을 부끄러워해야 할 일입니다.
인터넷 백과사전은 실용주의에 대해 “어떤 생각이나 정책이 유용성 효율성 실제성을 띠고 있음을 가리키며…”라고 설명하고 있더군요. 유추하면, 유용하고 효율적이고 실제적이라면 좌파 정책이든 우파 정책이든 모두 실용주의 정책이 될 수 있다는 말이 됩니다.

편집장 송문홍
주간동아 617호 (p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