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13

2007.12.04

사이코 살인마로 성인배우 신고식

  • 하재봉 영화평론가

    입력2007-11-28 14: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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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이코 살인마로 성인배우 신고식
    ‘천하장사 마돈나’는 류덕환이라는 배우의 가능성을 확인해준 영화였다. 이 작품에서 그는 빨리 돈을 모아 성전환 수술을 해서 여자가 되고 싶은 고등학생으로 나온다. 평소보다 살을 찌워 통통하고 귀여운 남학생으로 등장한 류덕환은 빼어난 연기로 관객을 사로잡은 것은 물론 대종상영화제, 청룡영화제, 부산영화평론가협회, 디렉터스컷 등에서 신인상을 받았다.

    그러나 전작 ‘웰컴 투 동막골’에서 인민군 소년병으로 나오던 시절부터 류덕환을 눈여겨본 사람들도 있었다. 그가 여덟 살 때 처음 출연한 MBC TV 드라마 ‘전원일기’의 복길이 동생 순길이라고 말하면 기억할 사람이 더 많을 것이다. 또는 ‘오남매’에서 머리를 빡빡 밀고 나온 소년의 모습을 기억할지도 모른다. 1987년생이니 이제 그는 스무 살이다. 지금까지 한 것보다는 앞으로 할 일이 훨씬 더 많은 배우다. 그러나 ‘천하장사 마돈나’에서의 역이 너무 강렬하게 대중의 머릿속에 각인돼버렸다고 생각했기 때문일까? 류덕환은 지금까지 보여준 이미지와는 정반대인 연쇄살인마로 돌아왔다.

    “관객들은 ‘우리 동네’의 효이에게서 ‘살인의 추억’의 박해일 씨, ‘공공의 적’의 이성재 씨와 비슷한 분위기를 느낄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내가 연기한 효이가 여타 영화 속 연쇄살인마 캐릭터와는 다른 모습으로 비쳐지기를 원한다.”

    지금까지 보여준 국민남동생 이미지 완벽 변신

    ‘우리 동네’는 연쇄살인과 그것을 모방한 또 다른 살인이 등장하면서 사이코 스릴러 장르의 기본 패턴을 성실하게 따르고 있는 영화다. 그러나 이 작품은 대부분의 스릴러처럼 “진짜 살인마가 누구인가”라는 문제에 집착하지 않고 오히려 살인마의 신분을 일찍 화면에 노출한다. 뒷부분에 그 이상의 무엇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관객과의 진정한 싸움은 살인마가 누구냐가 아니라, 왜 그 살인마가 자신의 살인을 모방한 또 다른 살인자에게 싸움을 거는가 하는 데서 일어난다. ‘우리 동네’가 기존 스릴러 장르의 공식을 따르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새로움이 존재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우리 동네’는 스릴러를 가장한 휴먼드라마다. 누가 범인일까에 초점을 맞추지 말고 왜 그들이 살인을 저질렀는지, 어떻게 그들의 이야기가 마무리되는지에 주목하면서 영화를 봐줬으면 좋겠다.”

    경주(오만석 분)는 추리작가 지망생이다. 월세가 몇 달치 밀려 집주인에게 독촉을 받을 정도로 궁상맞게 살고 있다. 살인사건을 다룬 추리소설을 써서 출판사에 보여주지만 번번이 퇴짜를 맞는다. 살인의 리얼리티가 떨어진다는 게 이유다. 경주의 죽마고우인 재신(이선균 분)은 경주가 살고 있는 동네의 형사반장이다. 그는 이 동네에서 한 달에 한 번꼴로 일어나는 연쇄살인 때문에 머리가 깨질 지경이다.

    경주는 자기 동네에서 일어나고 있는 살인사건을 나름대로 추적해본다. 유치원생부터 시작된 네번의 살인 피해자는 모두 여성이다. 그리고 십자가 모양으로 두 팔이 묶인 채 어딘가에 매달린 주검이 발견된다. 경주는 연쇄살인마가 분명 이웃에 살고 있고, 그의 최종 목표가 네 번째 살인이었다고 추리한다. 네 번째로 살해된 여성을 죽이기 위해 힘없는 어린 소녀부터 차례로 예행연습을 했고 세 번째에는 최종 목표와 거의 흡사한 대상자까지 골라 살해한 뒤, 최종 목표의 살인을 저질렀다고 생각한다. 그 살인범 효이 역을 류덕환은 소름끼치게 해냈다.

