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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찬호의 휴대폰 문화인류학

문자메시지 톡톡톡, 엄지의 재발견

문자메시지 톡톡톡, 엄지의 재발견

문자메시지 톡톡톡, 엄지의 재발견
청소년 중에는 여름방학에 짬을 내 사찰을 찾는 아이들이 있다. 정서 안정을 도모하고 집중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또는 그것을 바라는 부모의 권유로 가는 것이다. 이들은 일주일 정도 절에 머무르며 수도생활을 하면서 잡다한 생각을 지우고 심신을 닦는다. 그러나 평소 익숙해 있던 습관을 버리고 스님의 리듬을 따라 하루를 지내야 하기 때문에 불편하고 괴로운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특히 텔레비전이나 컴퓨터를 사용할 수 없어 좀이 쑤시기 쉽다. 휴대전화를 아예 손에 쥘 수도 없는 환경에서 마음이 사뭇 허전해지리라. 눈을 지그시 감고 참선하는 시간에 쏟아지는 졸음보다 싸우기 어려운 것은 온갖 ‘번뇌’와 ‘망상’일 듯싶다.

TV 시사프로그램에서 청소년들의 템플 스테이를 보고 있는데, 바로 그렇게 참선하는 장면이 나왔다. 그런데 재미있는 순간 하나가 포착됐다. 참선할 때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 두 손을 앞으로 모아 손가락을 끼면 양손의 엄지가 서로 맞닿게 된다. 청소년들도 바로 그런 모습으로 앉아 있었다. 그런데 그 엄지들이 따로 떨어져서 각각 빙글빙글 돌아가고 있었다! 다름 아니라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시늉인 것이다. 세속을 잊고 휴식과 명상을 위해 산사에 왔건만, 거기에서도 누군가와 문자로 대화를 나누고 싶어하는 모습이 퍽이나 안쓰럽게 느껴졌다.

휴대전화 자판 두들기기 안성맞춤 이제야 진가 발휘

모든 도구가 그러하듯 전화라는 기계도 손으로 조작하는 것이다. 인간이 생물학적으로 취약함에도 만물의 영장이 될 수 있었던 비결은 손을 능숙하게 사용하는 능력에 있다. 그리고 인간의 손이 탁월한 힘을 발휘하는 것은 손가락에 달려 있다. 만일 한 손에 손가락이 두세 개밖에 없다면 우리의 문명은 훨씬 열악해졌으리라.

이제는 우리의 손가락을 하나씩 살펴보자. 인류가 문명을 꽃피우는 데 어느 손가락이 가장 많은 기여를 했을까? 단연 엄지다. 엄지가 얼마나 중요한지는 몇 가지 실험으로 확인할 수 있다. 엄지를 사용하지 말고 한 손으로 단추를 풀었다가 다시 끼어보자. 또는 엄지 없이 양손의 나머지 손가락들로 구두끈을 풀었다가 다시 매보자.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망치와 톱, 드라이버 등 많은 공구 또한 엄지 사용을 전제로 만들어졌다.



엄지가 없다면 나머지 손가락들도 제 기능을 하기 어렵다. 왜 그럴까? 엄지의 운동범위가 가장 넓기 때문이다. 각각의 손가락으로 원을 그려보면 금세 알 수 있다. 엄지가 가장 커다란 원을 그린다. 그리고 유일하게 다른 네 손가락과 정면으로 만날 수 있다. 인간의 손이 다른 유인원들의 그것과 구별되는 해부학적 특징은 바로 그렇듯 동그랗게 움켜쥘 수 있는 동작(grip)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돌도끼에서 자동차 운전대에 이르기까지 테크놀로지의 개발과 활용은 엄지의 절대적 구실에 기대고 있다.

수렵 채취에서 농경, 산업사회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노동에는 완력이 요구됐기에 엄지가 큰 몫을 해왔다. 그러나 다양한 악기가 발명되고 연주되면서 다른 손가락들의 중요성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타자기가 등장하면서부터는 엄지보다 다른 손가락들의 역할이 커졌고, 컴퓨터 자판 두들기기가 일상이 되면서 그들은 점점 분주해지고 있다. 그 가운데서 오른쪽 검지는 또 하나의 특별한 임무를 부여받았는데, 바로 마우스 클릭이다. 빌 게이츠가 내세운 ‘당신의 손끝에서 모든 정보를(Information at your fingertips)’이라는 모토를 들으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그 ‘손끝’을 검지로 연상하게 된다.

이제 엄지의 전성기는 끝났는가. 그렇지 않다. 21세기에 들어와 엄지는 새롭게 발견되고 있다. 컴퓨터 자판에서 스페이스 바를 두드릴 때뿐이 아니다. 그것 못지않게, 또는 그보다 훨씬 중요한 구실이 있는데, 바로 휴대전화의 문자메시지 발송에서 엄지가 각광받고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엄지는 다른 손가락들을 보이지 않게 지지하고 연계해주는 몫을 담당했음에 비해, 휴대전화에서 엄지는 혼자서 탁월한 기능을 발휘한다. 덕분에 ‘엄지족’이라는 말이 생겨나기도 했다.

휴대전화 버튼을 누를 때 엄지를 사용하는 것은 그 구조적 특성 때문이다. 위에서 언급했듯 다른 손가락들을 마주칠 수 있는 위치에 있기에 휴대전화를 움켜쥐고 자판을 두들기기에 안성맞춤인 것이다. 그 굵은 손가락이 상하좌우로 신속하게 움직일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 엄지는 가장 짧아 보이지만 사실은 가장 길다. 다른 손가락들은 손바닥 끝에서 시작되지만, 엄지는 손목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관절이 하나가 적은 듯하지만, 똑같이 3개가 있다. 그리고 다른 손가락과 멀찌감치 떨어져 있어 운신 폭이 넓다. 바로 그러한 특징 덕분에 엄지가 휴대전화 시대에 들어와 제 세상을 만난 것이다. 몇백만 년을 기다린 끝에 진가가 발견된 셈이다.

도구는 인간의 신체와 밀접하게 맞물려 개발돼왔다. 예를 들면 안경은 코와 귀의 구조를 이용해 쓰고 다니는 물건이다. 만일 이 두 기관이 없었으면 물안경처럼 고무줄로 매고 다녀야 할 것이다. 코가 그렇게 눈을 위해 봉사하리라고 옛 사람들은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인간의 신체 중에는 언젠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사용될 부위가 또 있을지도 모른다. 혹은 테크놀로지 환경으로 신체가 변형될 수도 있으리라. 앞으로 휴대전화 사용량이 훨씬 많아진다면 인간의 엄지 끝부분이 점점 작아질지 모른다는 진화론적 상상도 가능하지 않을까.



주간동아 2007.10.23 607호 (p74~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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