    사이코 살인마로 성인배우 신고식
    “‘천하장사 마돈나’를 끝내고 장진 감독의 ‘아들’을 찍었는데, ‘천하장사 마돈나’의 오동구와 목소리가 비슷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그래서 이번 작품에서는 목소리에 신경을 많이 썼다. 관객들이 더는 오동구가 아닌, 이 작품 속의 효이만 주목할 수 있게 하려고 노력했다. 내가 맡은 효이는 연쇄살인범이기 때문에 극중 인물로 들어가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야 했다. 효이라는 캐릭터에 어색하지 않게 다가가려는 과정이 필요했다. 그렇다고 실제 사람을 죽일 수는 없어 내가 선택한 방법은 먼저 살인도구와 친해지는 것이었다. 그래서 촬영 전부터 늘 손에 칼을 들고 다녔다. 잠자기 전까지 칼을 들고 다니다가 잘 때는 머리맡에 뒀다. 그래서 집 안은 나 때문에 늘 공포 분위기였다.”

    연쇄살인마 효이는 동네에서 ‘어린 왕자’라는 문방구를 운영하는 착하고 순수하게 생긴 젊은 남자다. 살인마답지 않은 외모를 가진 그는 기르던 개가 말을 듣지 않았다고 죽여서 요리해 먹는 비정함을 관객들에게 일찍 보여준다. 이제 관객은 범인이 누구인지 알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엉뚱한 데서 생긴다. 경주가 빚 독촉을 하는 주인집 여자를 우발적으로 살해한 것이다. ‘우리 동네’는 살인을 저지른 경주가 자신의 살인을 은폐하기 위해 같은 동네에 살고 있는 연쇄살인마의 살인을 흉내내면서 두 살인범의 팽팽한 심리대결로 전개된다.

    작은 키 큰 연기 … 차세대 연기파로 훌쩍 성장

    그러나 ‘우리 동네’에는 복선이 하나 더 숨어 있다. 사건 해결을 책임진 동네 형사반장이다. 연쇄살인마 효이와 연쇄살인마의 범죄를 모방해서 자신의 살인을 은폐하려는 경주를 이미 노출시킨 ‘우리 동네’의 이야기는 형사반장 재신의 과거까지 슬쩍 풀어놓는다. 그래서 현재의 살인사건 뒤에 숨겨진 과거의 살인사건을 등장시킴으로써 과거와 현재가 중첩되며 이야기가 복잡해진다. 과거와 현재의 살인은 시간을 달리하지만 그 동네에서 일어났다는 공통점이 있다.

    류덕환은 ‘우리 동네’에서 몇 차례 노출신을 찍었다. 상반신 공개는 물론 전라의 뒷모습까지 드러낸다. 그의 몸매는 단단하고 근육질이다. 국민남동생으로 불릴 만큼 부드럽고 순하던 예전 이미지와는 다른 모습이다. 한편으론 영광이면서도 동시에 족쇄가 됐던 ‘천하장사 마돈나’의 오동구에서 이제 그는 완벽하게 벗어난 것처럼 보였다.

    “영화를 찍을 때마다 몸에 대한 질문을 받는다. ‘아들’을 찍을 때는 몸이 참 곱다는 말을 들었는데 이번에는 단단하다고 많은 분들이 얘기한다. 나도 화면을 보고 내 몸에 놀랐다. 실제 내 몸이 화면에 보인 것과 똑같지는 않다. 효이가 살인마지만 한 인간이고 이웃에 사는 사람으로 비쳐졌으면 좋겠다.”

    ‘우리 동네’는 후반부에 세 남자 사이에 얽힌 과거의 상처들이 조금씩 드러나면서 새로운 국면으로 전환된다. 내러티브를 외형적으로 끌고 가는 사람은 경주 역의 오만석이지만, 내면적으로 사건을 조종하는 사람은 효이 역의 류덕환이다. ‘살인의 추억’의 박해일이 보여준 창백한 사이코 못지않은 충격을 류덕환은 보여줬다.

    자료에 따르면 그는 키가 167cm라고 하지만 실제 만나보면 그보다 작다는 느낌이 든다. 키에 대한 그의 콤플렉스를 시원하게 날려준 사람은 배우 신하균이었다고 한다. “외국배우도 다 작아. 알 파치노도 작고, 잭 니콜슨도 작아. 절대 꿀리지 마. 키를 생각하면 한없이 작아지고 연기를 생각하면 한없이 커질 거야.” 이후 그는 기죽지 않고 롱다리 배우들 속에서 자신만이 할 수 있는 가능성을 찾아 노력하고 있다. 이제 류덕환은 소년이 아니다. 우리는 소년 류덕환의 모습을 당분간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그는 훌쩍 성장했고, 차세대 남자배우로 우뚝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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